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경마공원 소속 김정준(33), 김태희(23) 기수 현장 인터뷰
김정준 기수 “가족단위 관람객 많아져...이름 불러주는 응원 힘”
김태희 기수 “한국경마, 해외처럼 건전한 스포츠로 거듭나길”
올해는 한국경마 시행 100년을 맞는 뜻깊은 해다. 한국경마는 지난 1922년 사단법인 조선경마구락부 설립 후, 그해 5월 20일 서울 동대문훈련원 광장에서 처음으로 시작됐다. 경마 불모지에서 시작한 한국경마는 지난 100년 동안 세계 7위 규모로 성장하며 국민에게 레저를 제공하고 농가소득 창출에 기여했다. 하지만 한국경마는 여전히 ‘사행성’이라는 성격만 강조되며 건전한 스포츠가 아니라는 오해를 받는 상황. 이에 한국경마 100주년을 맞아 그 본질을 짚어본다. - 편집자주
[뉴스포스트=이상진 기자] “최근 경마문화가 많이 바뀐 걸 몸으로 체감하고 있어요. 제가 기수를 시작하던 10여 년 전과 달리 가족단위 관람객들이 많아졌거든요. 경마장을 걷는 아이들을 볼 때마다 경마가 건전한 스포츠로 거듭났다고 느낍니다.” - 11년차 프로기수 김정준(33)
“기수로의 삶이요? 전혀 후회 없죠. 친구들 가운데 누구보다 꿈에 가까이 있다고 생각해요. 해외 경마처럼 밝고 환영받는 스포츠를 만들기 위해 노력할 거예요. 물론 1등도 중요하죠. (웃음)” - 1년차 수습기수 김태희(23)
한국경마에 대한 인식이 바뀌고 있다. 오해 속 외면받던 ‘사행산업’에서 ‘건전 스포츠’로 경마를 바라보는 시각이 변해서다. 뉴스포스트 취재진은 지난 26일 방문한 과천시 소재 ‘서울경마공원’에서 수많은 가족단위 경마 관람객들을 찾아볼 수 있었다. 이날 취재진은 한국경마 최전선에서 인식변화를 견인하는 경마 기수들을 만나 한국경마의 현재와 향후 나아가야 할 방향을 짚어봤다.
“승부조작이요? 발주대 열리면 달리기 바빠요”
-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올해 1년차 기수인 서울경마공원 소속 23살 김태희 기수입니다. 20살에 2년 동안 기수 후보생 교육을 받았고요. 지난해 여름에 데뷔를 했습니다. 수습 기간이 2년이라, 아직은 수습기수입니다.”
- 왜 기수가 되셨나요?
“사실 경마 기수가 될 생각은 전혀 없었습니다. 말산업특성화 고등학교를 졸업했는데요. 그때는 승마 교관이 되고 싶었어요. 그런데 경마장에서 실습을 해보니까, 기수가 저와 잘 맞는 것 같아 이 직업을 선택했습니다. 또 기수는 남자 기수와 여자 기수가 동등한 조건에서 달리는 평등한 스포츠라는 점도 마음에 들었죠. ”
- 기수로서의 삶, 후회하지는 않나요?
“전혀요. (웃음) 물론 모든 일에는 힘든 점이 분명히 있을 거예요. 그래도 제 친구들 중에는 가장 꿈에 가깝게 살고 있다고 생각해요. 경마 기수는 자기 노력과 성과가 확실하거든요. 높은 성과를 냈을 때 돌아오는 성취감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또 경마 기수가 연봉이 높은 편이기 때문에 직업적인 만족감이 큽니다.”
- 일각에선 아직도 경마 승부조작 등 의혹을 제기하기도 합니다만.
