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기운 칼럼니스트
온기운 칼럼니스트

[뉴스포스트=온기운 칼럼니스트] 중국 최대 메모리 반도체 회사 칭화유니그룹(淸華紫光)의 채권자인 후이상은행이 이달 11일 중국 베이징 법원에 이 회사의 파산 구조조정 신청을 했다. 지난해 말까지 4차례에 걸쳐 회사채 채무불이행을 한 이 회사는 최근 중국 최대의 인터넷 그룹인 알리바바에 경영지원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 회사의 자금 사정은 더욱 악화돼 결국 파산 구조조정 절차를 밟게 됐다. 칭화유니그룹의 총 채무는 2029억 위안(약 35조 9000억원)에 달한다.

이 그룹은 시진핑 국가주석의 모교로서 하이테크 인재를 배출하고 있는 칭화대가 51% 출자한 회사다. 정부의 보조금을 받으면서 다른 회사의 인수합병에 공격적으로 임해 왔지만, 독자적 기술 기반도 없이 무리하게 확장 노선을 취함으로써 결국 자금난에 빠지고 말았다. 향후 칭화유니그룹 자체는 법원 주도로 구조조정이 이뤄지겠지만, 정부계 펀드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자본 구조상 산하 회사들은 당분간 경영의 명맥은 이어갈 것으로 전망된다.

국산화 계획의 잇따른 좌절

칭화유니그룹 파산 신청 이전에도 대규모 반도체 회사들이 잇따라 파산했다. 대표적인 예가 후베이성 우한시 인근에 있는 ‘우한홍신반도체제조(武漢弘芯半導體製造)’이다. 자본금이 20억위안(약 3540억원)인 이 회사는 차오산이라는 초등학교 출신 범죄 경력자와 한약 판매상 등이 정부의 지원금을 따내기 위해 2017년 말에 설립한 것으로 중국의 여러 지방을 돌면서 합작 사업을 제안했다. 우한시와 합작에 이른 이 회사는 설립 초기 광고를 동원하며 중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지만 공장이 가동도 되기 전에 파산했다. 중국에서는 ‘홍신’ 사건을 최대의 반도체 사기 사건으로 평가하고 있다. 특히 대만에서 스카웃한 반도체 엔지니어를 이용해 미국의 압력을 무시하고 네덜란드 ASML에서 반도체 제조장치를 1대 수입하고 이를 부정 대출을 받는데 이용하는 수법까지 동원했다.

또 하나의 예는 산둥성에 소재한 ‘췐신집성전로제조(泉芯集成電路製造)’이다. 이 회사는 산둥성 지난시 정부와 광둥성의 한 회사가 공동출자해 설립됐다. 이 회사는 12나노미터 반도체 공정을 12인치 웨이퍼 환산으로 연간 48만장 생산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대만으로부터 다수의 기술자를 유치하는 등의 전략을 수립했다. 그러나 공장 건설도 완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최근 자금난이 심화돼 종업원 급여도 주기 어렵게 됨은 물론 종업원에게 퇴직을 강요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모회사인 광둥성의 회사는 출자 예정금을 출자하지도 않고 지난시가 지불한 출자금으로 겨우 연명하고 있는 처지다.

미국의 제재로 상황이 급속히 악화

‘반도체 굴기’를 표방하고 있는 중국 정부로선 상황이 악화 된 회사들을 어떻게든 살려보려 하고 있다. 하지만 점점 죄어 오는 미국 조 바이든 정부의 대 중국 반도체 포위망과 중국 기술력의 한계 등을 감안할 때 반도체 회사들의 회생은 낙관하기 힘들다.

미국은 중국의 반도체 굴기 전략에 대항해 520억달러의 거액을 들여 국내생산 확대와 연구개발 투자 증대에 적극 나서고 있다. 지난달 발표된 ‘반도체·배터리 공급망 조사보고서’에서 미국은 반도체를 국가안보에 반드시 필요한 전략품목이자 첨단산업의 주도권을 결정하는 핵심 물리적 기반으로 평가했다. 미국은 중국의 반도체 자립을 막기 위해 일본, 대만 등과 반도체 동맹을 구축하고 있기도 하다.

미국의 압력을 받는 중국의 시진핑 정권은 국제적인 공급망에서 탈락하는 ‘디커플링’을 우려해 반도체 국산화 전략에 필사적으로 임하고 있다. 반도체 공급이 원활하지 않을 경우 자국 산업 전체가 마비되고 말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팽배해 있다.

