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포스트 전문가 칼럼=온기운] 추석연휴 기간 중인 지난 21일(한국 시간) 미국, 유럽, 홍콩, 일본 등 세계 주식시장을 강타한 중국 헝다(恒大·에버그란데) 그룹의 파산위기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2008년 9월 글로벌 금융위기를 촉발한 리먼브라더스 파산과 같은 대형 악재로서 중국판 리먼 사태가 초래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기도 하다.
제2 리만 사태 우려
헝다그룹 파산위기가 부각되면서 폭락했던 세계 증시가 하루, 이틀만에 회복돼 진정국면에 접어들긴 했으나 헝다의 막대한 부채를 감안하면 안심할 상황은 못 된다. 헝다의 부채는 중국 국내총생산(GDP)의 약 2%인 3000억달러(약 350조원)에 달하는데, 연말까지 채권 이자지급액이 6억 6800만달러(약 8000억원)에 이르는 데다 내년에는 채권 원금 상환도 예정돼 있는 등 헝다를 디폴트(지불불능)로 몰아넣을 위험이 상존하고 있다.
채권 이자상환일인 지난 23일 디폴트를 가까스로 모면했지만, 앞으로 넘어야 할 고비는 수없이 많다. 이번 사태는 유동성 위기의 시작에 불과하다는 평가도 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내년 만기가 도래하는 헝다의 부채는 77억달러에 달하고 2023년에는 108억달러로 급증한다. 업계에서는 헝다가 이미 많은 협력 업체들에 공사 대금을 제대로 지급하지 못하는 등 심각한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는 만큼 디폴트를 피할 수 없을 것이라는 관측이 파다하다. 중국 정부가 헝다의 핵심인 부동산 사업 부문을 분리해 국유화할 것이라는 외신 보도도 나오고 있다.
무분별한 사업 확장이 화근
헝다그룹은 1996년 설립된 민간 부동산개발 회사로서 당초 저가 소형 아파트 개발을 발판으로 급성장해 전국 각지에서 부동산 개발 사업을 확대했다. 중국 최대 부호로 꼽혔던 쉬자인의 강력한 리더십 아래 작년 기준 매출액 5070억위안(약 93조원), 직원 25만 명을 거느리는 중국 2위의 부동산 개발회사로 부상했다. 현재 280개 도시에서 1300개 건설사업을 진행 중이다.
경영위기는 무분별한 사업확장에서 비롯됐다. 이 회사는 부동산 개발을 주력으로 하면서 해외 유력선수들이 소속된 프로축구팀 운영과 전기차 개발, 영화 제작, 헬스케어, 식료품, 생수 등의 분야에 문어발식으로 진출했다.
이 과정에서 헝다는 거액의 부채를 짊어지게 돼 이자도 감당하기 힘든 처지에 놓이게 됐다. 특히 최근 중국 정부가 부동산개발업체의 과도한 자금 조달을 막는 조치를 발동하면서 상황은 더욱 악화됐다. 작년 8월 중국인민은행과 중국은행보험감독관리위원회는 헝다그룹에 경영안정 유지를 위해 노력할 것, 채무위험을 적극적으로 제거할 것, 부동산시장과 금융의 안정을 도모할 것, 법에 따라 중대사항이나 진실한 정보를 공개할 것, 사실이 아닌 정보는 방치하지 않고 확실히 정정할 것 등을 요구했다. 금융당국이 감독대상이 아닌 부동산 개발회사에 대해 개별적으로 행정지도를 한 것은 이례적인 일로 이 회사의 부채 문제가 그만큼 심각하다는 방증이다.
비슷한 시기에 중국인민은행과 주택도시농촌건설부는 중점 부동산개발업자에 대해 부채와 관련된 ‘3가지 레드라인’과 대출관리를 연계하는 엄격한 감독관리를 시작했다. 3가지 레드라인이란 ①선수금 공제후 총부채비율(총부채÷총자산×100)이 70% 이상 ②순부채자본비율(유이자부채에서 현·예금을 공제한 것÷자본×100)이 100%이상 ③현금단기부채비율(현·예금÷단기부채×100)이 100%이하를 말한다.
