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美셰일가스·COTC 등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투자 단행
- 모빌리티로 재편되는 산업...석유화학기업으로 이례적 투자
- 활발한 인수합병 통한 스페셜티 부분 확대와 합종연횡 전략

[뉴스포스트=이상진 기자] 롯데케미칼이 7일 지난해 잠정실적을 발표했다. 매출액은 15조 1,235억 원, 영업이익은 1조 1,076억 원이었다. 전년 대비 매출액은 5.9%, 영업이익은 43.1% 감소한 수준이다.

롯데케미칼 울산 공장. (사진=롯데케미칼 제공)
롯데케미칼 울산 공장. (사진=롯데케미칼 제공)

업계는 롯데케미칼을 위시한 국내 석유화학산업 전반의 부진한 성적표에 놀라지 않았다. 이미 예견됐던 일인 까닭이다. 미국과 중국에서의 석유화학제품 공급 증가로 업황이 둔화되리라는 전망은 수년 전부터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졌다. 실제 지난 2018년부터 글로벌 석유화학 시장은 다운사이클에 접어들었다.

수년 단위로 호황과 불황이 번갈아 찾아오는 산업군에서 전망과 분석보다 중요한 것은 결단과 실천이다. 지난해 부진한 실적의 늪에서도 롯데케미칼은 다가올 호황을 준비했다. 투자를 늘리며 사업 영역의 다변화를 꾀했다.

글로벌 석유화학산업은 오는 2022년까지 수요를 초과하는 공급 증가로 부진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2023년부터는 업황이 다소 개선된다는 분석이다. 탄탄한 포트폴리오로 때를 기다리고 있는 롯데케미칼의 3년 후가 기대되는 이유다.   
 


위기를 기회로 반전...美셰일가스 품다


(왼쪽 셋째)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미국 루이지애나주 레이크찰스 공장 준공식. (사진=롯데케미칼 제공)
(왼쪽 셋째)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미국 루이지애나주 레이크찰스 공장 준공식. (사진=롯데케미칼 제공)

근래의 미국은 글로벌 석유화학 시장에 두 가지 방향에서 큰 위협이 되고 있다. 하나는 중국과 무역 갈등을 일으키며 세계 시장의 석유화학 제품 수요를 낮추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석유화학 공급 과잉의 원인이 된다.

미국의 또 다른 위협은 바로 셰일가스다. 북미 셰일가스 기반 에탄크래커는 석유화학 제품의 원가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요소다. 기존 석유화학기업들은 이에 대비하기 위해 원가를 낮추는 설비를 갖추기 위해 노력하는 등 여러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

하지만 롯데케미칼은 미국 셰일가스의 위협을 자사의 사업 영역에 포함해 기회로 탈바꿈시켰다. 국내 화학사 최초로 미국 현지에 31억불(3조 6,500억 원 규모)을 투자해 셰일가스를 원료로 에틸렌 100만 톤을 생산하는 규모의 공장을 건설한 것이다.

미국 루이지애나주 레이크찰스에 축구장 152개 크기로 들어선 대규모 복합 공장은 지난 2014년 2월 기본계약을 체결했다. 문제는 기본계약을 체결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셰일가스의 원가경쟁력에 의구심을 품게 하는 상황이 찾아왔다는 것.

2014년 하반기 한때 저유가로 셰일가스가 원가경쟁력을 상실했고, 당시 글로벌 기업들의 관련 프로젝트가 대거 취소되기도 했다. 하지만 신동빈 회장은 셰일가스에 대해 확고한 의지를 가지고 뚝심으로 사업을 추진했고, 롯데케미칼의 美 현지 공장은 지난 2016년 6월 기공식 거쳐 2019년 완공됐다.

트럼프 미 대통령은 공장 완공식에 보낸 축전에서 “31억 달러에 달하는 이번 투자는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가장 큰 대미 투자이자 한국기업이 미국의 화학공장에 투자한 것으로는 가장 큰 규모”라며 “미국과 한국에 서로 도움이 되는 투자이자 한미 양국 동맹의 굳건함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말하기도 했다.

롯데케미칼은 미국 현지 셰일가스를 활용하는 공장을 확보해 기존 에틸렌 원료인 나프타에 대한 의존성을 줄였다. 그 결과 유가 변동에 따른 리스크를 최소화하고 셰일가스를 통한 원가 경쟁력도 확보하게 됐다.
 


미래 산업 중심인 모빌리티를 대비 


차이나플라스2019 롯데그룹 홍보부스 조감도
차이나플라스2019 롯데그룹 홍보부스 조감도

롯데케미칼은 지난 7일 개최한 기업설명회를 통해 모빌리티 산업에 진출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1월 합병한 롯데첨단소재를 활용해 모빌리티 시대의 소재 개발에 나선다는 복안이다.

롯데케미칼은 기업설명회에서 “롯데케미칼 BP 컴파운드 사업 부문을 첨단소재 사업 부문으로 옮겨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과 협업을 가속해 자동차 소재 업체로 만들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첨단소재 부문는 현재 글로벌 완성차 OEM 업체들과 긴밀한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다”며 “현대차를 포함한 여러 OEM과의 협업을 가속화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모빌리티는 자동차산업의 미래라고 불린다. 현대자동차그룹을 포함한 글로벌 자동차 제작사들이 저마다 모빌리티 전략을 발표해 추진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지난 1월 7일부터 10일까지 나흘간 열린 ‘CES2020’에서 UAM(도심 항공 모빌리티) 중심의 미래 모빌리티 비전을 제시하기도 했다.

