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先 지급, 채무자에 後 구상 청구
독일·프랑스 등 보편적 선지급제 시행
부정수급·낮은 환수율 등 해결 과제도
자녀 1명을 낳고 성인이 될 때까지 양육하기 위해서는 2억 6천만원이 필요하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엎친 데 덮친 격 고물가 문제와도 맞물려 부부가 함께 자녀 1명 키우기에도 벅찬 사회가 됐다. 이혼 후 혼자서 자녀를 양육하는 한부모 가정의 상황은 불 보듯 뻔하다. 비양육자가 적절한 시기에 양육비를 지급하는 건 한부모 가정에게는 생계 수단 못지않게 중요하다.
<뉴스포스트>는 '양육비 이행법'이 개정되기 전인 2020년 여름 '양육비잔혹史'라는 제목으로 양육비 미지급 문제를 기획 보도한 바 있다. 이듬해 양육비 미지급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면서 채무 불이행자에 대한 각종 제재가 이뤄졌다. 양육비를 받지 못해 고통받던 한부모 가정의 상황은 그간 얼마나 나아졌을까. 본지가 다시 한번 추적해 봤다. -편집자 주-
[뉴스포스트=이별님 기자] 이혼 후 자녀를 양육하는 배우자에게 양육비를 주지 않는 '나쁜 부모'들은 2024년 현재에도 여전히 버티고 있다. 지난 2021년 7월 '양육비 이행확보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이 개정되면서 '나쁜 부모'들에 대한 각종 제재가 늘어났지만, 상황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는 게 한부모 가정 당사자들의 목소리다.
양육비 미지급 관련 재판은 냉탕과 온탕을 오가고 있다. 수십 년 간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은 부모에게 실형을 선고하는 판결들이 올해 하반기부터 속속 나왔다. 반면 '나쁜 부모'의 신상정보를 온라인상에 공개한 시민단체 대표들은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특히 지난달 양육비 청구 소송 소멸시효를 자녀가 성인이 된 후 10년으로 한정한 판결은 시민사회로부터 양육비 미지급자에게 면죄부를 줬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시민사회계는 답보 상태에 놓인 양육비 미지급 문제를 시급하게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방안들을 제시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 후보시절부터 공약한 '양육비 선지급제'가 있다. '양육비 선지급제'는 양육비를 지급받지 못하는 한부모가족에게 정부가 우선적으로 지급하고, 미지급 부모로부터 돌려받는 제도다.
해외의 '양육비 선지급제'는?
국내에서는 생소한 '양육비 선지급제'는 해외 선진국들은 이미 시행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독일과 프랑스, 덴마크가 있다. 국회입법조사처가 지난해 5월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독일은 1980년부터 양육비 선지급제를 도입했다. 자녀가 18세가 되기 전까지 매달 약 27만원에서 50만원 사이를 지급한다. 아동이 12세 미만이면 전부 지급을, 12세에서 18세까지는 저소득층 등 조건부에 한해 지급한다.
프랑스 역시 독일과 마찬가지로 한부모 가정에게 양육비 선지급을 보편적으로 지원한다. 자녀의 나이가 21세 미만인 경우로 한정해 독일보다 지원 기간이 길다. 매달 약 27만원 정도를 지원한다. 덴마크의 경우 18세 미만 자녀를 양육하는 가정에 보편 지원을 하고 있다. 자녀가 대학에 갈 경우 지원 기간이 늘어나기도 한다.
하지만 양육비 선지급제 도입 시 우려할 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선지급 후 양육비 미지급자에게 구상권을 청구할 때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양육비 선지급제가 활성화된 독일 역시 2022년 기준 미지급자로부터 양육비 회수율은 약 20%로 높지 않다. 구상권 청구보다는 아동 복지의 일환으로 양육비 지급에 중점을 맞췄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뉴스포스트>가 이달 7일 인터뷰를 진행한 강민서 양육비해결모임 대표도 양육비 선지급제에 우려 요소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국가에서 양육비를 지급하면 위장이혼을 하고 부정수급을 하는 사례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며 "부정수급자들이 많아지면 양육비가 절실한 한부모 가정 양육자들이 도리어 피해를 볼 수 있다. 모든 부모들이 자녀에게 떳떳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선지급제 도입, 내년에 가능할까
양육비 선지급제 도입에 대한 논의는 2022년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면서부터 시작됐지만, 여전히 시행되지 않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부터 공약했음에도 산적한 정치적 현안들에 가로막혀 양육비 문제에 대한 논의는 밀리고 있었다. 한부모 가정 당사자들의 고통은 지속되고 있었다.
정부와 여당은 지난 20일 모처럼 머리를 맞대고 내년에 양육비 선지급제를 도입하겠다고 발표했다. 김상훈 국민의힘 정책위원회 의장은 당정협의회가 끝나고 "한부모 가정예산 양육비는 선지급제로 도입하도록 했다"며 "아마 20만원 수준으로 지원이 될 것"이고 밝혔다. 다만 구체적인 계획에 대해 알려지지 않았다.
양육비 선지급제 도입과 관련한 논의는 꾸준히 진행돼 왔다. 여성가족부도 지난 5월 간담회를 통해 양육비 선지급제가 빠르면 내년에 도입할 수 있다고 밝혔다. 3년 동안 시행 후 제도 성과와 양육비 회수율 분석 등을 통해 보완 검토한다. 시행되면 약 1만 9천 명이 혜택을 볼 전망이다.
선지급제 대상은 중위소등 100% 이하 가구 중 미성년 자녀가 복리가 위태롭거나, 위태롭게 될 우려가 있는 경우다. 월 20만원의 양육비를 미성년 자녀가 만 18세가 될 때까지 지급한다. 양육비 미지급자의 동의 없이도 금융소득 정보 조회가 가능하도록 해 회수율을 높인다. 징수는 국세청이 아닌 양육비이행관리원의 자력으로 이뤄지도록 할 예정이다. 양육비이행관리원은 내달부터 독립법인이 된다.
양육비 선지급제 도입을 위해서는 반드시 법적 근거가 필요하다. 제22대 국회에서는 양육비 선지급제와 관련한 '양육비 이행확보 및 지원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총 4건 발의됐다. 특히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양육비 선지급제만 단독으로 다룬 '양육비 대지급을 위한 특별법안' 제정안을 대표 발의하기도 했다.
하지만 법안이 발의됐다고 해서 양육비 선지급제 도입 준비가 완료된 것은 아니다. 현재 5개의 법안 모두 소관 상임위원회에서 계류 중이다. 제21대 국회에서도 양육비 선지급제 도입을 위한 법안들이 발의됐지만, 국회 임기가 종료되면서 전부 폐기됐다. 구체적인 대책이 마련됐다면, 실행에 옮겨야 한다. 양육비 미지급 문제 해결을 위해 말뿐만 아니라 행동을 보여야 할 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