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동두천시 옛 성병관리소 부지 방문
건물 철거 두고 갈등..."역사 지우면 안돼" 

불완전한 독립은 또 다른 역사적 아픔을 낳았다. 곧바로 이어진 동족상잔의 비극과 군사 독재는 무수한 국가 폭력을 양산했다. 미군이 진주하면서 국가 폭력의 양상은 성폭력까지 확대됐다. 기지촌 여성들을 향한 잔인한 국가 성폭력은 권위주의 시대와 함께 남성중심적 문화까지 더해져 오늘 날까지 철저히 외면당하고 있다. <뉴스포스트>는 반드시 기억해야 할 역사적 비극을 작게나마 지면에 담고자 한다. -편집자 주-

경기도 동두천시에 위치한 옛 성병관리소 건물. (사진=뉴스포스트 이별님 기자)
경기도 동두천시에 위치한 옛 성병관리소 건물. (사진=뉴스포스트 이별님 기자)

[뉴스포스트=이별님 기자] 지난 13일 경기도 동두천시에 위치한 소요산은 앙상한 나무들과 전날 내린 눈으로 뒤덮여 있었다. 자연이 빚은 풍광은 아름다웠지만, 영하권 추위가 이어지는 평일 오후 시간대라서 이곳을 방문한 등산객들은 많지 않았다.

산의 적막함은 등산객의 발걸음이 아니라, 옛 성병관리소를 둘러싼 첨예한 대립이 대신 채웠다. 시민단체들과 소요산 일대 상인들이 옛 성병관리소 건물 철거를 두고 '현수막 전쟁'을 벌이고 있었다.

'동두천 옛 성병관리소 철거저지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이하 '위원회')'는 옛 성병관리소 건물 옆 주차장에 농성장을 마련해 170일이 넘도록 철야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경기도를 포함한 전국의 시민단체 65곳이 연합해 설립한 위원회는 옛 성병관리소 건물 철거를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지난 13일 경기도 동두천시 옛 성병관리소 인근 주차장에서 시민단체들이 건물 철거를 반대하며 농성장을 마련했다. (사진=뉴스포스트 이별님 기자)
지난 13일 경기도 동두천시 옛 성병관리소 인근 주차장에서 시민단체들이 건물 철거를 반대하며 농성장을 마련했다. (사진=뉴스포스트 이별님 기자)

농성장에는 "성병관리소 철거는 역사를 지우고 숨기는 행위다", "동두천 옛 낙검자수용소 철거는 국제인권조약 위반" 등의 현수막이 둘러져 있었다. 베트남의 구찌터널과 폴란드의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예시로 들며 옛 성병관리소를 역사 관광자원으로 활용하자는 현수막도 눈에 띄었다.

반면 농성장 맞은편에는 철거를 바라는 인근 소상공인들의 현수막들이 상당수 걸려 있었다. "성병 걸려 치료하던 곳이 무슨 유산이라고 보존하냐", "성병관리소 보존보다 먹거리가 시급하다", "유산이라고 지키려면 너희 동네에 가져가라" 등 위원회는 물론 성병관리소에 수용됐던 이들에 대한 적대감이 가득했다.

경기도 동두천시에 위치한 옛 성병관리소 앞 감시 초소. (사진=뉴스포스트 이별님 기자)
경기도 동두천시에 위치한 옛 성병관리소 앞 감시 초소. (사진=뉴스포스트 이별님 기자)

현재 옛 성병관리소 건물 부지를 소유한 동두천시는 철조망과 가시 철망 등으로 철저하게 외부 출입을 전면 차단했다. 건물 외부를 눈으로만 보는 것도 쉽지 않았다. 빼곡히 둘러진 철조망과 앙상한 나뭇가지들이 시야를 가렸다. 건물 뒤편은 대형 비닐로 전부 가려졌다. 

좁은 시야로 보이는 옛 성병관리소 건물은 현대사의 어두운 단면과 같았다. 2층짜리 1자형 건물은 수많은 여성들이 수용하기에는 한눈에 봐도 비좁았다. 낡고 해진 건물 외벽에는 철없는 낙서와 그라피티가 그려져 있었다. 창문 앞의 쇠창살과 건물 앞 감시초소는 삼엄함과 위압감까지 느껴졌다.

지난 13일 경기도 동두천시 소요산 입구에서 옛 성병관리소 철거를 찬성하는 현수막들이 걸려있다. (사진=뉴스포스트 이별님 기자)
지난 13일 경기도 동두천시 소요산 입구에서 옛 성병관리소 철거를 찬성하는 현수막들이 걸려있다. (사진=뉴스포스트 이별님 기자)

감금된 여성을 원숭이에 비유한 '몽키하우스'

옛 성병관리소는 지난 1973년 6766㎡ 2층 규모로 지어졌다. 1996년 보건소 조직 내 성병관리팀이 없어질 때까지 주한미군 기지촌 여성들의 성병을 치료·관리하겠다는 미명하에 운영됐다. 경기도에서만 최소 6곳의 성병관리소가 운영됐다고 알려졌지만, 현재까지 남아있는 건물은 소요산에 위치한 1곳뿐이다.

성병에 감염됐거나, 감염됐다고 의심되는 여성들은 성병관리소에 불법적으로 감금됐다. 감금된 여성들은 강제로 독한 항생제 주사를 맞아야 했고, 완치 전까지 스스로 나올 수 없었다. 심각한 정신적·신체적 피해를 당한 것은 물론 일부는 목숨까지 잃었다. 여성들의 울부짖는 모습이 동물원 우리 안 원숭이와 비슷하다며 '몽키하우스'로도 불렸다.

경기도 동두천시에 위치한 옛 성병관리소를 둘러싼 철조망. 철조망에는 접근 금지 안내판과 함께 꽃과 리본이 달렸다. (사진=뉴스포스트 이별님 기자)
경기도 동두천시에 위치한 옛 성병관리소를 둘러싼 철조망. 철조망에는 접근 금지 안내판과 함께 꽃과 리본이 달렸다. (사진=뉴스포스트 이별님 기자)

동두천시는 지난해 소요산 개발 사업을 위해 옛 성병관리소를 철거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위원회 관계자는 <뉴스포스트>에 "작년에 동두천시가 새벽에 굴삭기를 끌고 와 기습적으로 철거를 시도한 적이 있다"며 "회원들이 몸으로 막으면서 시도가 저지 됐지만, 언제 철거될지 몰라 3교대로 조를 짜서 농성장을 24시간 지키고 있다"고 말했다.

지방자치단체와 시민단체가 맞붙는 가운데, 정작 기지촌 여성들을 유린하던 국가는 묵묵부답이다. 피해 여성들에게 국가는 여전히 사죄하지 않고 있다. 경제개발을 인권보다 우선시했던 시대에서 국가 자행한 범죄는 제대로 기록되지 않았다. 옛 성병검사소는 무관심 속에서 국가 성폭력의 실체적 증거로 남았다.

옛 성병관리소를 둘러싼 철조망에는 접근을 금지한다는 동두천시의 표지판이 달렸다. 표지판 중심에는 꽃과 리본들이 자리했다. 위원회 관계자는 "시민들도 이곳을 방문해 여기에 리본과 꽃들을 달았다"며 "옛 성병관리소 보존과 피해 여성들의 아픔을 기리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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