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포스트=이상진 기자] 2019년 기해년(己亥年)도 여느 때와 다르지 않았다. 1997년 이후로 이어진 보통의 나날이었다. 산업은 어려웠고, 기업은 살고자 했다. 다만 올해 산업결산에서 특기할 점은 기업의 생존 전략이 점차 정당 정치의 모습을 닮아간다는 것이다.

흩어지면 죽는다는 정치의 날선 불문율이 산업에선 뭉치면 산다는 명제로 바뀌었다. 아시아나항공 매각에서 촉발된 항공업 재편은 오는 2020년 저비용항공사 인수합병전의 서막을 열었다.

유료방송 인수합병 시장도 뜨겁다. 불과 3년 전인 2016년 방송·통신 시장의 독과점을 이유로 SK텔레콤의 CJ헬로 인수를 반대하던 LG유플러스가 2019년 12월 13일 정작 본인이 CJ헬로의 인수를 마무리했다. 업계에선 향후 SK텔레콤이 현대HCN을 인수할 것이라고 전망했고, KT도 딜라이브 인수에 다시 한 번 몸이 달았다.

그런가하면 대한민국 근현대사에 족적을 남긴 상남(上南) 구자경과 주산(宙山) 김우중이 올해 숙환으로 별세했다. 큰 별들이 삶을 마치고 역사 속으로 스러졌다.

<뉴스포스트>가 일곱 가지 이슈를 통해 2019년 한 해를 되짚어봤다.
 

④ 유료방송 고(高)·고(叩)·고(苦)...‘LG유플러스는 뛰고, SK텔레콤은 걷고, KT는 눕고’

하현회 LG유플러스 부회장. (사진=LG유플러스 제공)
하현회 LG유플러스 부회장. (사진=LG유플러스 제공)

포문은 LG유플러스가 먼저 열었다. LG유플러스는 2019년 2월 14일 케이블TV 업체 CJ헬로 지분의 50%에 1주를 더 인수해 경영권을 확보한다고 천명했다. 인수금액은 8,000억 원이었다. 이날 LG유플러스는 CJ헬로를 보유한 CJ ENM과 주식매매계약까지 체결했다고 밝혔다.

불과 3년 전인 2016년 7월 18일 공정거래위원회가 SK텔레콤의 CJ헬로 인수를 금지한다고 결정한 것에 대해 “공정위의 결정을 존중한다”며 “공정위의 결정은 SK텔레콤의 CJ헬로비전(현 CJ헬로) 인수합병이 가져올 방송·통신 시장의 독과점 심화, 소비자 후생저해 등을 크게 우려한 것”이라고 말한 바 있는 LG유플러스 본인이 정작 CJ헬로를 인수했으니, 아이러니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여하튼 이에 맞서 SK텔레콤도 LG유플러스가 CJ헬로를 인수하겠다고 밝힌 지 일주인 뒤인 2019년 2월 21일 “최근 급변하는 유료방송 시장에 대응하고 미디어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태광산업과 손잡았다”고 맞섰다. 태광산업의 티브로드를 SK브로드밴드가 인수한다는 계획이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2019년 12월 13일 LG유플러스의 CJ헬로 인수를 승인했다. SK텔레콤의 티브로드 인수에 대한 과기부 심사는 오는 2020년 마감될 예정이다. 2019년 12월 10일에는 SK텔레콤이 현대HCN을 추가로 인수한다는 이야기가 업계에 나돌았으나, SK텔레콤은 전혀 사실무근이라고 말하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 와중에 딜라이브 인수를 저울질하는 KT만 유료방송 시장 개편에 참여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특정 유료방송 사업자(SO, 위성방송, IPTV)는 특수관계자인 타 유료방송사업자를 합해 전체 유료방송 가입자 수의 3분의 1(33.33%)을 초과해 서비스를 제공할 수 없다고 규정한 ‘유료방송 시장점유율 합산규제’ 때문. 현재 KT는 시장점유율이 31.07%(KT+KT스카이라이프)에 달한다. KT가 딜라이브를 인수할 경우 시장점유율이 37.36%가 돼 합산규제를 어기게 된다.

하지만 정작 합산규제는 2018년 6월 27일 일몰됐다. 문제는 국회 파행 등으로 합산규제 일몰 뒤 사후규제안 도입에 대해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에서 제대로 된 심사조차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과방위 소속 김성태 자유한국당 의원은 지난 4월 16일 과기부가 제출한 사후규제안에 대해 “부처의 재량적 규제권한을 확대하겠다는 안을 들고 왔다”고 비판했다.

당시 과기부 관계자는 <뉴스포스트>에 “부처 이기주의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정치적인 공세라고 생각하는데 일일이 대응할 필요가 없는 것 같고, 사후규제안에 대해서는 국회에서 요구한 바대로 충실히 작성했다”고 반박했다.

같은 날 KT 관계자도 “국회 파행으로 유료방송 합산규제안이나 사후규제안을 논의하는 법안소위가 열리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SK브로드밴드는 티브로드, LG유플러스는 CJ헬로를 M&A를 한다고 하는데 KT만 목표로 한 법안에 발이 묶여 속이 타 답답하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⑤ 서울시 GBC 승인...‘현대자동차 대한민국 최고층 랜드마크 세운다’

현대차 GBC 조감도. (사진=서울시 제공)
현대차 GBC 조감도. (자료=서울시 제공)

2019년 11월 26일 대한민국 최고층 빌딩이자 서울시의 새로운 랜드마크가 될 타워동에 대한 건축허가가 떨어졌다. 현대자동차그룹의 숙원인 현대차 그룹의 신사옥 GBC(현대자동차부지 특별계획구역 복합시설)에 대한 건축허가서가 교부된 것.

