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한부모 가정은 약 153만 9천여 명(2018년 기준)으로 전체 가구 수의 7.5%를 차지하는 만만치 않은 숫자다. 이 중 77%가 ‘이혼’으로 인한 한부모 가정이다. 아이를 키우는 싱글대디, 싱글맘이 증가하면서 양육비 분쟁도 자연스럽게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의 양육비 미지급 문제 해결 단계는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수준. <뉴스포스트>는 양육비 미지급 문제로 고초를 겪는 한부모 가정에 대한 기획 보도를 준비했다. -편집자주-

지난 18일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방법원 앞에서 양육비해결모임 회원들이 양육비 미지급 문제 해결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사진=이별님 기자)
지난 18일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방법원 앞에서 양육비해결모임 회원들이 양육비 미지급 문제 해결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사진=이별님 기자)

[뉴스포스트=이별님 기자] 이혼 가정에서 홀로 자녀를 양육하는 양육자에게 비양육자가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는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2018년도 기준이지만 여성가족부 통계에 따르면 한부모 가구주 약 2천 명 중 70% 이상은 상대방으로부터 양육비를 단 한 푼도 받지 못했다고 답했다. 양육비 문제가 해결되지 않자 비양심적인 비양육자의 신상을 공개하는 시민단체도 생겨났다. 시민사회계는 더 나아가 양육비 미지급 문제 해결 관련법을 요구한다.

배드 파더스와 배드 페어런츠 등 비양육자의 신상 공개 사이트가 한국 사회에 충격파를 던지면서 정치권은 양육비 미지급 문제에 대해 답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난 5월 20일에는 양육비 이행확보 및 지원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하 ‘개정안’)이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제20대 국회의 마지막을 장식했다. 그런데 양육비 미지급 문제 해결을 하기엔 부족하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개정안은 감치(監置)명령 결정에도 양육비 채무자가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으면 지방경찰청장이 운전면허 정지 처분을 요청할 수 있는 내용이 골자다. 하지만 유치장이나 구치소 등에 며칠 가두는 감치 명령의 경우 형사처벌이 아닌 행정적 제재에 불과하다. 감치는 현행법상 이행 명령 후 6개월이 지나면 무효다. 이마저도 과거 3개월에서 6개월로 늘어난 수준이다.

강민서 양육비해결모임 대표는 지난달 18일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방법원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감치명령이 수배령도 아니기 때문에 경찰이 적극적으로 안 나선다. 이 때문에 6개월만 잘 피해 다니면 된다”며 “6개월이 끝나면 감치 이행 명령 재판부터 다시 소송해야 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운전면허 정지 처분 역시 한계가 있다. 개정안은 과도한 제한을 방치하기 위해 운전면허 정지 처분을 요청을 가사소송법에 따른 감치명령 결정을 받았음에도 양육비 채무를 이행하지 않은 경우로 한정했다. 양육비이행심의위원회 결정 등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하며, 자동차를 생계 목적으로 사용하는 사람은 제외하는 요건도 있다.

해외가 바라보는 양육비 미지급 문제

양육비 미지급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관련법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 이른바 선진국이라고 불리는 국가에서는 어떨까. 전문가들은 한국의 상황보다 낫다고 말한다. 지난해 8월 발표된 학술논문 ‘프랑스민법상 부모의 양육의무 및 그 이행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프랑스는 협의 이혼한 부부 중 하나가 일방적으로 양육비를 지불하지 않으면 과태료가 부과될 수 있다.

프랑스는 부부가 협의 이혼 시 협의서를 변호인들이 서명하고 공증인이 해당 원본을 보관하는 방식을 통해 협의 이혼이 가능한데, 여기엔 양육 관련 등의 내용이 담겨있다. 프랑스 민법은 부모 중 일방이 해당 결정이나 협의서의 이행을 심각하고 지속적으로 방해하는 경우에 대해 가정법원 판사가 무려 한화 약 1,340만 원에 달하는 1만 유로의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도록 한다.

아울러 프랑스의 양육비이행관리원 성격인 Aripa(Agence de recouvrement des impayés de pensions alimentaires)는 양육비가 1개월 이상 연체될 경우 신고를 받고, 최소 1개월에서 최장 24개월간 미지급된 양육비를 비양육자로부터 회수해 양육자에게 준다. 비양육자가 양육비 지급 중단 및 비정기적으로 지급하는 경우 또는 일부만을 지급하는 경우 Aripa가 최소한의 양육비를 대신 지급한다.

아동 인권을 어느 나라보다도 중시하는 미국 역시 양육비 미지급 문제에 대해 한국보다 훨씬 앞섰다. 국회입법조사처에 따르면 미국 역시 한국과 비슷하게 50개 주 전체가 양육비 미지급자의 운전면허를 정지 또는 취소하는 규정을 갖는다. 주마다 다르지만 직업 면허가 대상에 포함되거나 총기 면허와 사업 면허, 여권까지 정지 또는 취소될 수 있다.

