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포스트 전문가 칼럼=온기운] 전방위로 가해지는 탄소규제 압박
기후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탄소규제가 세계적으로 강화되고 있다. 지구촌 곳곳에서 기상이변이 속출하고 인류가 감당하기 힘든 살인적 기온 상승과 생태계 파괴 등을 경험하면서 기후재앙의 주범인 탄소를 획기적으로 줄이지 않으면 안된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가운데 120여개 국가들이 2050년경 탄소중립 달성 목표를 제시했다. 선진국, 개도국을 막론하고 단지 탄소배출을 줄인다는 소극적인 대응에서 벗어나 탄소흡수를 통해 배출과 흡수가 같도록 하는 넷제로(Net Zero)를 추구한다. 파리협정의 기온상승 1.5℃ 이내 억제라는 마지노선을 지키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인식에서다.
넷제로를 달성하기 위해 도입하고 있는 정책 수단들은 다양하다. 배출권거래제도(ETS: Emission Trading System), 탄소세(Carbon Tax),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Carbon Border Adjustment Mechanism), RE100(Renewable Energy 100%) 등이 그것이다. ETS는 정부가 탄소를 배출하는 생산자에게 배출권을 할당하고, 생산자가 이를 초과해 탄소를 배출하거나 배출을 적게 해 배출권이 남을 경우 이를 시장에서 거래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2005년 유럽연합(EU)이 이 제도를 처음 도입했고, 우리나라는 2015년부터 국가 단위 기준 세계 두번째로 시행하고 있다. 올해 7월부터는 세계 최대 탄소배출국인 중국이 국가단위로 이 제도의 시행에 들어갔다. 탄소세는 제품에 포함되거나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에 부과되는 세금이다. 탄소에 가격을 부과해 생산자들의 자발적인 탄소 감축을 유도하는 것이다. 탄소세는 핀란드, 노르웨이, 스웨덴 등 북유럽 국가들을 중심으로 도입돼 현재 25개국에서 운영되고 있다. CBAM은 제품의 소비시장에서 탄소 배출규제로 발생하는 비용을 교역품 가격에 반영하는 것으로 EU가 2023~2025년의 과도기를 거쳐 2026년부터 본격 시행할 예정이다. EU는 다른 나라에서 생산돼 수입되는 제품이 EU내에서 생산될 경우에 발생하는 초과 비용을 배출권 구입 등을 통해 부과한다. RE100은 기업이 사용하는 전력의 100%를 태양광 풍력 등 재생에너지 전력으로 충당하겠다는 국제 캠페인으로 현재 세계 300여개 기업이 참여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SK그룹 계열사 8곳이 지난해 11월 캠페인 참여를 선언했으며, 올해부터 시작된 한국형 RE100(K-RE100)에 참여하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
EU처럼 이들 탄소규제 수단을 모두 채용하는 국가들도 있고 일부만을 선택하는 국가들도 있다. 우리나라는 ETS는 2015년부터 시행해 탄소세는 도입을 검토하고 있으며, RE100은 본격 참여를 위해 국내 여건을 조성하고 있는 중이다.
제조업 비중 높은 한국 산업에 비상
국제적인 탄소규제 강화 움직임에 직면해 탄소 다(多)배출 제조업 비중이 높은 우리나라는 비상이 걸리지 않을 수 없다. 특히 국회가 최근 2030년 국가온실가스감축 목표(NDC)를 35% 이상으로 높이는 내용을 명시한 법안을 통과시켰고, 탄소중립 ‘시나리오 3’에서는 2050년 넷제로를 목표로 설정하는 등 탄소감축 압박이 국내외에서 강하게 가해지고 있다.