중국의 반도체 시장은 최근 급팽창하고 있다. 지난해 반도체 산업 매출액은 8848억 위안(약 156조 6000억원)으로 전년비 17% 증가했고 4년 사이에 2배로 규모가 커졌다. 하지만 중국의 반도체 자급률은 아직 16%에 지나지 않고 대부분은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지난해 반도체 수입액은 3518억달러로 원유 수입액(1770억달러)의 두배 이상이다. 중국 정부는 산업경쟁력 강화를 위한 ‘중국 제조 2025’에서 반도체 자급률을 70%로 끌어올린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조사 회사인 CB인사이트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에만 중국내 15개 성과 29개 도시가 반도체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계약액 순위에서 장쑤성, 안휘성, 절강성, 산둥성이 상위를 차지하고 있다.

설비 가동하기 전 파산하는 사례 속출

중국 정부는 반도체 산업에 종사하는 회사에 대해 세금 감면과 연구개발 보조금. 융자 등 각종 지원책을 제공하고 있다. 이에 따라 반도체 회사가 우후죽순처럼 늘고 있다. 지난해 1~11월 사이에 집적회로나 반도체 등의 분야에 진출한 회사 수는 7만 7000개사로 전년 동기보다 32%나 늘었다. 지난해 한해동안 반도체 부문 총투자금액은 1400억 위안(24조 7800억원)으로 전년 300억 위안(5조 3100억원)의 5배 가까이 늘었다.

그러나 정부의 지원만으로 거대한 산업이 성립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어느 회사가 반도체 사업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거액의 자금력과 고도의 기술력이 불가결하다. 하지만 이를 다 갖춘 회사들은 많지 않으며, 결국 사업이 본 궤도에 오르기도 전에 망하는 회사가 속출하고 있다.

중국에서는 태양광 발전과 전기차 등의 분야에서 수많은 회사들이 난립했으며, 이들 회사들의 정부지원금 부정 수급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반도체 분야에서도 유사한 상황이 벌어지는 측면이 있다.

우리에게 강 건너 불 아니야

중국 반도체 회사의 좌절 원인은 정치 논리의 개입과 기술 및 자본력 부족, 미국의 제재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우리나라 삼성전자도 박근혜 정부 당시 정치적 압력에 휘말려 이재용 부회장이 장기간 투옥생활을 하고 있다. 경영공백이 장기화되는 가운데 주가는 지지부진하고 반도체 내셔널리즘 격화 속에 국제적 위상마저 흔들리고 있다.

삼성은 메모리 분야에서는 세계 최강자이지만 세계 시장의 70%를 차지하는 비메모리 분야에서는 약자다. 위탁생산 시장 점유율이 대만 TSMC의 3분의 1도 채 안되며, 자동차용 시스템 반도체에서는 존재감이 미미하다. 반도체 장비와 원료 분야에 취약한 약점도 안고 있다. 여기서 흔들리면 한국이 반도체 약자로 전락할지도 모르는 위기적 상황이다.

현재는 미국의 반도체 제재 화살이 중국으로 향해 있지만 언제 우리에게로 향할지 모른다. 1980년대 전반 일본의 반도체 설비투자 규모가 미국을 앞지르자 미국 정부는 일본과 세 차례에 걸쳐 반도체 협정을 맺어 대 일본 무역제재를 가했으며, 일본은 결국 미국에 무릎을 꿇었다. 당시 일본은 미국 정부에 반도체 생산 원가를 공개하고 분기별 반도체 수출가격 데이터를 제공하며, 일본내 미국 반도체 시장 점유율을 20%로 끌어올릴 것 등을 요구받았다.

한국에게도 일본 중국과 유사한 제재가 가해질 수 있다. 반도체 제재가 한국에 적용되면 치명적인 영향을 받을 것이므로 미국과의 원만한 관계 유지가 매우 중요하다. 미국의 글로벌 반도체 동맹 구축망에서 소외되지 않게 하되, 동맹에 지나치게 깊숙이 참여할 경우 중국의 전방위적 보복을 받을 수 있으므로 현명하게 대처할 필요가 있다.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프로필-

▲ 일본 고베대 경제학 박사
▲산업연구원(KIET) 선임연구위원 
▲정부정책 평가위원
▲국가경쟁력분석협의회 위원
▲매일경제신문 논설위원 
▲숭실대 경제학과 교수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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