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민서 양육비해결모임대표 인터뷰
대법원 10년 청구 소멸 판단에 분노
"여전히 법망 교묘히 피해 미지급"
자녀 1명을 낳고 성인이 될 때까지 양육하기 위해서는 2억 6천만원이 필요하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엎친 데 덮친 격 고물가 문제와도 맞물려 부부가 함께 자녀 1명 키우기에도 벅찬 사회가 됐다. 이혼 후 혼자서 자녀를 양육하는 한부모 가정의 상황은 불 보듯 뻔하다. 비양육자가 적절한 시기에 양육비를 지급하는 건 한부모 가정에게는 생계 수단 못지않게 중요하다.
<뉴스포스트>는 '양육비 이행법'이 개정되기 전인 2020년 여름 '양육비잔혹史'라는 제목으로 양육비 미지급 문제를 기획 보도한 바 있다. 이듬해 양육비 미지급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면서 채무 불이행자에 대한 각종 제재가 이뤄졌다. 양육비를 받지 못해 고통받던 한부모 가정의 상황은 그간 얼마나 나아졌을까. 본지가 다시 한번 추적해 봤다. -편집자 주-
[뉴스포스트=이별님 기자] 이혼 후 양육비를 주지 않는 이들의 신상을 온라인상에 공개해 양육비 지급을 촉구하는 일명 '배드 페어런츠(Bad Parents, 나쁜 부모)' 운동이 2010년대 후반부터 2020년대까지 5년 이상 이어졌다. 법적 처벌까지 감수하면서 국가를 대신해 '나쁜 부모'를 응징하는 시민사회의 움직임은 여론의 폭발적인 지지를 얻었다.
시민사회계의 '나쁜 부모' 신상 공개 운동은 위법적 요소가 있음에도 소기의 성과를 이뤄냈다. 한부모·이혼 가정의 개별 문제로 치부됐던 양육비 미지급이 중요한 사회적 문제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이다. 2021년 7월에는 '양육비 이행확보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이하 '양육비 이행법')'이 개정되면서 양육비 미지급자에 대한 각종 제재가 이뤄졌다.
<뉴스포스트>는 '양육비 이행법'이 개정되기 약 1년 전인 2020년 6월 강민서 '양육비해결모임' 대표와의 인터뷰를 진행한 바 있다. 2018년 9월 '양육비해결모임'을 결성하고, 온라인 사이트 '배드 페어런츠'를 통해 양육비 미지급자들의 신상 정보를 공개했다. 강 대표 역시 전 남편으로부터 양육비를 지급받지 못한 피해자이기도 하다.
강 대표 2024년 현재에도 양육비 미지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2019년 새해 첫날 양육비 미지급 문제 해결을 위해 삭발 투쟁을 했던 강 대표의 머리카락은 그동안 허리까지 자랐다. 강 대표의 자라난 머리카락만큼 양육비 미지급 문제도 변화했을까. 본지는 이달 7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인근에서 강 대표를 다시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양육비 이행법 개정 이후는?
강 대표는 2021년 7월 양육비 이행법이 개정된 이후 한부모 가정의 삶은 크게 달라진 게 없었다고 전했다. 법 개정으로 양육비 미지급자에 대한 신상공개·운전면허 정지·감치명령 등의 제재가 이뤄졌지만, 양육비 미지급으로 고통받은 피해자들에게는 턱 없이 부족하다는 게 강 대표의 설명이다.
강 대표는 "양육비 미지급자가 운전면허 100일 정지 조치를 받으면, 100일만 참고 버틴 후 양육비를 주지 않는다. 몰래 운전을 해도 '안 걸리면 그만'이라는 식의 태도다. 걸린다고 해도 양육비 미지급으로 제재 중이라는 사실을 경찰이 바로 조회해서 알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신상공개 제재 역시 큰 효과는 없었다. 현재 양육비이행관리원 홈페이지에는 양육비 미지급자들의 실명과 생년월일, 주소 또는 근무지, 채무불이행 기간, 채무액 등이 공개되고 있다. 하지만 얼굴이 공개되지 않아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강 대표는 "미지급자의 신상이 공개된다고 해서 일일이 홈페이지를 들어가서 찾아보는 사람도 많지 않다"고 전했다.
