인구 절벽 현실화... 병역제도 손봐야
193개국 중 103개국 모병제 시행
분단 현실... 전환은 ‘시기상조’ 주장도
우리 사회에서 병역 의무는 건드려선 안 될 ‘역린’ 중 하나다. 2020년 10월 열린 국정감사에서 박양우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그룹 방탄소년단(BTS) 등 대중문화예술인의 병역특례 필요성을 공식적으로 언급해 네티즌들 사이에서도 찬반양론이 뜨거웠다. 가수 유승준은 군대에서 병역 의무를 이행하겠다고 공언했지만 2002년 미국 시민권을 선택해 지금도 한국 땅을 밟지 못하고 있다.
병역 의무 앞에선 정치판도 뒤흔들린다. 과거 유력 대선 주자였던 이회창 후보는 두 아들의 병역 면제 의혹에 발목을 잡히기도 했다. 이후 정치인 자녀들의 군 의혹 문제는 ‘시한폭탄’으로 여겨졌다.
징병제는 비리와 특혜로 공정하지 못하다는 비판과 함께 저출생으로 유지를 못 하는 상황이 다가오면서, 불가피하게 모병제로 전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하지만 북한의 군사적 위협이 계속되는 한 모병제 도입은 시기상조라는 주장도 있다.
군대에 가냐 안가냐의 문제를 놓고 우리 사회가 갈등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뉴스포스트>는 우리 국민이라면 누구나 얽혀있는 병역 문제에 대해 다루고, 특히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모병제를 둘러싼 기대와 우려를 살펴본다. -편집자주-
[뉴스포스트=이해리 기자] 강제 징병이 아닌 자원자로만 군대를 구성하자는 ‘모병제’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뜨겁다. 모병제 전환은 매번 선거를 앞두고 갑론을박이 오고 갔지만, 항상 정치적 쟁점으로 바뀌며 흐지부지되곤 했다.
그러나 과거와는 달라진 현대전 양상과 인구 절벽이 현실화하면서 병역 제도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실제로 한국갤럽이 지난달 25~27일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3명을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43%는 ‘징병제를 폐지하고 모병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답했다. ‘현행 징병제를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은 42%로 집계됐으며, 15%는 답변을 유보했다.
2016년에는 ‘현행 징병제 유지’가 48%, ‘모병제 전면 도입’이 35%였다는 것을 고려할 때 모병제를 지지하는 국민 여론이 높아진 것으로 확인돼, 모병제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본격화할 시점에 다가섰다는 분석이 나온다.
인구 절벽 상황... 징병제 유지 못 할 것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합계출산율이 1 미만(0.98)인 유일한 국가다. 출산율 급감에 따라 20세 남자 추계인구는 2019년 약 33만에 달하지만 2025년 약 23만, 2035년에는 22만, 2040년에는 약 15만 명 수준으로 감소할 것으로 보고 있다.
2020년 10월 열린 국정감사에서 모종화 당시 병무청장은 저출산의 영향으로 2032년부터 연간 필요한 현역 자원을 모두 충원하지 못할 것으로 전망했다. 김병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몇 년(언제) 정도부터 현역 자원이 줄어들 것으로 보느냐”라는 질문에 모 청장은 “연간 필요한 현역 인원이 20만 명인데, 2032년부터는 18만 명 이하로 떨어지기 때문에 인원이 부족해질 것”이라고 답했다.
실제로 한국군 병력은 2018년 60만 명에서 지난해 55만 5,000만 명으로 줄어들었다. ‘국방개혁 2.0’에 따르면 국군은 2022년 50만 명(병사 30만 명)으로 줄어든다. 2024년 이후에는 50만 명 규모의 상비 병력을 유지할 것으로 예상되며, 2035년 이후에는 40만 명 규모의 상비 병력을 유지하는 것도 어려울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인구 절벽 시대를 대비한 병역제도 개혁 추진이 시급하다고 나오는 이유다.
