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팽이집 연희’ 거주 청년 지수 씨 인터뷰
“시세 80% 수준이라지만...‘억대’에 달하는 보증금 수준 아쉬워“
“세입자 ‘당연한 권리’ 침해 받는 시대...‘주거 권리’부터 인정해야“

[뉴스포스트=이상진 기자] “처음엔 청년주택 건립에 심하게 반대하셨던 분들도 이제는 저희가 공용 공간 문을 열어놓으면 들어오셔서 구경하세요. 건물이 정말 예쁘다고요.”

지수 씨는 청년을 위한 공공주택에 대한 편견을 버려달라고 주문했다. (사진=뉴스포스트 이상진 기자)
지수 씨는 청년을 위한 공공주택에 대한 편견을 버려달라고 주문했다. (사진=뉴스포스트 이상진 기자)

뉴스포스트가 24일 만난 지수(가명·31) 씨는 “옥탑방에 살거나 민간 임대주택에 사는 청년이라고 하면 아무런 편견이 없다가, 청년을 위한 공공주택에 산다고 하면 색안경을 끼고 보는 게 아쉽다”고 말했다.

이날 뉴스포스트는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소재 ‘달팽이집 연희’에 거주하는 청년 지수 씨를 만났다. 지수 씨는 본지와의 인터뷰를 통해 청년주택을 둘러싼 편견과 청년 주거지원 정책의 개선 방향에 대한 청년의 목소리를 전했다. 

'달팽이집 연희'의 공용 공간에서 인터뷰에 응하는 지수 씨. (사진=뉴스포스트 이상진 기자)
'달팽이집 연희'의 공용 공간에서 인터뷰에 응하는 지수 씨. (사진=뉴스포스트 이상진 기자)

- 현재 거주하는 곳에 대해 설명해주세요.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연희동 소재 토지임대부 사회주택 ‘달팽이집 연희’에 살고 있어요. 2인실과 3인실, 4인실 등 남녀 구분으로 다양한 주거 형태가 있는데요. 저는 건물 3층의 4인실에서 다른 청년 3명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1인당 방이 하나씩 있고요, 거실과 주방을 함께 사용해요. 화장실은 2개가 있습니다.” 

- ‘달팽이집 연희’엔 모두 몇 명이 거주하고 있나요?
“‘달팽이집 연희’에는 26명의 청년이 함께 살고 있는데요. 지금 인터뷰하는 장소는 모두가 함께 사용하는 공용 공간입니다. 카페이자, 주방이자, 서재이자, 영화관이기도 한 공간이죠. (웃음) 오늘 인터뷰 전에 제가 너무 긴장해서 아침에 일찍 일어났어요. 그래서 공용 공간 한쪽에 마련된 세탁실에서 세탁물을 돌리고 커피를 한 찬 내려서 홀짝 거리면서 영화를 보고 있었습니다.”

- 일부 ‘역세권 청년주택’ 등은 청년의 주거 안정을 위한 제도임에도, 보증금과 임대료가 만만치 않다고 알고 있는데요. ‘달팽이집 연희’는 어떤가요?
“제가 살고 있는 4인실 기준으로 보증금은 1400만 원, 월 임대료는 30만 원이에요. 이렇게 1층에 큰 공용 공간이 하나 있고요, 또 층마다 거실과 주방 등 작은 공용 공간도 있어요. 조만간 저희 청년들끼리 옥상을 꾸며서 화초도 키우고 파라솔도 놓고 일광욕도 할 계획입니다. (웃음)
저는 이 정도 보증금과 임대료를 내고 연희동에 살 수 있다는 게 정말 괜찮다고 생각해요. 제가 인터뷰 전에 혹시 연희동에 보증금 1400만 원에 월세 30만 원으로 올 수 있는 다른 집이 있나 봤어요. 그런데 반지하거나, 위반건축물의 옥탑방이거나, 아니면 정말 고시원밖에는 안 나오는 거예요. 주거환경이 다른 거죠.”

지수 씨가 공용 공간에서 커피를 내리고 있다. (사진=뉴스포스트 이상진 기자)
지수 씨가 공용 공간에서 커피를 내리고 있다. (사진=뉴스포스트 이상진 기자)

- ‘달팽이집 연희’가 건립된다고 했을 당시에 주민 반발이 거셌는데요. 청년 주거 정책을 둘러싼 지역 사회의 반응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달팽이집 연희’를 짓는다고 했을 때, 많은 주민이 ‘이 땅이 얼마짜린데, 그 땅을 이런 식으로 쓰냐’고 반대하셨죠. (웃음) 일부는 ‘문제가 많은’ 청년들이 입주한다고 오해하시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건립 전에 반대를 심하게 하셨던 분들도 저희가 공용 공간의 문을 열어놓으면 들어와서 구경하세요. 건물이 너무 예쁘다고요. 막상 생기면 나쁠 게 없는데, 그전에는 오랜 세월 임대주택에 대한 편견이 자리 잡고 있다 보니까 반대를 하신 것 같습니다.”