처벌도 강력하다. 미국 아이다호주에서는 양육비 지급을 미루는 비양육자에게 징역 최대 14년형에 처한다. 오리건주에서는 비양심적인 미지급 비양육자가 한화 약 1억 5천만 원에 달하는 12만 5천 달러의 처벌을 받는다. 한국에서 양육비 미지급이 형사처벌 대상이 아닌 점과 비교하면 상당히 무거운 형이다.

국가가 양육비 지급 이행에 강력한 권한을 가진 나라도 있다. 2016년 1월 발표된 학술논문 ‘뉴질랜드의 양육비 이행확보제도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뉴질랜드는 법원이 아닌 국세청의 한 조직인 ‘양육비 심사국’이 이행지원 업무를 담당한다. 양육비 심사국의 적극적 관여하에 양육비 지급을 위한 비양육자 지원과 벌금 제도가 마련됐다.

부모는 국세청에 자녀 양육비 산정을 요청한다. 양육비는 비양육자의 월급에서 양육비가 자동 공제되는 점이 눈에 띈다. 국세청의 강제조치는 지방법원의 민사소송 판결과 같은 효력을 지닌다고 인정해주고 있다. 다만 양육비 지급 불이행 시 여권과 운전면허가 취소되는 점은 미국과 비슷하다.

프랑스 양육비이행관리원 Aripa(Agence de recouvrement des impayés de pensions alimentaires) 홈페이지. (사진=https://www.pension-alimentaire.caf.fr/)
프랑스의 양육비이행관리원 성격인 Aripa(Agence de recouvrement des impayés de pensions alimentaires)는 양육비가 1개월 이상 연체될 경우 신고를 받고, 최소 1개월에서 최장 24개월간 미지급된 양육비를 비양육자로부터 회수해 양육자에게 준다. (사진=프랑스 양육비이행관리원 Aripa 홈페이지 캡처)

공은 국회에 던져졌다

양육비 미지급 문제에 대해 강력한 처벌을 가하거나, 국가가 적극적으로 나서 이행 확보 노력을 하는 해외 여러 국가와 비교하면 한국은 갈 길이 멀다. 한국에서도 여성가족부 산하에 양육비이행관리원이 나서 미지급 문제를 돕지만, 부족하다는 지적이 있다. 실제로 <뉴스포스트>와 인터뷰를 진행했던 강민서 양육비해결모임 대표는 ▲ 인력 부족 ▲ 담당자의 잦은 교체  ▲ 늦은 이행관리 진행 등을 문제점으로 꼽기도 했다.

이에 관련 시민단체들은 양육비 미지급에 대한 처벌 강화와 형사처벌 조항 신설 등을 촉구하고 있다. 실제로 양육비해결모임은 지난달 15일부터 양육비 미지급을 아동학대로 처벌해야 한다는 내용의 국회국민동의 청원을 올리기도 했다. 아동복지법에서 금지조항을 담은 17조에 ‘양육비 미지급’이란 글자를 추가해달라는 것이다. 해당 청원은 같은 달 30일까지 446명의 동의를 얻었다. 이달 15일까지 10만 명의 동의를 얻어야 관련 상임위원회에 회부된다.

갈 길이 먼 상황이나 희망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양육비 미지급 문제에 대한 국가 차원의 해결을 바라는 목소리가 커지자 국회에서도 관련 법안이 속속 나오고 있다. 미래통합당 전주혜 의원은 지난달 25일 내년도 시행 예정인 기존의 개정안보다 한층 더 강화된 ‘양육비 이행확보 및 지원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 법률안’을 대표 발의 했다.

전 의원에 따르면 이번 개정안은 정당한 사유 없이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는 양육비 채무자에 대해 ▲ 출국 금지 ▲ 명단 공개 도입 ▲ 양육비 지급 의무 위반 양육비 채무자에 대한 처벌 조항을 담았다. 전 의원은 “양육비 지급은 아동의 생존권과 직결된다는 인식이 우리 사회에 온전히 뿌리 내려야 한다”며 “양육비 미지급에 대한 현실적인 제재를 강화하는 제도적 장치가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한부모 가정의 양육비 미지급 문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진 상황. 해외 일부 국가들의 사례만 봐도 한국이 이 문제를 그동안 얼마나 안일하게 대했는지를 쉽게 엿볼 수 있다.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당장 관련법부터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면서 공은 국회로 넘어갔다. 제21대 국회가 양육비 미지급 문제에 대해 어떤 답을 할지 여론이 관심을 기울여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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