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은미·전성신 ‘니트생활자’ 공동대표  
무직 청년 모아 회사 놀이 ‘니트컴퍼니’…일상성 되찾기
만보 걷기, 필사하기 등 스스로 업무 정해 매일 인증
참여자의 25%가 취업하기도...본인을 배우는 시간 필요

[뉴스포스트=이해리 기자] 지난해 대학 졸업 후 직장을 구하지 못한 청년이 155만 명에 육박한 것으로 조사됐다. 최종학교 졸업자(중퇴자 포함)는 470만 6,000명으로, 졸업·중퇴자 10명 중 3명(32.9%)은 졸업 후 취업 준비를 하거나 집에서 쉬고 있는 것. 

(그래픽=뉴스포스트 강은지 기자)
(그래픽=뉴스포스트 강은지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대유행으로 업종을 가리지 않고 고용 한파가 몰려들었다. ‘안정적인 일자리’의 개념이 무색해지며, 누구나 무업의 기간이 찾아올 수 있는 시대가 됐다. 

일하지 않고 일할 의지도 없는 무직자를 뜻하는 ‘니트(NEET)족’은 43만 명을 넘어섰다. 실제로 전국 4년제 대학 졸업생이나 예비 졸업생 중 절반 이상이 사실상 ‘구직 단념’ 상태라는 조사 결과도 나왔다. 

(사진=한국경제연구원)
(사진=한국경제연구원)

12일 한국경제연구원이 전국 4년제 대학 3~4학년 재학생·졸업생 2,71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21년 대학생 취업인식도 조사’에 따르면, 대학생 10명 중 6~7명(65.3%)은 사실상 구직을 단념한 상태인 것으로 나타났다. ‘거의 안 함’이 33.7%로 가장 높았으며 ‘의례적으로 하고 있음’(23.2%), ‘쉬고 있음’(8.4%) 등 순이다. 반면 ‘적극적으로 하고 있다’의 응답률은 9.6%에 그쳤다. 

‘바늘구멍’인 취업 문 앞에 구직의 의지마저 잃어가는 가운데, 이를 주목한 비영리 스타트업이 있다. 무직 청년들을 모아 ‘회사 놀이’를 하는 사람들. 무업 기간에 사회적 단절을 경험하는 청년들이 연대하고 협업할 수 있는 커뮤니티 플랫폼 ‘니트생활자’를 운영하는 박은미·전성신 공동대표다. 

<뉴스포스트>는 지난 7일 서울 중구 명동에서 박은미·전성신 공동대표를 만났다. 이들은 “백수라서 가질 수 없는 것들을 제공하는 회사”라고 니트컴퍼니를 소개했다. 

니트생활자의 전성신(왼쪽), 박은미 공동대표. (사진=뉴스포스트 이해리 기자)
니트생활자의 전성신(왼쪽), 박은미 공동대표. (사진=뉴스포스트 이해리 기자)

- 니트컴퍼니 어떻게 만들게 됐나. 

10년 넘게 직장 생활을 하다 2018년 12월 마지막 회사를 나오면서 나와 같은 백수를 만나고 싶었다. 혼자라는 괴로움과 미래에 대한 막막함이 다른 사람들도 똑같을지 궁금했고, 그런 사람들이 모여 무기력을 벗어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갖고 커뮤니티를 시작했다. 2019년 첫 오프라인 모임을 갖고, 같은 해 8월 서울시NPO지원센터의 지원으로 사원 12명과 일주일에 한 번씩 모임을 진행해 개인 업무 결과로 기획 전시도 마련했다. 본격적인 시작은 2020년이다. 지난해 6월에는 아름다운재단에서 운영비를 지원받아 4개월간 서울역에 사무 공간을 운영했으며, 카카오임팩트와 협업해 니트컴퍼니 온라인점도 열었다. 지금은 분기별로 홈페이지에서 프로젝트 참여자를 지원받고 있다. 

- 니트컴퍼니에 대해 구체적으로 소개해달라.

백수가 되면 소속감도 사라지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기 어렵고, 일상의 루틴이 무너지기 때문에 콘셉트 놀이를 통해 일상성을 되찾는 활동이다. 입사 자격은 ‘무업 상태의 만 39세 이하 청년’이다. 사원들은 입사 후 만보 걷기, 시(詩) 필사하기, 강아지 관찰하기, 양치하기 등의 업무를 스스로 정하고 매일 인증한다. 매일 출퇴근 시간이 정해져 있고, 업무 일지도 써야 한다. 단 월급은 없다. 사훈은 ‘뭐라도 되겠지’다. 6주, 8주 등 근무 기간이 정해져 있으며, 종무식 이후에는 참여자들과 함께 전시회도 진행한다. 