- ‘달팽이집 연희’에 거주하는 청년들은 대부분 학생인가요?
“이 건물에 26명의 청년이 살고 있는데요. 저희가 한 달에 한 번씩 모여서 건물 운영방침 등에 대해 논의하기는 하는데, 사적인 대화는 안 해요. 그래서 같이 거주하는 분들이 학생인지, 직장인인지는 서로 잘 모릅니다.
누가 ‘몇 살이세요?’ 그러면 옆에서 ‘아 요새 누가 그런 거 물어봐요’ 그러죠. 대화 중에 우연히 정체가 드러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자기 혼자 갑자기 이문세 콘서트 간다거나 하면 최소 80인 거죠. (웃음) 몇몇 친한 분들만 아는데요. 근처 연세대나 서강대 학생이나 대학원에 재학 중인 청년들이 있고요. 직장인들도 있습니다.”

- 거주 가능한 기간이 10년으로 제한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이에 대한 불만은 없을지요? 
“불만이 좀 있어요. 지금 여기 사는 청년들은 그런 얘기를 해요. 실버달팽이집을 만들어야 한다고요. (웃음) ‘함께주택협동조합’이 만든 ‘함께주택’을 예시로 들고 싶어요. 조합이 땅을 사서 건물을 짓는 형태인데요. 보통은 아파트를 사서 나갈 때 시세차익을 보고 나가잖아요? 그런데 ‘함께주택’은 정상적인 물가상승률 정도만 받고 나갑니다. 이걸 공공에서 시행하면 환매조건부로 공급하는 형태가 되겠죠.” 

- 주거 안정을 위해 집을 살 계획은 없는 건지?
”여기 사는 10년 동안 열심히 돈 모아서 10년 후에 엄청난 로또 분양을 받아야지, 이런 생각을 하면서 기다리고 싶지는 않아요. 사실 로또 분양이라고 말하는 게, 다들 아는 거잖아요? 지금 저 가격 주고 산다는 게 말이 안 된다는 거. 집을 사야 주거가 안정된다고 하는 건 우리 사회가 만든 편견이라고 생각해요. 세입자로 살다 보면 별일을 다 겪잖아요? 보증금을 안 준다든가, 관리비를 마음대로 올리다든가, 임대인이 마음대로 집 문을 열쇠로 열고 들어온다든가.
그런데 당연한 권리를 침해받는 세입자에게 ‘억울하면 집 사라’고 하죠. 집을 살 수도 있고, 사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에 앞서 ‘주거에 대한 권리’가 있다고 인정하는 사회 분위기가 형성돼야 한다고 봅니다. 내가 차별받기 싫어서 차별하는 집단에 들어가고 싶지는 않아요.”

지수 씨는 청년을 포함한 모든 사회 구성원의 주거 안정을 위해 공공에서 시행하는 환매조건부 주택을 제언했다.  
지수 씨는 청년을 포함한 모든 사회 구성원의 주거 안정을 위해 공공에서 시행하는 환매조건부 주택을 제언했다.  

- 끝으로 청년 주거 안정을 위한 지원 정책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청년주택이나 행복주택 등의 보증금이 너무 높다는 걸 말하고 싶어요. 청년들에게 주거비 부담을 줄이고 좀 더 안정적이고 쾌적한 주거환경을 마련해주겠다는 취지로 청년주택이나 행복주택, 사회주택을 공급하는 건데요. 그런데 이게 시세 기준으로 하다 보니까 너무 비싸요. 위치에 따라선 ‘억대 행복주택’도 많고요. 주변 시세보다 20% 저렴하니까 저렴한 수준이라고는 하지만요. LH나 SH도 사업성 따져 가면서 시세 기준으로 하죠.
그런데 사실 시세도 서로 만져가면서 다 올려놓은 거잖아요? 그걸 기준으로 삼으면서 그 책임을 청년들에게 전가하는 겁니다. 세제 개편 등을 통해 주거 약자를 위한 현실적인 정책이 정착돼야 하는데요. 이를 위해 사회적 논의의 장을 마련해야 한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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