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이미 오래전부터 인구 절벽을 우려해 국가적 의제로 다뤄왔다. 참여정부 시절인 2006년부터 현재까지 ‘저출산 대책’이라는 명목으로 쏟아부은 예산만 225조. 그러나 이러한 노력에도 국내 출산율은 나날이 악화되며 세계 최저치로 곤두박질쳤다.
저출생 문제의 화살은 아이를 낳지 않는 부부, 비혼 청년에게로 향했다. 이들이 선택한 ‘아이 없는 삶’은 사회경제적 여건이나 개인의 삶의 질 등 다양한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였지만, 개인의 ‘이기심’으로 치부되기 일쑤였다.
이제는 ‘출산장려정책’으로 요약되는 국가주도적 저출생 문제 해결 방식을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개인의 삶을 존중하고, 결혼과 출산이 부담되지 않는 사회로 전환해야 한다는 인식이다. <뉴스포스트>는 아이 없는 삶을 선택한 이들과 만나 목소리를 듣고, 어떤 미래가 예상되고 대응 전략은 무엇인지 전문가의 눈으로 살펴본다. -편집자주
[뉴스포스트=김혜선 기자] 225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초 슈퍼 예산’으로 책정된 2021년도 예산안의 절반에 육박하는 엄청난 돈이다. 지난 14년간 ‘저출생 대책’이라는 명목으로 정부가 쏟아 부은 예산이기도 하다.
정부는 지난 2006년부터 지금까지 1~3차에 걸쳐 ‘저출산 고령사회 기본계획’을 세우고 인구구조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1차 저출산 고령사회 기본계획(2006~2010)에는 약 20조원이, 2차(2011~2015)에는 약 61조원이 투입됐다. 지난 2016년도부터 올해(2020)까지 추친 중인 3차 기본계획에는 지난해까지 약 104조원이 투입됐고, 올해 책정된 저출생 예산은 40조원이다.
하지만 밑 빠진 독이었다. 천문학적인 돈이 쏟아 부어지는 사이 올해 2분기 합계출산율은 0.84명으로 지난 2008년 집계를 시작한 이래 사상 최저치로 내려앉았다. 올해 상반기 태어난 아기도 14만 2천여명에 그치며 역대 최소를 기록했다. 이러다가는 ‘연간 출생아수 30만 명선 붕괴’가 올해 실현될 수 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출생률의 급격한 저하는 △가임기 여성 △결혼하는 여성 △결혼한 여성의 출산이 동시에 줄어들기 때문이다. 가임기 여성 인구 감소는 예정된 수순이다. 통계청 장래인구추계에 따르면, 15~49세 여성 인구는 2010년 1316만 명, 2015년 1275만 명, 2020년 1194만 명으로 줄어들고 있다. 초혼부부 혼인 건수도 지난 2010년 25만4천여 건에서 2019년 18만4천여 건으로 줄어들었다.
최근에는 ‘일단 결혼하면 애를 낳는다’는 사회의 굳건한 인식을 단번에 깨트리는 통계도 나온다. 최후의 보루로 여겨지던 결혼한 여성의 출산율이 지난 2015년 이후로 크게 줄고 있기 때문이다. 인구 전문가인 서울대 경제학부 이철희 교수가 지난 2018년 발표한 ‘신생아 수 변화요인 분석과 장래전망’에 따르면, 배우자가 있는 20대 초반 여성의 출산율은 2012년 0.444에서 2017년 0.294로 떨어졌다. 20대 후반 여성의 출산율도 0.276(2012년)에서 0.229(2017년)로 낮아졌고 30대 초반 여성도 같은 기간 0.203에서 0.175로 감소했다.
보험연구원 ‘고령화리뷰’에 올라온 이태열 선임연구위원의 ‘결혼, 출산, 다자녀 기피 현상이 출생아 감소에 미치는 영향’에서도 2015년을 기점으로 결혼과 출산, 다자녀 모두를 기피하는 현상이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 연구위원은 “2015년 이후에 심각해진 결혼 기피 현상이 주택가격 상승이 원인인지 아니면 최근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한 양성 갈등 분위기 때문인지 쉽게 판단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헛발질’한 기백조 저출산 예산
수백조원의 예산안이 투입된 저출산 정책은 왜 실패했을까. 정부의 저출산 공익광고에 대한 시민들의 반응이 그 이유를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아이보다는 생활의 안정이 먼저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젠 엄마가 되고 싶습니다. 사교육비가 힘들어 동생 없는 외로움을 더해줬습니다. 동생을 선물하고 싶습니다”
지난 2013년 행정안전부가 공개한 저출산 공익광고 문구다. 당시 유튜브에 공개된 이 광고에는 “감성팔이다. 광고비를 날렸다” “가족계획 자녀계획을 고민하는데 엄마만 있고 아버지 존재는 어디에도 없다” “소름돋는 부드러운 모욕적 폭력” “동생을 선물하고 싶으면 돈 벌어서 사주던가” 등 시민들의 악플이 달렸다.
