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이미 오래전부터 인구 절벽을 우려해 국가적 의제로 다뤄왔다. 참여정부 시절인 2006년부터 현재까지 ‘저출산 대책’이라는 명목으로 쏟아부은 예산만 225조. 그러나 이러한 노력에도 국내 출산율은 나날이 악화되며 세계 최저치로 곤두박질쳤다.
저출생 문제의 화살은 아이를 낳지 않는 부부, 비혼 청년에게로 향했다. 이들이 선택한 ‘아이 없는 삶’은 사회경제적 여건이나 개인의 삶의 질 등 다양한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였지만, 개인의 ‘이기심’으로 치부되기 일쑤였다.
이제는 ‘출산장려정책’으로 요약되는 국가주도적 저출생 문제 해결 방식을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개인의 삶을 존중하고, 결혼과 출산이 부담되지 않는 사회로 전환해야 한다는 인식이다. <뉴스포스트>는 아이 없는 삶을 선택한 이들과 만나 목소리를 듣고, 어떤 미래가 예상되고 대응 전략은 무엇인지 전문가의 눈으로 살펴본다. -편집자주
[뉴스포스트=김혜선 기자] 연예인 후지타 사유리 씨가 일본에서 정자를 기증받아 출산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자발적 비혼 출산에 대한 공론의 장이 열렸다. 그동안 정부의 저출산 정책은 ‘결혼한 부부’를 대상으로 수립됐는데, 다양한 가족 형태를 수용해야 한다는 논의가 활발하다.
비혼 출산, 불법과 합법의 경계
사유리 씨의 비혼 출산 소식에 국내에서는 응원의 목소리가 들끓었다. 이미 국민들은 비혼 출산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이 증가하고 있다는 통계도 나왔다. 지난 18일 통계청 ‘2020년 사회조사 결과’에서는 결혼하지 않고도 자녀를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30.7%를 차지했다. 비혼 출산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은 지난 2012년(22.4%) 이후 꾸준히 늘고 있다.
동시에 사유리 씨가 “한국에서는 미혼이면 정자 기증 방식의 출산이 불법이다”고 지적한 부분에는 비판의 목소리가 커졌다. 이에 보건복지부에서는 다급하게 ‘불법은 아니다’라는 입장을 내놓았다. 정자 기증 등은 ‘생명윤리 및 안전에 대한 법률’에서 다루는데, 이 법에는 기혼 여성이 정자 기증을 받을 경우 배우자의 서면 동의가 필요하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미혼 여성’의 경우 별다른 규정이 없으니, 정자 기증을 통한 출산 자체는 불법이 아니라는 식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국내에서 정자 기증을 통한 미혼 여성의 출산은 불가능하다. 공익재단 한국공공정자은행연구원 관계자는 24일 뉴스포스트와의 통화에서 “미혼 여성이 정자 기증을 요청한 사례는 연구원 설립 이래 단 한번도 없었다”며 “그런 요청이 들어온다고 하더라도 보조생식술 윤리지침에 따라 기혼자만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한산부인과학회의 보조생식술 윤리지침에는 정자 공여 시술은 원칙적으로 법률적 혼인관계에 있는 부부만을 대상으로 시행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혼인관계 부부여도 시술 대상 부부 모두가 이를 수락하고 동의한 경우에만 시술이 가능하다. 정자은행연구원 관계자는 “우선 난임 클리닉에서 남성 난임이 확실한 경우에만 정자은행에 요청이 들어온다”며 “부부에게는 입양 등 다른 방안을 충분히 고려하기 위한 시간을 6개월에서 1년 정도 주어진다”고 설명했다.
미혼 여성이 정자를 공여받는 것도 불가능하지만, 실제 임신을 위한 시술 역시 국내 난임 클리닉 시스템상 불가능하다. 차병원 난임센터 관계자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우리나라에서 (미혼 여성의 시술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알고 있다”며 “병원에서도 산부인과 윤리강령 규정을 지키려고 하기 때문에 시술이 가능한 곳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결혼은 싫지만 아기는 낳고 싶어
앞서 저출산 기획 1편(수백조 예산에도...최근 5년 출산통계가 심상치 않다)에서는 최근 5년동안 결혼·출산을 기피하는 현상이 심화됐다는 연구 결과를 소개한 바 있다. 흥미로운 점은 차병원 난자은행을 찾는 미혼 여성의 수가 2015년을 기점으로 크게 늘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차병원 난임센터 37난자은행에 따르면, 미혼 여성이 난자 냉동을 한 사례는 2015년을 기점으로 급격하게 늘었다. 매년 2~30건에 그치던 미혼 여성의 난자 냉동 사례는 2015년에 71건, 2016년 243건, 2017년 292건, 2018년 546건, 2019년 493건으로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차병원 관계자는 ‘미혼 여성의 난자 냉동 사례가 많느냐’는 본지 질문에 “늘어나는 추세다. 2015년 전후로 해서 급격히 늘고 있다”면서 “당장은 결혼 생각이 없고, 나이는 들 텐데 향후 임신 가능성을 염두에 두신 분들이 조금이라도 건강한 난자를 보관했다가 이용하려는 생각을 갖고 계신 것 같다”고 말했다.
최근 급격히 늘어나는 난자 냉동 사례는 ‘언젠가는 아이를 낳겠다’는 전문직 여성의 생각을 언뜻 보여준다. 바꿔 말하면 자녀를 가질 계획은 갖고 있지만, 현재의 일과 생활을 포기하면서까지 자녀를 갖지는 않겠다는 얘기다.
이 같은 인식은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생애전망 인식조사’에서도 뚜렷이 드러난다. 여성정책연구원은 지난해 12월 만 20∼39세 6천35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했는데, 청년 여성들은 ‘결혼’과 ‘자녀 갖기’를 노동자로서 생존을 위협하는 위험한 사건으로 인식하고 있던 것. 김은지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파트너(배우자)가 그 위험을 적극적으로 나누지 않는다면 자녀 갖기는 바로 개인생존을 위협하므로 불가능한 선택이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은지 연구위원은 “청년세대, 특히 여성들에게 결혼은 규범이 아니며, 결혼은 자율적인 삶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인식이 매우 높은 상황”이라며 “결혼하지 않는 것이 저출산의 원인이 아니라 불평등한 관계가 비혼과 저출산 모두의 원인으로 해석된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청년세대들에게 아직까지 혼자서 자녀를 낳아 기르겠다는 대안적 삶의 전망을 가진 비율은 높지 않지만, 결혼제도를 거치지 않는 자녀양육에 대한 수용성은 높은 상황임을 고려할 때, 평등하고 다양한 파트너십이 가능하도록 다양한 삶의 전망을 담을 수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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