탄소감축은 인류의 공통과제인 기후위기 극복을 위해 반드시 가야 할 길이다. 그러나 화석연료 의존도가 높고 제조업 중심의 산업구조를 갖고 있는 우리나라에겐 당장 위협 요인이 아닐 수 없다. 산업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국내총생산(GDP)에서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28.4%로서(2019년 기준), 다른 제조업 강국인 독일(20.7%), 일본(20.3%)보다 높고, 중국(29.3%)과 유사하다. 제조업내 세부 업종별 구성에 있어서도 철강, 화학·정유, 시멘트 등 탄소 다배출 업종의 비중이 주요국에 비해 높다. 우리나라의 금속, 석유제품, 화학, 시멘트, 비금속 산업이 제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8.4%로서 중국(8.8%)과 유사하며 일본(5.8%), 독일(5.6%)보다 높다. 따라서 탄소감축이 다른 나라에 비해 그만큼 힘들고 비용도 많이 들 수밖에 없다. 더구나 EU, 일본, 미국 등 주요 선진국의 경우 1990년 대비 탄소 배출량이 감소하고 있거나 정체되고 있는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 최근에서야 탄소 배출량의 정체 현상이 나타나는 상황에서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이뤄내야 하니 시일이 촉박하다.
ETS의 경우 2015년 1월 톤당 8640원에서 출발했던 배출권 가격이 지난해 4월에 4만 2500원까지 급등했다가 코로나 사태에 따른 배출권 수요 감소로 올 6월 한 때 1만 500원까지 떨어지는 롤러코스트 장세를 연출했다. 현재는 2만원선 후반으로 가격이 반등했는데 최근 EU의 배출권 가격이 톤당 60유로를 넘어 급등세를 보이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우리나라 배출권 가격이 앞으로 상승세를 이어갈 가능성이 높다. 배출권거래를 통한 국내 기업들의 탄소감축 비용이 지금보다 더 높아질거라는 얘기다. 탄소세는 아직 논의 단계이지만 이게 실제로 도입되면 국내 기업들은 배출권 비용에다 탄소세 부담까지 지게 돼 설상가상이 될 수 있다. 여기에 연료개별소비세 등 제반 에너지 세금까지 포함하면 기업들이 실질적으로 부담해야 하는 실효탄소세율(Effective Carbon Rate)은 더욱 높아지게 된다.
CBAM의 경우 EU가 우선 적용할 철강, 시멘트, 알루미늄, 비료 중에서 우리나라는 EU에 대한 수출규모가 큰 철강이 큰 타격을 입을 것으로 예상된다. 철강 산업에서 발생하는 연간 탄소 배출량은 1억 490만톤(2017년 기준)에 달해 EU 수출 시 배출권을 추가로 구매해야 할 가능성이 높고 EU의 배출권 가격이 앞으로 더욱 오를 경우 배출권 구매비용은 더욱 높아질 수밖에 없다. 더구나 CBAM을 EU 뿐 아니라 미국도 도입할 가능성이 높아 국내 철강 제품 수출과 관련된 비용 부담은 더욱 커질 것이다.
기업에 시간적 여유 주고 유인책 제공을
정부는 경제성장의 중심축 역할을 하는 제조업에 대해 탄소감축만을 강조하다가는 제조업 경쟁력을 송두리째 상실할 우려가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무리하게 탄소감축 목표를 높이기보다는 제조업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을 구축하면서 점진적으로 높여가는 게 중요하다. 탄소감축을 추진하는 업종이나 기업에 보조금을 지급하거나 독일처럼 특정 업종의 전기요금을 할인해 주는 등의 유인책도 필요하다. 기업들은 탄소감축을 위한 노력을 배가하는 한편 탄소규제를 기회로 활용하는 방안도 찾아야 한다. 조선산업에서 탄소를 적게 배출하는 LNG추진 선박의 경쟁력을 높여 해외시장을 개척하거나, 자동차 산업에서 전기차나 수소차와 같은 친환경차 생산에 박차를 가해 해외시장을 선점하는 것 등이 그것이다. 탄소를 가장 많이 배출하는 철강산업의 경우 유연탄을 연료로 쓰는 고로방식 대신 수소환원제철 상용화를 조기 실현하기 위한 노력이 절실히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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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필-
▲ 일본 고베대 경제학 박사
▲산업연구원(KIET) 선임연구위원
▲정부정책 평가위원
▲국가경쟁력분석협의회 위원
▲매일경제신문 논설위원
▲숭실대 경제학과 교수 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