모빌리티 산업에는 자동차 제조사 이외에도 우버 등 다양한 분야의 글로벌 기업들이 들어오고 있다. 상당한 고부가가치가 예상되는 것이다. 석유화학기업으로서는 이례적인 롯데케미칼의 모빌리티 산업 진출 선언은 미래 가장 확실한 먹거리를 선점하는 석유화학기업이라는 의미가 있다.
 


스페셜티 강화와 합종연횡으로 COTC 파고 탄다


글로벌 석유화학의 큰 흐름 가운데 하나는 COTC(Crude Oil to Chemical)다. 정유사가 사업영역을 석유화학으로 확대하는 것을 말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아람코와 에쓰오일이다. ‘세계에서 가장 비싼 기업’이라고 불리는 사우디아라비아의 국영 석유기업인 아람코는 에쓰오일의 지분 63.4%를 보유한 대주주다.

아람코는 정유·석유화학 부문에서 사상 최대 규모인 5조 원을 투자해 지난 2018년 6월 에쓰오일의 복합 석유화학시설을 완공하고 같은 해 11월부터 가동하고 있다. 아람코는 오는 2022년까지 7조 원 규모의 2차 투자를 통해, 스팀 크래커와 올레핀 하류시설(SC&D·Steam Cracker&Downstream)을 만들어 석유화학 제품 중심 생산시설을 확충할 예정이다.

정유사가 석유화학 시장에 진출하는 까닭은 전기차와 수소연료전지차 등 자동차 산업의 패러다임이 친환경차로 바뀌는 데 있다. 가솔린과 디젤 등 화석연료 중심의 자동차 산업 패러다임이 전기와 수소 등 친환경 연료 중심의 패러다임으로 변화하는 중이다. 이에 따라 석유 시장 패권이 약화될 것이란 우려에, 정유사가 새로운 사업영역을 찾고 있는 것이다.

또 정유 사업이 중동 정세 등 대내외적 요소로 변동성이 큰 시장인 반면, 석유화학 시장은 일정 부분 안정성이 확보된다는 점도 정유사가 석유화학 시장에 눈을 돌리는 이유다. 기존 석유화학 기업들은 정유사의 시장 진출에 공급 과잉과 원가 경쟁력 등의 이유로 긴장하고 있다.

롯데케미칼은 COTC라는 흐름에 맞서 두 가지 전략으로 대응하고 있다. 하나는 고부가가치 사업인 스페셜티 부문을 늘리는 전략이다.

지난해 8월 롯데케미칼은 지분 100%를 소유하고 있던 스페셜티 전문 소재 자회사 롯데첨단소재를 합병한다고 밝혔다. 모빌리티라는 신산업 분야 전문 소재를 만들겠다는 복안이 있던 터였다. 본래 삼성SDI 사업부였던 롯데첨단소재는 지난 2016년 롯데에 편입됐고, 편입된 지 3년 만인 올해 1월 롯데케미칼에 흡수 합병됐다.

롯데케미칼은 현재 인수·합병할 스페셜티 기업들을 추가로 물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는 롯데케미칼이 지분 31.1%를 보유하고 있는 롯데정밀화학을 인수·합병 대상에 포함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왼쪽부터) 허용수 GS에너지 대표, 임병연 롯데케미칼 대표. (사진=롯데케미칼 제공)
(왼쪽부터) 허용수 GS에너지 대표, 임병연 롯데케미칼 대표. (사진=롯데케미칼 제공)

또 글로벌 정유사의 COTC 위협에 롯데케미칼은 현대오일뱅크에 이어 GS에너지와 손잡고 국내 COTC 동맹으로 맞불을 놓기도 했다.

지난해 7월 롯데케미칼과 GS에너지는 서울 잠실 롯데 시그니엘에서 비스페놀A(BPA, Bisphenol-A)과 C4유분 제품을 생산하는 합작사 설립 계약을 체결했다. 두 회사의 합작사인 ‘롯데GS화학’은 올해 2월 12일 공식 출범했다.

롯데케미칼은 롯데GS화학에 총 자본금 1,632억 원을 납부한다. 이로써 지분 51%를 확보하게 된다. GS에너지는 지분 49%를 갖는다. 초대 대표이사에는 롯데케미칼 기초소재사업 신규사업부문장인 임동희 전무가 선임됐다.

신규 합작사는 오는 2023년까지 총 8,000억 원을 투자해 연간 BPA 제품 20만 톤과 C4유분 제품 21만 톤 생산규모의 공장을 건설한다. 공장은 롯데케미칼 여수 4공장 내 약 10만 제곱미터의 부지에 들어설 예정이다.

합작사를 통해 롯데케미칼은 폴리카보네이트의 생산 원료인 BPA를 합작사로부터 공급받아 제품의 가격 경쟁력 향상을 도모하고 기존의 C4유분 제품 사업을 확장할 수 있게 됐다.


※참고자료
화학산업 인적자원개발위원회, <화학산업 인적자원개발위원회 이슈리포트:석유화학산업의 최근 동향과 전망, 그리고 2030 메가트렌드>, 한국석유화학협회, 2019.
성동원, <이슈보고서:정유사 정제마진 동향과 중장기 전략 방향>,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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