징병제와 모병제의 장단점
현재 전 세계적으로 모병제를 실시하는 나라는 미국, 일본, 영국, 프랑스, 독일 등 103개국으로 전체 193개 유엔 회원국의 절반 이상(53%)에 달한다. 냉전 종식 이후 안보위협이 감소함에 따라 많은 나라가 징병제를 폐지하고 모병제를 도입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만 놓고 보면 34개국 중 한국을 포함한 이스라엘, 터키, 브라질 등 10개국 만이 징병제를 실시하고 있다. 이들 국가 역시 대부분 징병제 폐지를 추진하거나 검토하고 있다. 가장 최근에는 대만이 67년 만에 징병제를 폐지하고 완전 모병제를 시행하고 있다.
징병제는 다수의 상비군을 유지할 수 있으며, 모든 국민이 군대를 다녀왔으므로 수준이 높은 예비 병력을 보유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또 모집 기준에 맞춰 병력을 뽑을 수 있기 때문에 병력의 질적 요소도 충족시키기에 유리하고, 국민의 병역의무에 대한 일체감을 형성하고 안보 의식을 고취할 수 있다. 아울러 적은 비용으로도 인력 획득이 가능하다.
반면 모병제에 비해 짧은 복무 기간으로 전투기술을 완전히 숙달하기 힘들다는 단점이 있다. 군대에서는 임무를 배우고 익힐 시간이 필요한데 육군의 경우는 최소 16개월에서 최대 21개월이다. 지금의 복무 기간이라면 임무를 배우자 마자 또는 제대로 배우지 못하고 제대하는 셈이다.
또 각기 복무의 형태가 다르기 때문에 병역의 형평성 문제가 제기되며, 개인의 특성을 고려하지 못해 인적자원배분의 비효율성이 발생한다. 병역 기피자 또는 양심적 병역 거부자 등의 사회 문제를 야기하기도 한다.
모병제는 자유민주주의적 헌법 질서에 부합하는 제도로 인적 자원을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국민의 병역 부담을 감소시키며 개인의 자발성 및 동기부여를 극대화하고, 병역기피 문제나 형평성 문제에 대해 근본적인 해결책이 된다.
그러나 전쟁이나 국가 긴급사태에 대비할만한 상비군 및 예비전력을 보유하기 힘들며, 저소득·저학력 계층이 과다 지원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특히 모병제로의 전환은 국방비의 부담과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안보 현실이 가장 큰 걸림돌이다. 2016년 당시 한민구 국방부 장관은 “북한 120만 명 병력에 대해 우리 군은 최소한 50만 명의 상비 병력을 유지해야 하는데, 이런 고려 없이 모병제를 논의하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비용 문제는 지난해 구자근 당시 미래통합당 의원이 국회예산처에 의뢰해 만든 ‘모병제 전환에 따른 관련 비용 전망 분석’ 자료를 보면 현행 군 징병제를 100% 모병제로 전환할 경우 앞으로 5년간 추가로 필요한 국방 예산이 적게는 약 6조 원, 많게는 13조 3,000억 원에 달했다.
남녀평등복무제 도입 제안도 나와
최근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저서를 통해 ‘모병제 전환’과 ‘남녀평등복무제’를 제시한 후 ‘여자도 군대에 갈 것인가’에 대한 논쟁이 정치권을 중심으로 재점화 됐다.
남녀평등복무제는 모병제 전환을 전제로 남녀를 불문하고 온 국민이 40일에서 100일 정도의 기초 군사 훈련을 의무적으로 받는 혼합병역제도다.
박 의원은 모병제와 남녀평등복무제로 전환 시 정예강군 육성이 가능해지며, 의무복무기간을 줄여 청년세대의 경력단절 충격을 축소하고, 병역 가산점제를 둘러싼 불필요한 남녀 차별 논란을 끝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모병제와 함께 여성징병제 도입은 우리 사회에서 꾸준히 제기돼온 이슈다. 현재 여성 징병을 도입한 국가는 북한, 이스라엘, 노르웨이, 스웨덴, 볼리비아, 차드, 모잠비크, 애리트리아 등 8개국이다.
군 복무는 정쟁이나 성별 간 갈등 등 소모적 다툼으로 해결할 문제가 아니다. 국가 안보 체제와 군사적 필요성에 따라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며, 이에 앞서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돼야 할 사항이다.
뉴스포스트는 후속 보도를 통해 모병제를 둘러싼 다양한 국민의 목소리를 들어보고 미래 지향적 병역 제도에 대한 합의를 모색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