헝다그룹은 이 3가지 레드라인에 모두 저촉된 고위험 기업으로 분류돼 올해 신규로 유(有)이자 부채를 늘릴 수 없게 됐다. 이로 인해 헝다의 자금사정은 급속히 악화돼 대금 미지급에 대한 거래처의 고발과 은행에 의한 예금 동결, 공사 중단 등 경영 위기를 증폭시키는 악재들이 쏟아졌다.
사태가 심각해지면 중국 정부가 개입할 것
그렇다면 헝다의 상황이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이 회사는 대기업이지만 민간기업이어서 중국 정부가 꼭 구제해야 할 대상은 아니다. 중국 정부는 헝다 문제로 인해 중국의 금융 시스템이 크게 동요하거나 훼손될 우려가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올해 6월 말 현재 헝다의 유이자 부채는 5718억위안이며, 은행 융자, 제2금융권 조달, 국내외 회사채(회사채 중 거의 70%가 해외)로 구성돼 있다. 반면 중국 상업은행의 대손충당금은 5조 4000억 위안, 작년 순이익은 1조 9000억 위안이어서 헝다 문제로 일부 대출이 부실화되더라도 충분히 처리가 가능하다는 판단이다. 작년 7월 이후 태화집단(泰禾集団), 천방집단(天房集団), 삼성홍업(三盛宏業) 등 부동산회사의 디폴트가 잇따랐지만 구제는 이뤄지지 않았다.
다른 부동산 개발업체로 헝다의 위기가 파급될 수 있지만, 이는 주가나 채권 가격의 하락이라는 형태로 어느 정도 반영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또한 금융당국이 지난 8월 하순에 건전한 경영을 하고 있는 부동산 개발업체에 대해서는 은행이 확실히 융자를 해주도록 지시를 내리는 등 영향이 업계 전체에 크게 파급되지 않도록 방책을 강구하고 있어 당장 업계 줄도산은 막을 수 있을 것으로 여겨진다.
중국 정부가 지금 당장 헝다 사태에 개입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시진핑 정부가 최근 부채축소와 함께 부의 불균형을 해소하고 다함께 잘 살자는 공동부유를 강조하고 있어 자칫 도덕적 해이를 부추길 수 있는 개입이나 지원은 하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다. 국제신용평가사인 스탠다드앤푸어스(S&P)도 “헝다그룹은 대마불사(too big to fail)를 불러일으킬만한 큰 기업이 아니고, 중국 정부의 직접적인 지원도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헝다로부터 이미 아파트를 분양받은 사람들이 많아 사업이 완전히 중단되면 사회불안 등 폐해가 크기 때문에 중국 정부가 수수방관만 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헝다 사태로 사회불안이 커지고 중국, 나아가 세계경제가 위기 상황으로 치달을 경우 어떤 식으로든지 개입할 것이라는 얘기다.
중국에서는 올들어 4월 이후 줄곧 감소하던 주택 신규 착공면적이 8월에도 전년 동월 대비 14.6% 감소해 감소세가 이어지고, 주택 판매금액은 7월과 8월에 각각 14.6%, 19.7% 감소했다. 부동산 개발업체의 개발 의욕과 소비자의 주택 구입 의욕이 모두 감퇴하고 있어 가전제품이나 가구 등 내구소비재 소비와 부동산 개발 투자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다.
헝다 사태를 즈음해 중국 부동산 시장은 분명 변곡점을 맞고 있다. 이것이 금융시스템을 크게 흔들거나 훼손시킬 위험은 낮지만 경기하강 요인으로 작용하는 것임에는 틀림없다.
우리나라 금융위원회나 한국은행은 헝다 그룹 문제가 글로벌 금융시장의 시스템 리스크로 확산될 가능성은 제한적이라고 보고 있다. 하지만 세계적으로 주식 부동산 등 자산거품이 위험 수준으로 앃인 상황에서 중국발 금융시장 불안정이 증폭될 경우 거품붕괴와 이에 따른 심각한 경제적 충격이 야기될 수 있다. 특히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윈회(FOMC)가 자산매입축소(테이퍼링)을 연내에 개시하고 이르면 내년부터라도 금리를 인상할 가능성이 높아지는 등 대외 리스크 요인이 높아지고 있는 만큼 유비무환의 대비를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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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필-
▲ 일본 고베대 경제학 박사
▲산업연구원(KIET) 선임연구위원
▲정부정책 평가위원
▲국가경쟁력분석협의회 위원
▲매일경제신문 논설위원
▲숭실대 경제학과 교수 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