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로지 한길, 남성슈트로 기네스북에 오르다

은희주옴므의 대표, 은희주(사진=신현지 기자)

[뉴스포스트=신현지 기자] 잘 차려입은 남자를 보는 건 여자에게도 즐거움이다. 특히 슈트가 잘 어울리는 남자는 품격이 느껴져 좋다. 그렇다고 남자의 품격을 완성하는 것이 슈트라고 말하는 건 아니다. 다만 첫눈에 멋진 이미지를 전달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사실이라는 걸 말하고 싶은 것이다. 뭇 남성들에게 멋진 이미지를 선사하는 남자. 또 그것으로 기네스북에 이름을 올린 남자. ‘은희주옴므’의 대표를 만나보기로 했다.

봄빛이 완연했다. 역삼로의 큰길을 벗어나 인적이 드문 골목에도 봄빛이었다. 남성맞춤정장의 은희주옴므는 그렇게 봄빛 속에 있었다. 결코 화려하지도, 초라하지도 않은 꼭 봄빛만큼의 소박한 모습으로.

하지만 매장 안에 들어서자 그 소박함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압도당하는 느낌이었다. 넓고 깔끔한 실내에 디스플레인 된 슈트들이 마치 잘 발달 된 남성의 근육질처럼 단박에 내 눈을 사로잡았다. 기네스북에 오른 장인의 솜씨라는 것이 감각 없는 내게도 느껴졌다. 레드와 블랙의 안경테로 연출한 은희주(57) 대표 역시 그 나이로는 보이지 않게 모던했다. 패션을 선도하는 그의 뒤로는 10년 넘게 ‘은희주옴므’를 찾는 단골들의 사인이 벽을 장식하고 있었고. 전 이수성 국무총리를 비롯한 가수 배기성, 야구선수 양준혁, 농구선수 우지원 등등.

'은희주옴므'의 은 대표가 봉제와 인연을 맺은 건 그의 나이 23세, 친구에게 의해서였다.

“23살 때 일을 처음 시작했어요. 친구가 동대문 봉제공장에서 일을 했는데 그 친구 따라 약 10년 동안 봉제 일을 했어요. 손바느질을 10년 넘게 해야만 양복을 만들 수 있던 시절이었는데 일감이 밀린 날은 아침 식전부터 밤 12시까지 일을 했어요. 그런데도 정작 손에 쥐는 돈은 얼마 되지 않았어요. 기술을 배운다는 것에 만족을 해야 했어요. 그러니 끝까지 버티면서 오래 일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어요. 여러 가지 일을 한꺼번에 하는 사람도 드물었고요. 재단, 바지 만들기, 손바느질, 다림질 등 각자 맡은 분야만 일을 했어요. 그런데 저는 그런 일을 한꺼번에 배웠어요. 패턴을 배우면서 제조 과정을 모두 익혀나갔지요. 그러고 보면 저는 다른 사람보다 일을 빨리 배우는 편이었던 것 같아요. 제가 손재주가 좀 있는 편이거든요. 뭐를 하던 죽기 살기로 덤벼드는 성격이라서 그런 것 같아요. 요즘 젊은 사람들은 그 시절의 제 이야기를 하면 이해를 못 해요.”

지그시 감은 눈으로 지나온 시절을 회상하는 은 대표의 얼굴 위로 얼핏 수심이 내려앉았다. “이일을 누군가에게 전수하려 해도 사람이 없어요. 이 일은 우리가 마지막인 것 같아요. 요즘 젊은 사람들 아예 배우려 하지 않아요.”

자신의 이름을 브랜드로 2006년 ‘은희주옴므’ 열다

자신의 기술전수가 못내 아쉽다는 은희주 대표가 맞춤정장을 시작한 건 올해로 30년째. 자신의 이름을 브랜드로 내 놓은 건 2006년부터다. 노라노 패션학원의 이주삼 원장님에게 사사를 받고난 후였다.

“큰길도 아니고 골목의 4층에 매장을 냈어요. 그러니 사람들이 미쳤다고 그러더라고요. 누가 4층까지 올라가 옷을 맞추느냐고요. 그래도 전 자신이 있었어요. 입소문만 나면 되잖아요. 그러니 옷은 확실하게 만들어야죠. 진짜 제 이름을 걸고 하는 만큼 열심히 했어요. 물론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그 당시 인터넷에 광고를 올렸어요. 반응이 좋더라고요. 지방에서도 우리 매장을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았으니까요. 또 지방에서 옷을 만들어달라고 체촌을 재서 보내오기도 했어요. 그런데 그건 꼭 뒤탈이 있더라고요. 왜냐면 체격조건이 같아도 사람들은 다 다르니까요. 전 그것을 알아요. 이 일을 해오다 보니 척 보기만 해도 사람의 특징적인 신체사이즈가 손에 들어오는데 그것이 프로가 아니고서는 쉽지가 않아요. 그래서 저는 다른 사람이 체촌을 해오면 절대 옷을 만들지 않아요. 제가 직접 체촌을 하고 또 상담을 해야만 옷을 만들어요.”