그동안 정부는 출생아 수 제고를 목표로 하는 국가주도의 출산 정책을 펴왔다. 저출산 문제도 결혼해 아이 낳기를 꺼려하는 사회구조에 초점을 맞추기 보다는 ‘아이를 낳지 않는’ 개인에게 책임을 돌리는 식이었다. 결혼과 출산이라는 한 인간의 중요한 생애사건을 정책과 재정투입을 통해 ‘고치려는’ 시도 자체가 잘못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재정 투입이 효율적으로 이뤄졌느냐에 대한 지적도 끊임없이 제기됐다. 정부가 ‘저출산 예산’이라고 선정한 항목에는 출산율 제고와는 동떨어진 항목이 수두룩하다는 지적이다. 2018년도 시행계획 예산을 들여다보면 ‘대학인문 역량강화’ 항목에 1907억 원이라는 큰 규모의 예산을 책정했다. ‘대학 구조개혁 추진’ 사업도 68억원, ‘대학 사회맞춤형 학과 지원’ 항목에 844억 원이 들어갔다. 저출산과는 전혀 상관이 없어 보이는 ‘청년 해외취업 촉진’ 사업에도 424억 원이 들어갔다.
이러한 ‘헛발질’은 지난 10년 간 반복돼왔다. 상기한 예산 항목은 2017년도 저출산 예산에도 그대로 포함돼있었다. 지난 2015년도 저출산고령화사회 기본계획에는 저출산, 고령화 항목 외에 ‘성장동력’ 사업이 포함돼 ‘마을기업 육성 및 컨설팅 지원’에 124억 원, ‘글로벌 청년리더 양성’에 1154억 원 등이 편성됐다.
저출생 정책 전환, 딩크 마음 얻을까
정부도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고 지난해 2월 ‘제3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을 이례적으로 수정했다. 3차 계획은 올해(2020년)까지 진행되는 5개년 계획인데, 약 2년의 시간이 남은 시점에서 개편한 것이다. 대학 관련 정책이나 청년취업 등 저출생과 관련이 없는 항목들은 과감히 구조조정하고 양육과 돌봄 예산에 힘을 실었다.
기존의 ‘출산 장려 정책’도 모든 세대가 양육하는 ‘함께 돌봄 사회’를 지향하는 식으로 바뀌었다. 무작정 아이가 있으면 좋으니 낳으라는 말보다 아이 낳기 좋은 사회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2020년도 저출생 예산 40.1조원 중 절반 이상인 20.9조원은 ‘2040세대 안정적인 삶의 기반 조성’을 위해 주거지원과 일자리 지원을 강화하는 내용이 담겼다. 다음으로 예산이 많이 책정된 항목은 ‘돌봄체계 구축’으로 △국공립 어린이집 확충 △시간제보육 서비스 확대 △초등돌봄 확대 등에 13.2조원이 책정됐다.
내년도(2021년도)부터 5년간 시작되는 ‘제4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는 어떻게 변화할까. 대통령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의 최근 행적을 살펴보면 ‘일하는 부모’와 ‘성평등’이라는 주제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인다.
지난 7월 17일 저출산고령위는 ‘일하는 모든 부모를 위한 육아휴직제도 개편방안’ 정책토론회를 열고 육아휴직제도 적용을 확대하는 내용의 개편방안을 제시한 바 있다. 기존 고용보험 가입 근로자를 대상으로 한 육아휴직제도를 △특수형태고용종사자 △프리랜서 △자영업자 등 소득활동을 하는 취업자 전체로 확대하는 내용이다.
지난 28일 열린 ‘초저출생 시대, 2030 여성의 삶’ 포럼에서는 저출산 대응을 위한 성평등 노동 실현 방안을 모색하는 자리를 가졌다. 발제를 맡은 윤자영 교수는 “미혼 여성의 결혼과 출산 의향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일자리의 실질적 안정성”이라며 “기혼 여성도 마찬가지로 일자리의 안정성이 높으면 출산에 긍정적 영향을 미쳤다”고 강조했다. 이날 포럼에서는 △성평등 공시제 도입 △저평가 여성 집중 일자리 개선 등 정책 대안이 제시됐다.
제4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은 오는 12월 발표된다. 이번에 담기는 정부의 저출생 대책은 딩크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을까. <뉴스포스트>는 딩크 부부와 신혼 부부 등 심층 인터뷰를 통해 이들이 정말 바라는 사회의 모습을 들여다보고자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