가장 강력한 제재인 감치명령도 부족한 게 많다는 입장이다. 강 대표는 "양육비 이행법 개정 이후에도 법원에서 미지급자에 대한 감치를 기각하는 사례가 부지기수"라면서 "법원 측은 오히려 '양육비 이행법도 개정됐으니 감치까지 할 필요 없다'는 식으로 기각을 시켜버리는 경우가 많다. 제가 2003년 전 배우자에게 양육비 소송을 걸었을 때보다 감치가 더 어려워진 거 같다. 그때는 바로 30일 감치 하라는 판단이 나왔다"고 말했다.
등록된 거주지와 실제 거주지가 다를 시 감치가 어려운 점은 4년 전과 비슷하다고 강조했다. 거주 지역이 다를 경우 관할 경찰서의 협조가 이뤄지지 않는다고 강 대표는 설명했다. 또한 양육비 미지급자가 감치명령 집행 기간인 6개월 동안 도주나 위장전입 등의 방법으로 피하면 감치가 무산되는 사례도 발생하고 있다.
양육비 청구, 자녀 30살 되면 끝?
강 대표에 따르면 양육비 이행법 개정 이후에도 '나쁜 부모'들은 밀린 채무를 지급하지 않기 위해 교묘히 법망을 빠져나가고 있다. 양육비 미지급자들의 공격이 더욱 거세지면서 강 대표가 운영하는 '양육비해결모임'은 온라인보다 오프라인 활동에 집중하게 됐다. 문제가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가운데, 지난달 18일 대법원에서는 청천벽력 같은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은 미성년 자녀를 키우면서 상대방에게 받지 못한 양육비는 자녀가 성인이 된 후 10년이 지나면 청구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아들을 홀로 키운 A모 씨가 전 남편을 상대로 양육비 청구 소송을 제기했지만, 자녀가 성인이 되고 23년이 지났다는 이유로 A씨의 청구를 기각한 것이다.
강 대표는 "제 아이가 올해 26살이다. 4년만 양육비 안 주고 버티면 된다는 말인가. '나쁜 부모'에게 자녀가 성인이 된 후 10년 안에 면죄부를 주는 판결"이라며 "양육비를 받기 위해서는 이행 명령 신청부터 청구 소송까지 절차가 너무 길다. 최소 몇 년이 걸리기도 한다. 그 사이에 자녀가 30살이 되면 끝이라는 것인가"라고 토로했다.
이어 "'양육비해결모임'에는 양육비 청구 소송이 뭔지도 몰랐다가, 뒤늦게 알게 된 분들도 많이 오신다"라며 "양육비는 자녀의 권리다. 일반적인 채권과 똑같이 보면 안 된다. 어떻게 소멸시효를 따지는가. 아이들의 고통과 양육자들의 목소리를 국가가 들어야 한다. 이번 대법원의 판단에 적극적으로 대응할 계획이다"라고 덧붙였다.
양육비 미지급 문제, 남은 과제는?
소멸시효 문제와는 별개로 양육비를 받지 못하는 한부모 가정을 위한 지원이 필요하다. 강 대표는 이들의 고통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양육비 이행 절차나 청구 소송 등의 과정이 너무 복잡하고 시간이 많이 걸린다"면서 "복잡하고 시간이 길어질수록 한 부모 가정의 고통은 커진다. 절차를 간소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 밖에도 ▲ 양육비 미지급자 제재 강화 ▲ 한부모 가정 구성원 상담 서비스 강화 ▲ 양육비 선지급 제도 고려 등을 제시했다. 강 대표는 "양육자가 행복해야 우리 아이들이 행복하게 잘 자랄 수 있다. 건강한 정신이 곧 건강한 사회를 만든다"며 "대통령의 공약이었던 양육비 선지급에 대해서는 이제 말뿐이 아닌 답을 주셨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이혼·한부모 가정에 대한 막연한 사회적 편견도 양육비 미지급 문제 해결에 큰 걸림돌이다. 강 대표는 "많은 분들이 양육비를 받지 못하는 한부모 가정을 두고 '전 배우자에게 얼마나 잘못했으면'이라는 식의 말을 너무 쉽게 하신다. 무의식적인 비난임에도 얼마나 상처가 되는지 모른다"며 "잘못한 게 있다면 양육권을 왜 우리가 가져올 수 있었겠는가"라고 토로했다.
마지막으로 강 대표는 "양육비를 받는 과정이 너무 힘들어 이를 포기하시는 양육자들도 많다. 하지만 양육비는 아이의 권리다. 양육자의 행복도 중요하지만, 1순위는 단연 아이다"라며 "양육비는 아이의 권리이기 때문에 받는 것을 절대 포기하지 않으셨으면 바란다"고 당부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