은희주 대표, 직접 체촌과 상담, 체인점은 NO....정치계, 연예계, 운동계 단골 늘어

시종일관 무표정으로 담담하게 말을 하는 은 대표의 표정에서 절대 가볍지 않은 진중함이 느껴졌다. 그런 그에게 은희주옴므 만의 노하우를 묻는 건 좀 조심스러웠다.

“노하우요? 글쎄요. 앞서도 얘기했지만 체격조건이 같아도 사람마다 특징이 다르다고 했잖아요. 또 그 사람의 성향과 피부색에 따라 소화하는 색도 다르고요. 예를 들어 뚱뚱한 사람은 이렇고 마른 사람은 저렇고, 그런데 제 생각은 그것이 아니라는 것이죠. 선입견을 버려야 해요. 저는 고객과 상담을 해보면 루즈하게 입는지 타이트하게 입는지 무슨 색이 잘 어울리는지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금방 감이 와요. 그래서 제가 직접 상담과 체촌을 하면 뒤탈이 없어요. 그러니 당연히 전 체인점을 내지 않는다는 주관이 서는 것이고요. 이런 제 노하우에 한 번 찾아오시는 분은 10년의 단골이 되시더라고요. 또 그런 입소문에 정치계는 물론 연예계, 운동계 등 많은 유명인이 찾아오시고요. 전 고객의 패턴을 5년간은 보관해요.”

유명세에 따른 부작용도 만만치 않아

은 대표가 이렇게 일요일도 없이 직접 고객들을 상담하다 보니 그만큼의 대가도 따랐다. 미처 건강을 돌아볼 틈이 없어 심장판막증으로 한동안은 병원 신세를 져야만 했었다고. 그래도 정치계를 비롯해 유명 연예인들과 운동선수들이 그의 매장을 찾아주니 감사할 따름이다. 그런데 유명인들이 단골이 되다보니 그 유명세(?)도 만만치 않았다고. “우리 매장이 유명인으로 알려지니 별 사람이 많아요. 옷을 맞추어놓고 안 찾아가시는 분들이 있는가 하면 손님인 척 가장해서 저의 사업 마인드를 훔쳐가는 사람들도 있어요. 그러니까 언젠가 남녀 두 사람이 와서는 옷을 맞추겠다고 …제가 남자를 체촌을 하는 장면을 여자가 세밀하게 찍어요. 또 매장의 진열장 옷들도 이리저리 들추면서 사진에 담고요. 그것이 아무래도 이상해서 제가 정색을 했더니 그 둘이 정신없이 도망쳐버리더라고요. 어디 그뿐인가요. 제 디자인을 훔치는 경우도 왕왕 있어요. 그것도 손님이 들어와서 말을 해주었는데. 그분이 모 매장에 가서 좀 특이한 디자인을 주문했더니 은희주옴므 홈페이지를 보여주며 고르라고 하더래요. 그분의 말 이후로 홈페이지에 제 디자인은 올리지 않아요.”

(사진=신현지 기자)

은희주옴므, ‘2016 대한민국 최고 국민대상’ 거머쥐다

은 대표의 솜씨는 업계에도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그는 2008년 인천공항철도 남성복 유니폼, 2009년 이스타항공 남성복 유니폼, 2010년 효성중공업 신입사원 단체복, 2013년 SBS ESPN 골프채널 아나운서 정장 등을 제작했다. 이어 평화의 상과 ‘2016 대한민국 최고 국민대상 시상식’에서 패션 맞춤정장의 장인으로 주목받았다.

사회초년생...네이비와 차콜그레이 슈트가 무난

대한민국 남성정장의 트렌드를 주도하는 그에게 사회초년생들을 위한 슈트 선택의 조언을 구했다.

“사회 첫발을 내딛는 젊은 친구들에게 슈트는 중요하지요. 먼저 요즘 슈트는 슬림하다는 것에 주의해야 해요. 그리고 색상은 네이비와 차콜그레이로 준비하라고 하고 싶고요. 특히 네이비 색상은 면접에 차분하고 명석한 이미지를 주기 때문에 적극 권장하고 싶어요. 그리고 너무 비싸지 않은 거로 하세요. 보통 ‘울 100%’가 좋다면서 권하는 곳들이 있는데. 울은 멋있기는 하지만 입다 보면 금방 찢어질 수도 있어요. 차라리 젊은 사람들에게는 순모와 폴리에스테르 소재가 섞인 혼방이 실용적이에요”

후진국에 기술전수로 자립에 보탬이 되고 싶다

약속된 시간을 마무리하며 앞으로 그의 계획을 묻자 그는 자신이 가진 맞춤정장의 기술을 국가를 떠나서 누구에게든 전수해주고 싶다고 했다. “이왕이면 후진국에 전수하고 싶어요. 돈을 기부하는 것도 좋지만 전 그것보다 기술을 전수해서 그들의 자립을 도와주는 게 중요하다고 봐요. 그러니 현지에다 공장을 차리고 싶다는 생각도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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