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진, 경영전략실 개편 후 회의서 "변화와 혁신" 주문
경영전략실 첫 실장에 임영록 신세계프라퍼티 대표 선임
백화점·할인점 동반 부진에 '신상필벌' 원칙 적용 인사
'정용진의 남자' 강희석·'정유경 측근' 손영식 동시 퇴임
[뉴스포스트=홍여정 기자] 전통의 유통 강자 신세계그룹에 위기감이 팽배하다. 유통 사업 양대 축인 백화점과 할인점이 오프라인 시장 침체에 부진했고, 대규모 자금을 투자하며 몸집을 키운 이커머스 사업은 쿠팡이라는 벽에 막힌 상황이다. 설상가상으로 이마트는 쿠팡에 매출 1위 자리를 내주기까지 했다.
이에 신세계그룹은 지난 9월 이마트와 신세계백화점 대표를 동시에 교체하는 등 대대적인 정기 인사를 단행하며 강도 높은 쇄신의 신호탄을 쐈다. 지난달에는 그룹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는 전략실도 재정비하며 성과중심 체제 강화에 나섰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은 과거를 질책하며 변화와 혁신을 강조했다. 내년도 성과에 대한 신세계그룹의 의지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정 부회장 “과거 반성하고 쇄신해야”
1일 신세계그룹에 따르면 정용진 부회장은 최근 개편한 경영전략실의 첫 번째 전략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기존 전략실이 과거 일해 온 방식을 질책하며, 지금과는 다른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변화하고 혁신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정 부회장은 “그동안의 역할과 성과에 대해 무겁게 뒤돌아봐야 할 시기”라며 “새로운 경영전략실은 각 계열사들을 통제하고 관리하는 군림하는 조직이 아니라 그룹 내에서 ‘가장 많이 연구하고 가장 많이 일하는 조직’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달 28일 회의에서도 정 부회장은 신중하고 정확한 인사 시스템이 구축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그룹 전체의 현행 인사 제도를 전반적으로 재점검 하고 개선해야 한다'며 "모든 인사와 보사은 철저하게 성과에 기반해야 하고, 성과에 대한 평가 지표도 구성원 모두가 수긍하고 또 예측가능할 수 있도록 객관적으로 명확한 KPI(핵심평가지표)를 수립해달라"고 당부했다.
이어 "계열사별, 각 업무별 정밀한 KPI를 수립해 성과를 낸 조직과 임직원에게는 확실한 보상을 뒷받침해주고 그렇지 못한 조직에는 반드시 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그래야 장기적으로 우수 인재를 육성하거나 영입할 수 있다. 이는 그룹의 미래를 좌우할 정도의 중요한 문제"라고 강조했다.
정 부회장이 연이은 회의 주재에서 강한 질책과 당부의 메세지를 보내는 것은 그룹 전반에 드리운 위기감 때문으로 분석된다. 국내 유통 매출 1위 자리를 지키던 이마트는 올해들어 쿠팡에 밀려 2위로 밀려났고, 영업익도 쪼그라들었다. 3분기 연결 기준 영업이익은 작년 동기 대비 22.6% 감소했고, 3분기 누적 영업이익은 68.6% 감소했다. 별도 기준 이마트 영업이익(1102억원)이 5% 증가하며 본업은 선방했다는 자체 평가를 내렸지만 경쟁사인 쿠팡의 영업익(1146억원)에 미치진 못했다.
쿠팡은 올 3분기 처음으로 분기 매출 8조원을 넘어섰고, 지난해 4분기부터 5분기 연속 흑자를 기록하며 사상 첫 연간 흑자달성을 앞두고 있다. 반면 신세계그룹의 온라인 사업을 담당하는 SSG닷컴과 G마켓은 올해도 적자가 지속되고 있다.
신세계도 고물가로 인한 소비침체 및 엔데믹 역기저 효과에 3분기 연결기준 매출과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각각 23.4%, 13.9% 감소했다. 백화점 사업부만 살펴보면 매출액과 영업익은 전년 동기 대비 각각 0.9%, 15.1% 줄었다.
‘신상필벌’ 파격 인사
이에 신세계그룹은 칼을 빼들었다. 이마트·신세계백화점을 포함한 계열사 대표이사의 40%를 물갈이하는 역대급 인사를 단행한 것. 이번 인사는 지난해보다 한 달가량 앞당겨 9월에 진행된 만큼 빠른 인적 쇄신이 필요하다는 오너의 판단이 있었던 것으로 풀이됐다.
이마트에서는 ‘정용진의 남자’로 불렸던 강희석 대표가 물러나고 한채양 조선호텔리조트 대표가 새 수장으로 선임됐다. 백화점에서는 정유경 총괄사장이 복귀시켰던 손영식 대표가 해임되고 박주형 신세계센트럴시티 대표가 새로 낙점됐다.
