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육비 안 주고 버틴 아빠들 실형 선고
가부장적 분위기서 배제된 양육비 문제
신상공개 등 제재에도 미지급자 증가세

자녀 1명을 낳고 성인이 될 때까지 양육하기 위해서는 2억 6천만원이 필요하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엎친 데 덮친 격 고물가 문제와도 맞물려 부부가 함께 자녀 1명 키우기에도 벅찬 사회가 됐다. 이혼 후 혼자서 자녀를 양육하는 한부모 가정의 상황은 불 보듯 뻔하다. 비양육자가 적절한 시기에 양육비를 지급하는 건 한부모 가정에게는 생계 수단 못지않게 중요하다. 

<뉴스포스트>는 '양육비 이행법'이 개정되기 전인 2020년 여름 '양육비잔혹史'라는 제목으로 양육비 미지급 문제를 기획 보도한 바 있다. 이듬해 양육비 미지급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면서 채무 불이행자에 대한 각종 제재가 이뤄졌다. 양육비를 받지 못해 고통받던 한부모 가정의 상황은 그간 얼마나 나아졌을까. 본지가 다시 한번 추적해 봤다. -편집자 주-

 

지난 2020년 7월 7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앞에서 중학교 1학년 남학생 C모 군이 시민단체 '양육비해결모임' 관계자들과 함께 자신의 친부에 대한 고소장을 제출했다. (사진=뉴스포스트 이별님 기자)
지난 2020년 7월 7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앞에서 중학교 1학년 남학생 C모 군이 시민단체 '양육비해결모임' 관계자들과 함께 자신의 친부에 대한 고소장을 제출했다. (사진=뉴스포스트 이별님 기자)

[뉴스포스트=이별님 기자] 이혼 후 자녀 양육자에게 양육비를 주지 않은 비양육자들과 관련해 주목할 만한 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지난 20일 경상남도 창원시 성산구 창원지방법원에서는 '양육비 이행확보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이하 '양육비 이행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50대 남성 A모 씨에게 징역 1년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했다.

앞서 A씨는 2004년 이혼 후 두 자녀에 대한 양육비 1억 4900만원을 20개월 동안 분할 지급하라는 양육비 지급 이행 명령 결정을 받고도 이행하지 않은 혐의로 기소된 바 있다. 양육비 미지급으로 2022년 감치명령을 받아 집행될 위기에 처하자 양육비 채무 중 고작 150만원만 변제했다.

이혼 후 양육비를 주지 않아 실형 선고를 받은 경우는 매우 이례적이다. 지난 3월 27일 인천시 미추홀구 인천지방법원에서 10년 동안 두 자녀의 양육비를 주지 않은 40대 남성 B모 씨가 징역 3개월을 선고받은 것이 최초였다. 지난달 21일 항소심에서는 1심 형량보다 2배나 오른 징역 6개월을 선고받았다. B씨의 재판부터 이달까지 언론에 보도된 양육비 미지급자 최소 5명이 실형 선고를 받았다.

구속자들은 공교롭게도 모두 남성이었다. 한부모 가정 양육자 대부분이 여성인 현실이 반영된 결과다. 여성가족부가 발간한 '2021년 한부모가족 실태조사'에 따르면 엄마와 미성년 자녀로 구성된 가정은 전체 한부모 가정의 67.4%를 차지했다. 아빠와 미성년 자녀로 구성된 가구는 32.6%에 불과했다. 또한 한부모 가정 다수인 72.1%가 전 배우자로부터 양육비를 받지 못했다. '나쁜 엄마'보다 '나쁜 아빠'가 많은 데는 주 양육자가 여성인 사회적 구조에 원인이 있다.

과거 양육비 미지급 문제는 가정사나 개인 간의 채무 관계로 치부 돼왔다. 가부장적이고 보수적인 사회적 분위기와 '법은 가정에 개입하지 않는다'는 법언(法諺) 등이 양육비 미지급 문제 해결을 미뤄왔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기존의 통념에 대한 부정적인 목소리도 거세졌다. 2010년대 중반에는 '나쁜 아빠'의 신상정보를 공개하는 시민단체들의 사적제재 활동이 주목을 받으면서 양육비 미지급에 대한 인식이 사회적 문제로 자리 잡았다.

