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양대학교 군사학과 윤형호 교수 인터뷰
통일 앞둔 전환기... 모병제 논의 위험할 수 있는 사안
군비, 국가 경제, 사회, 문화적 문제 고려 필요
정치적 위선과 구호로 본질 희석되고 있어 우려
우리 사회에서 병역 의무는 건드려선 안 될 ‘역린’ 중 하나다. 2020년 10월 열린 국정감사에서 박양우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그룹 방탄소년단(BTS) 등 대중문화예술인의 병역특례 필요성을 공식적으로 언급해 네티즌들 사이에서도 찬반양론이 뜨거웠다. 가수 유승준은 군대에서 병역 의무를 이행하겠다고 공언했지만 2002년 미국 시민권을 선택해 지금도 한국 땅을 밟지 못하고 있다.
병역 의무 앞에선 정치판도 뒤흔들린다. 과거 유력 대선 주자였던 이회창 후보는 두 아들의 병역 면제 의혹에 발목을 잡히기도 했다. 이후 정치인 자녀들의 군 의혹 문제는 ‘시한폭탄’으로 여겨졌다.
징병제는 비리와 특혜로 공정하지 못하다는 비판과 함께 저출생으로 유지를 못 하는 상황이 다가오면서, 불가피하게 모병제로 전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하지만 북한의 군사적 위협이 계속되는 한 모병제 도입은 시기상조라는 주장도 있다.
군대에 가냐 안가냐의 문제를 놓고 우리 사회가 갈등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뉴스포스트>는 우리 국민이라면 누구나 얽혀있는 병역 문제에 대해 다루고, 특히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모병제를 둘러싼 기대와 우려를 살펴본다. -편집자주-
[뉴스포스트=이해리 기자] 2030세대의 병역에 대한 공정 요구와 내년 대선을 앞둔 정치권에서도 병역 제도 개선의 필요성이 제기되며 ‘모병제’ 전환 논란이 뜨겁다.
병역 제도 논의가 대선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커지자 정치권에서는 여러 목소리를 내고 있다. 대권 도전 의사를 밝힌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3일 모병제 전환과 함께 남녀평등복무제 도입을 제안했다.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전 대표와 정세균 전 국무총리도 이달 7일 ‘K-안보포럼 창립세미나’에 참석해 모병제 단계적 확대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심상정 정의당 의원도 지난 1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2030년 한국형 모병제 도입을 위한 토론회’ 모두발언에서 “인구 절벽에 따라 병력 자원이 자연적으로 순감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모병제는 이제 시기상조가 아니라 시의적절하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국가 안보의 매우 중요한 현안이 2030세대 청년들의 표를 얻기 위해 젠더 갈등에 편승하는 수단이 되지 않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국방 안보에 대한 현실적이고 진정성 있는 논의와 함께 저출산 고령화로 인한 인구구성의 변화, 국가 안보, 청년 고용 등을 고려해 장기적으로 다뤄야 할 사안이라고 제언한다.
<뉴스포스트>는 지난 17일 군사 전문가인 윤형호 건양대학교 군사학과 교수와 모병제 전환 이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인터뷰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서면으로 진행했다.
- 군사 전문가로서 ‘모병제 전환’ 논의 어떻게 생각하나.
“대한민국의 현역 및 예비역에게 모병제(직업군인제)에 대한 일반적인 선호도를 물어본다면 사병들은 본인 의지로 직업군인이 됐기 때문에 전쟁을 준비하고 수행하는 데 있어 당연히 모병제를 선택할 것이다. 그러나 모병제에 찬성하는 것과 모병제로 가는 것은 다른 문제다. 현재 대한민국은 통일이라는 중요한 전환기를 앞둔 시점인데, 섣불리 모병제로의 전환을 논하는 것은 위험할 수도 있는 사안이다.”
- 모병제에 찬성하는 것과 가는 것은 다르다는 것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
“평시 혹은 안보 위협이 상대적으로 미약한 경우 병력의 질을 우선시한 모병제가 당연히 선호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모병제를 채택할 경우 상존하는 안보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징병제 병력의 수준을 유지하려면 엄청난 군비 부담을 감수해야 한다. 그로 인해 파생되는 국가 경제, 사회, 문화적 문제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 해외 병역 제도 현황은 어떤가?
“영국의 국방외교 싱크탱크인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가 발표한 ‘밀리터리 밸런스’ 자료를 보면 상비군을 가진 전 세계 156개 국가 중 징병제는 71개국, 모병제는 85개국이 택하고 있다. 유럽을 포함해 전체적으로 모병제가 많지만, 최근 유럽은 러시아의 위협으로 인해 징병제를 채택하는 비율이 다소 높은 특징을 보이고 있다. 군사적 위협이 높은 나라일수록 징병제를 채택하는 경향이 높고, 모병제 국가도 전쟁이 발발하면 징병제로 전환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 모병제 전환이 국가 안보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는지?