아울러 조직개편도 단행했다. 기존 그룹 전략실을 그룹 최고 경영진을 보좌하는 기능 중심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강화한 ‘경영전략실’로 재편했다. 이명희 신세계그룹 회장 직속으로 운영되는 경영전략실은 정용진 부회장이 이끄는 이마트 부문과 정유경 신세계 총괄사장이 이끄는 신세계 부문을 아우르는 헤드쿼터 조직이다.
이번 개편으로 경영전략실 내 지원본부와 재무본부 2체제는 경영총괄, 경영지원총괄 2총괄 체제로 격상됐다. 경영총괄은 재무, 관리, 경영 진단 등의 업무를, 경영지원총괄은 인사와 감사, 진단, 홍보 등 업무를 각각 총괄한다.
추가 인사도 이어졌다. 개편된 경영전략실의 첫 실장은 임영록 신세계프라퍼티 대표가 겸직한다. 2015년부터 그룹 전략실을 이끈 권혁구 사장은 임기 2년 반을 남기고 물러났다. 경영총괄 부사장에는 허병훈 신세계인터내셔날 지원본부장, 경영지원총괄 부사장엔 김민규 신세계그룹 커뮤니케이션 본부장(전무)이 각각 승진 임명됐다.
신세계 관계자는 “이번 경영전략실 개편을 통해 각 사별 사업을 조정하고 통합하는 그룹의 컨트롤타워 기능을 강화해 그룹의 미래 지속 성장을 이끄는 조직으로 만들어 나갈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외형 확장 승부수 통할까?
앞서 정 부회장은 오프라인 역량을 하나의 축으로 삼고 또 다른 축인 디지털 기반의 미래사업을 준비하고 만들어가겠다는 ‘디지털 피보팅’을 천명한 바 있다. 온라인 시장 선점을 위해 옥션·G마켓을 보유한 이베이코리아를 인수했지만 적자가 이어지고 있고, 올해 온·오프라인 통합 전략의 집약체인 신세계 유니버스 클럽을 선보였지만 아직 눈에 띄는 성과는 없다.
신세계는 우선 실적 개선을 위해 집중한다. 키워드는 ‘본업’이다. 그동안 점포 매각 등으로 온라인 사업 투자에 집중했다면 향후 신규 점포를 출점해 외형 성장에 주력한다. 진행 중인 점포 리뉴얼도 속도를 낸다. 계열사 간 시너지를 높여 수익성 강화에도 나선다.
한채양 대표는 최근 이마트 창립 30주년 기념사에서 “회사의 모든 물적, 인적 자원을 이마트 본업 경쟁력을 키우는 데 쓸 것”이라며 “그간 이마트가 수익성이 악화한다는 이유로 출점을 중단하고 일부 점포를 폐점했지만, 내년부터는 영업 기반인 점포의 성장을 도모하겠다”고 말했다. 이마트는 향후 5개 이상 점포 부지를 확보할 계획이다.
또한 리뉴얼을 통해 노후 점포를 체류형 매장으로 바꿀 계획이다. 올해 선보인 더타운몰 연수점이나 킨텍스점처럼 변화하는 라이프스타일에 맞춰 고객이 더 머무를 수 있는 공간으로 바꾸겠다는 복안이다.
이는 신임 경영전략실장인 임영록 신세계프라퍼티 대표의 역할이 클 것으로 전망된다. 임 대표는 복합쇼핑몰 ‘스타필드’를 국내에 안착시키며 기존 오프라인 유통 패러다임을 바꿨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단순히 쇼핑만이 아닌 체험을 강조한 즐길거리를 더해 고객의 체류시간을 늘려 오프라인 경쟁력을 강화했다는 것이 핵심이다.
아울러 할인점, 슈퍼, 편의점 계열사 시너지 강화에도 나선다. 이마트, 이마트에브리데이, 이마트24 등 3사 통합 운영을 통해 수익성을 끌어올린다. 이를 위해 한 대표는 지난 인사에서 3사 오프라인 통합 대표로 낙점됐다. 이 외에도 이마트, 이마트에브리데이, 이마트24, 신세계프라퍼티, SSG닷컴, 지마켓 등 6개 온·오프라인 계열사 시너지 창출을 위해 ‘리테일 통합 클러스터’를 출범시켰다.
신세계백화점은 지난 3분기 리뉴얼 오픈한 강남점 영패션전문관 ‘뉴스트리트’와 경기점 등에 기대를 걸고 있다. 현재 진행 중인 강남점 식품관 확장 리뉴얼 공사는 내년 상반기 마무리하고 약 6000평 규모로 탈바꿈한다. 경기점은 남성관을 새롭게 단장한다. 온·오프라인 시너지 창출에도 역량을 집중해 온라인 선물하기 서비스인 ‘신백선물관’을 지속적으로 강화하고, 백화점 모바일 앱도 리뉴얼할 계획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