지난 2020년 6월 18일 오전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방법원 정문 앞에서 양육비해결모임이 양육비 미지급 문제를 해결하라며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뉴스포스트 이별님 기자)
지난 2020년 6월 18일 오전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방법원 정문 앞에서 양육비해결모임이 양육비 미지급 문제를 해결하라며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뉴스포스트 이별님 기자)

'양육비 이행법' 개정 3년 후

양육비 미지급 문제를 해결하라는 요구가 커지면서 2021년 7월 양육비 이행법이 개정됐다. 양육비 미지급 시 법원이 지급 이행 명령을 할 수 있게 됐다. 이행 명령을 어기면 출국 금지와 운전면허 정지, 감치 등의 제재도 가능하다. 명령을 받고도 양육비를 주지 않으면 최대 1년 이하의 징역형과 1천만원 이하 벌금형에 처해진다. 양육비이행관리원을 통해 '나쁜 부모'들의 일부 신상도 공개된다.

제20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양육비 미지급 문제 해결이 대선 후보의 주요 공약으로 떠오르기도 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후보 시절 양성 평등 공약의 일환으로 이를 전면에 내세웠다. 미지급 양육비를 정부가 한부모 가정에 먼저 지급하고, 국가가 직접 채무자에게 양육비를 추징하는 이른바 '선지급제'를 도입하겠다고 공약했다.

하지만 양육비를 제때 지급하지 않는 '나쁜 부모'들은 여전했다. 여성가족부는 지난달 제36차 양육비이행심의위원회를 열고 양육비 채무 불이행자 제재조치 대상자 164명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유형별로는 출국금지가 117명으로 가장 많았다. 운전면허 정지가 43명, 명단 공개가 4명이다.

제재 조치 시행 후 3년이 지났지만, 심의 대상자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는 게 여가부의 설명이다. 현재까지 제재 조치 심의 대상 인원은 630명이다. 이들 중 163명만 양육비 채무액을 전부 또는 일부 지급했다. 약 26%의 제재 대상자만 양육비를 주고, 나머지 74%는 여전히 버티고 있다는 것이다.

각종 제재에도 양육비 미지급 문제가 해결되지 않자 국회에서는 보다 더 강력한 법안이 발의됐다. 김윤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양육비 지급을 위해 '아동복지법 개정안(개정안)'을 지난 26일 대표 발의했다. 개정안은 부양의무가 있는 보호자가 정당한 사유 없이 아동 양육의 책임을 이행하지 않은 것을 '아동학대'로 규정하는 게 골자다.

구체적으로 부양의무가 있는 아동에 대한 정당한 사유 없이 양육비 채무를 이행하지 않는 행위를 금지행위로 신설한다. 위반할 경우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한다. 양육비 미지급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양육비 이행법을 넘어 아동복지법까지 개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김 의원의 법안이 본회의의 문턱을 언제 넘어설지는 알 수 없다.

정부도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여성가족부는 오는 9월부터 '나쁜 부모'에 대한 제재를 강화하겠다고 나섰다. 올해 3월 양육비 이행법 개정으로 감치명령 없이 이행명령만으로도 양육비 채무 불이행자에 대한 제재가 가능해진다. 기존에는 이행명령 후 감치명령이 이뤄진 다음 제재조치가 가능했다.

아울러 제재조치 대상을 구체화하는 내용을 포함한 하위명령을 입법예고하고 있다고 밝혔다. 양육비 지급 이행명령을 받았음에도 양육비 채무가 3천만원 이상이거나, 3회 이상 체납할 경우 양육비이행심의위원회의 심의·의결을 거쳐 제재 조치(운전면허정지, 출국금지, 명단공개)가 가능해진다.

신영숙 여성가족부 차관은 "올해 9월부터 시행되는 양육비이행법에 따라 제재 조치 절차가 간소화될 뿐만 아니라 양육비이행관리원이 독립기관화 되는 등 양육비 이행확보 지원 정책에 큰 진전이 있을 것"이라며 "하위법령 마련부터 이행관리원 독립 절차까지 계획된 과제들을 차질 없이 추진해 나가겠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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