“일반적으로 모병제를 통해서 질적으로 향상된 군사력으로 징병제의 단점을 극복할 수 있다고 얘기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모병제에서 우수한 자질을 가진 병사를 확보할 수 있는지의 문제, 여전히 전장에서 병사의 수적 규모가 차지하는 중요성, 이에 상응하는 첨단 무기체계에 소요되는 비용, 모병제 유지를 위한 엄청난 인건비는 앞의 요소들에 대한 전력비용을 상쇄하게 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는 점 등의 문제점을 안고 있다.”
- 모병제가 청년층의 역량개발을 촉진하고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징병제에서 모병제로 전환하였을 경우 잔여 인력의 역량개발과 일자리 창출로 선순환될 수 있는 사회적 기반과 체제가 구비되고 활용될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현재도 산업구조의 변화와 취업인구의 불균등 등 사회적 문제로 청년취업이 절벽에 놓여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부정적 요소를 더 악화시킬 수 있는 위험에 대한 충분한 고려가 요구된다.”
- 모병제 전환 시 저소득층이나 사회 취약계층 등 이른바 ‘흙수저’만 군대에 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주로 미국, 일본, 호주, 영국과 같은 선진국에서 징병제보다 모병제 병사의 (사회적)계층이 낮은 현상은 보편적이다. 현재 징병제를 실시하는 대한민국에서도 병력 자원의 부족으로 십수년 전에 비해 신체적으로 질병이나 문제를 갖고 있는 자원을 현역으로 입대시키고 있어, 야전부대에서 큰 문제가 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전반적으로 모병제에서 병사의 수준이 낮고 ‘흙수저’가 군으로 유입될 가능성은 우리나라의 경우 훨씬 높을 것으로 생각된다.”
- 모병제 전환 시 논의되는 병사 월급은 200~300만 원으로, 현재 40~50만 원의 5~6배가 된다. 모병제 전환으로 인한 예산 증가를 감당할 수 있나?
“결론적으로 수치상 예산 감당은 가능하지만, 증강된 만큼 국방비 예산을 늘릴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4차 산업 혁명 시대에서는 갈수록 군의 장비나 무기체계에 요구되는 예산은 천문학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결국 무한대가 아닌 군의 전력 증강 예산을 삭감해야 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가 돼, 모병제를 통한 전투력의 질적 향상과 모순되는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 모병제는 무전복무(無錢服務)로 인한 위화감을 조성하지는 않겠는가?
“모병제 자원의 수준이 낮아지는 현상으로 인해 그러한 문제로 비화될 소지는 충분하다고 본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고학력 자원이 불균형적으로 높아 산업구조의 요구와 맞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유럽 선진국들처럼 상대적으로 안보 부담과 평시 모병제로 국가 안보를 감당해 낼 수 있는 상황이 된 이후에 적용하는 방안을 지혜롭게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 모병제 전환이 남북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는가?
“통일 이전에 그러한 논의가 제기된다면 남북관계에 긍정적이냐 부정적이냐에 대한 고려부터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손자나 클라우제비츠를 인용해 보더라도 안보는 전쟁을 통해서 승리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고, 전쟁을 하지 않고 전투력의 건설과 유지로 적의 침략과 위협을 억제함으로써 국가이익을 달성하는 것이 우선 추구돼야 한다. 모병제로의 전환 시도와 전환이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기대는 어렵지 않은가 생각한다.”
- 모병제 전환이 적절한 시점은 언제라고 생각하는가?
“우리나라의 경우 남북통일의 시기와 우리나라가 동북아나 국제정치 현실에서 보다 더 주도권을 행사할 수 있는 여건과 시기 등을 고려하는 시점이 되기를 기대한다.”
- 끝으로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모병제 등 국가 안보의 매우 중요한 현안이 게임과 같은 정파적 논리로 회자되는 것이 가장 우려스럽다. 각 정파들이 표를 얻는 수단으로 다루는 경우가 엿보인다. 특히 정치적 위선과 구호로 본질이 희석되는 현실은 막아야 하는데, 전쟁 억제나 국가이익이 도외시되는 경우가 많아 보인다는 점이 안타깝다. 모병제를 한다는 것은 실제로 많은 도전을 극복해야 한다. 근본적으로 안보와 국제 정치 등 현실에 기반을 둔 정책과 진정성 있는 논의가 장기적 관점에서 이뤄져야 한다.”
※ 윤형호 건양대학교 교수 약력
윤형호 건양대학교 교수 약력
학력
국민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정치학 박사
육군대학 졸업
국방대학교 군사전략 석사
육군사관학교 문학사(38기)
경력
예비역 육군 대령
미 Georgetown 대학교 객원연구원
국방대학교 순환직 교수
군단 작전과장
한미연합사 현행작전(부)과장
사단 작전참모
기계화보병사단 대대장
육군사관학교 전술학 교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