- ‘뭐라도 되겠지’ 사훈이 인상적이다.  

별말이 아닌데 사람들이 이 말에 많은 위안을 얻는다. 잘하고 싶고, 잘해야겠다는 생각들이 너무 많기 때문에 오히려 이런 생각을 갖기 어려운 것 같다. 뭐라도 되겠지의 ‘뭐’가 결국에는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신기한 것은 저희와 함께하는 친구들도 프로젝트를 진행하다보면 그 의미를 스스로 받아들이고 있다.

니트컴퍼니 프로젝트 소개 영상. (사진=SOVAC 2020 영상 갈무리)
니트컴퍼니 프로젝트 소개 영상. (사진=SOVAC 2020 영상 갈무리)

- 전시회의 내용이 궁금하다. 

참여자들이 니트컴퍼니 프로젝트 기간에 했던 업무의 결과물들을 전시한다. 주로 사진이나 글, 그림 등의 기록물들이 많이 나왔다. 표현 방식을 따로 정하지 않았다. 폴 댄스, 주짓수, 국궁 다양한 운동을 경험하며 입었던 옷들을 옷장처럼 걸어놓는 경우도 있었다. 매일 양치를 하는 업무를 가진 사원은 자신의 칫솔과 치약을 유리돔에 씌워서 전시하기도 했다. 학원에 다니면서 공부한 친구는 자신의 하루 루틴을 브이로그로 만들어 자신의 머리카락과 함께 전시해 놨다. 공부 스트레스에 머리카락이 많이 뽑혔다고 한다. 컨템퍼러리 한 현대미술 전시회 같았다. 모두 즐겼던 것 같다.

- 프로젝트가 끝난 이후에도 참여자들과의 연락을 이어가고 있나? 

물론이다. 더 이상 오픈 채팅방을 새로 개설할 수 없는 정도로 많은 모임이 있으며, 꾸준히 소통하고 있다. 각자의 버킷리스트들을 함께 해나가는 모임도 있다. 특이한 점은 취업을 목적으로 한 프로젝트는 아니었지만, 이후 참여자의 25% 이상이 취업했다. 

- 여러 차례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기억에 남는 후기가 있다면?

“나 역시 무업자로서의 일상을 그저 흘려보내기보다 하루하루 다듬어 나가는 마음으로 살아야겠다”와 “지금의 나는 사랑하는 것들을 찾아 뿌리를 내리는 중인 것 같다. 후에 어떤 식물이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얘기한 친구들이 있었다. 프로젝트 참여를 통해 ‘내가 내 모습 그대로 있을 수 있다’ 등 자신의 변화 과정을 적은 것들이 가장 와닿는 것 같다.

- 운영 시 어려움은 무엇이 있는가. 

“너희는 수익 모델이 없기 때문에 오래가기 어렵다”라고 말하는 분들이 있는데, ‘뭔가 잘못하고 있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사람들의 변화에 대해 데이터나 결괏값으로 물어보기도 하는데, 이 부분은 증명하기 어렵다. 또 참여자들의 반응이 없을 때도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인가, 불필요한 것들을 하는 것인가 등의 생각이 들 때 어려운 것 같다. 

- 니트컴퍼니가 사회에 어떠한 영향을 주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니트컴퍼니로 인해 사회가 바뀌지는 않겠지만, 최근 고용노동부에서 ‘청년 도전 지원 사업’이라는 것이 내려왔다. 지금까지는 청년들을 빨리 취업시키기 위한 정책이나 제도가 많았다. 대부분은 ‘왜 취업 안 하고 있냐’와 같이 취업을 개인적인 문제로만 바라봤기 때문이다. 그러나 올해 사업 내용을 보면 구직 이전에 어떠한 프로그램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지하기 시작했다. 그 예시에 저희 프로젝트가 들어가 있었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청년들에게 많은 시간이 주어지지 않는 것 같다. 학창 시절부터 항상 목표 지향적으로 살아오다가, 노력해도 목표에 닿질 못하고 한계를 느끼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목표성 말고 즐겁고, 자기가 좋아하고, 자기를 배우고 경험할 수 있는 시간도 인생에서는 필요하다. 그런 시간을 보내더라도 사회적으로 너그럽게 봐주면 좋겠다. 급변하는 사회에 맞춰 사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사회에 맞춰 사는 것 말고도 본인에게 맞춰서 사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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