“제가 후보생 시절에도 경마 교육원에 교육을 가면 ‘경마 그거 다 짜고 치는 사기’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많았어요. 택시 기사님만 해도 그런 얘기를 하셨으니까요. 그때는 저도 막연히 그런 게 있나 싶기도 했고요. 하지만 프로 경마 기수의 세계에서 그런 일은 제가 아는 한 없습니다. 모든 기수가 발주대가 열리면 최선을 다해서 이 악물고 달리기 바쁩니다. (웃음)”
- 경마 기수로서 향후 목표가 궁금합니다.
“기수로 데뷔하고 40승을 거두기 전까지는 무게를 줄여서 달릴 수 있는 ‘감량 기수’로 활동하는데요. 저도 ‘감량 기수’가 끝나면 이제 프로 선배들과 동등하게 경쟁해야 합니다. 선배들보다 부족한 기승술을 보완해서 꾸준하게 좋은 성적을 거두는 게 목표입니다.”
- 한국경마 문화에 대해 하고 싶으신 말이 있다면.
“경마공원만 해도 많이 바뀌었습니다. 예전에는 신문 깔고 앉아 있는 아저씨 관람객분들이 많았는데, 이제는 아기들도 와서 저보고 ‘핑크, 핑크’ 그러면서 응원해줘요. (웃음) 한국경마가 사행성 스포츠라는 어두운 면보다, 해외처럼 건전하고 밝은 스포츠로 인정받았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그런 문화를 만들기 위해 기수로 열심히 뛰겠습니다.”
“디스크 질환은 기수의 숙명...그래도 62세까지 달려야죠”
-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올해로 11년차 경마 기수로 뛰고 있는 서울경마공원 소속 33살 김정준 기수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체격은 작지만 운동을 좋아했어요. 아버지 추천으로 경마 기수를 시작했는데, 운이 좋아 지금도 기수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 운이 좋다고 했는데, 경마 기수도 정년이 있나요?
“경마 기수의 정년은 62세인데요. 사실 정년까지 꾸준히 활동하는 기수는 보기 드뭅니다. 40kg대 체중도 유지해야 하고, 나이가 들수록 부상 위험도 높아져서요. 이게 말 위에 가만히 얹혀서 가는 게 아니라 말 위에 거의 서서 허리만 잔뜩 구부리고 달린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러면서 근육을 이용해 방향과 속도를 조절해야죠. 그래서 체력소모도 심하지만, 고질병도 생깁니다. 목과 허리 디스크는 경마 기수의 숙명이죠.”
- 11년차 경마 기수로 개인적인 목표는 뭔가요?
“앞서도 말했지만, 62세 정년까지 기수로 달리는 건 상당히 어려워요. 자기 관리를 해야 하니까요. 그래도 철저한 자기 관리로 오래 달리는 선배들도 있는데요. 제 목표도 정년까지 기수로 활동하는 거예요. 다르게는 조교사나 교관 등으로 활동하면서 기술을 양성해 한국경마 발전에 이바지하고 싶기도 합니다.”
- 최근 한국경마 문화가 달라지고 있다는 평가인데, 체감하시는지?
“실제로 경마장을 찾는 팬분들이나 관람객분들의 에티켓이나 마음가짐이 많이 달라졌어요. 응원도 엄청나게 해주시고요. 솔직히 말하면 제가 경마 기수를 시작한 10여 년 전만 해도, 배팅이 되는 스포츠다보니, 심한 말이나 욕설을 하는 분들도 적지 않았거든요. (웃음) 요즘엔 기수들 이름이나 말 이름을 불러주시면서 응원해주시니, 경기에 많은 힘이 되고 있습니다.”
- 끝으로 한국경마 발전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우선 저희 경마 기수들 많이 응원해주셨으면 좋겠고요. (웃음) 무엇보다도 경마장을 찾는 가족단위 관람객분들이 많으신데, 와서 가벼운 마음으로 즐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또 배팅에 실패한 팬분들 마음도 이해는 하지만, 이제 경마장 문화가 바뀌고 아이들도 많이 찾는 현장이니만큼 심한 말이나 욕설은 삼가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