이날 서울시는 서울시 강남구 영동대로 소재 옛 한전 부지에 들어설 GBC 신축사업의 마지막 쟁점이었던 국방부(공군) 협의가 단계적인 작전제한사항 해소로 합의됨에 따라 건축허가서를 교부했다고 밝혔다. 지난 2019년 2월 13일 건축허가 접수 이후 9개월 만이다.

지하7층~지상105층 규모로 들어설 GBC는 제2롯데월드(지하6층~지상123층)보다 층수는 적지만, 높이는 더 높다. GBC는 569m, 제2롯데월드는 555m다. 서울시는 GBC의 초고층 타워동이 서울의 활력을 더하는 랜드마크로 서울의 위상을 높일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특히 GBC의 104층과 105층에는 일반시민에 개방하는 전망대가 설치돼 문화공간이 조성된다.

GBC에는 업무시설은 물론이고 숙박시설과 문화시설, 공연장, 집회장, 전시장, 관광휴게시설, 판매시설 등이 들어선다. 착공예정일은 2020년 상반기이고 준공예정일은 2026년 하반기다. 현대차는 12월 13일엔 서울시와 1조 7,491억 원 규모의 ‘GBC 신축에 따른 공공기여 이행 협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서울시는 GBC 건설과 운영에 따른 생산유발 효과가 오는 27년 동안 264조 원에 이르고, 121만 개의 직·간접 일자리 창출 효과가 있을 것으로 분석했다.
 

⑥ 구글 양자컴퓨터, 양자 우위 달성...‘국내 양자정보통신 분야 꿈틀’

순다르 피차이 구글 CEO와 양자컴퓨터. (사진=구글 공식블로그)
순다르 피차이 구글 CEO와 양자컴퓨터. (사진=구글 공식블로그)

“이번 연구결과는 라이트 형제가 최초로 비행기를 띄운 순간에 비견할 만하다”

카이스트 인공지능양자컴퓨팅 ITRC 센터장(2019.11.01. <뉴스포스트> 인터뷰 내용 中)

10월 23일 국제 학술지에 발표된 한 편의 연구결과에 전 세계 과학기술계가 들썩였다. 구글이 해당 논문을 통해 양자컴퓨터가 고전 컴퓨터를 뛰어넘는 양자 우위(Quantum supremacy)에 도달했다고 밝힌 까닭이다.

양자 우위는 양자컴퓨터가 기존 슈퍼컴퓨터보다 더 큰 계산 용량을 보이는 연구성과를 거둔 것을 말한다. 이것을 구글이 달성했다고 발표한 것이다. 구글에 따르면 구글의 양자컴퓨터 칩 시커모어(Sycamore)는 양자컴퓨터로는 쉬운 문제이지만, 이것에 대응하는 고전 컴퓨터의 해법은 복잡한 경우를 들어 양자 우위를 보였다.

문제는 구글 같은 글로벌 기업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이 양자컴퓨터 등 양자정보통신 기술 발전에 천문학적인 예산을 투입하는 데 비해 우리나라는 턱없이 부족한 관심을 쏟고 있다는 것. 양자정보통신 분야에 미국은 1조 3,500억 원, 중국은 1조 2,600억 원, 유럽은 1조 2,800억 원, 일본도 2,400억 원을 투자하고 있다. 반면 대한민국은 445억 원을 투자하는 수준이다.

이에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김성태 자유한국당 의원은 8월 5일 <뉴스포스트>와의 인터뷰를 통해 “양자컴퓨터 등 양자정보통신 분야는 글로벌 수준의 연구를 할 수 있는 규제 샌드박스의 적용과 규제 프리존 조성 등이 필요하다고 본다”며 “결국 기업들은 기술을 상용화해서 이윤을 추구할 수 있어야 투자하기 때문에 이런 내용의 개정안을 발의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후 10월 16일 김성태 의원은 해당 내용을 포함한 ‘정보통신 진흥 및 융합활성화 등에 관한 특별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해당 개정안에 대해 한상욱 KIST 양자정보연구단 단장은 11월 7일 <뉴스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간단하게 말하면 굉장히 좋은 법안”이라며 “해당 법안은 단순히 기술 개발뿐만 아니라 양자정보통신 산업 생태계를 조성하는 많은 것을 다루고 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⑦ 최태원의 신약 개발 뚝심...‘SK바이오팜 뇌전증 치료제 美FDA 승인’

SK 최태원 회장. (사진=SK그룹 제공)
SK 최태원 회장. (사진=SK그룹 제공)

2019년 11월 22일 새벽. 이날 대한민국 제약사가 새로 쓰였다. SK바이오팜의 뇌전증 치료제 엑스코프리(세노바메이트정)가 美FDA로부터 신약 승인을 받은 것이다. 이로써 SK바이오팜은 후보 물질 발굴부터, 임상개발, 신약 허가 등 전 과정을 거쳐 FDA의 신약 승인을 받은 국내 최초의 제약사가 됐다.

신약 승인 나흘 뒤 SK바이오팜은 서울 종로 SK서린빌딩에서 엑스코프리의 미국 시판 허가를 기념하는 기자간담회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연사로 나선 조정우 SK바이오팜 사장은 “신약 개발은 적게는 10년에서 최대 15년이 소요되고 비용도 조 단위가 투입되는 큰 도전”이라면서 “용비어천가를 부르자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최태원 SK그룹 회장님의 지원이 커 감사하다”고 엑스코프리의 개발 배경을 설명했다.

SK바이오팜이 뇌전증 신약 엑스코프리를 개발하는데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뚝심 지원이 있었다는 말이다. SK바이오팜 관계자는 <뉴스포스트>에 최태원 회장의 신약 사랑이 각별하다고 전하기도 했다.

실제 공식적인 행보로 나타난 최태원 회장의 신약 개발에 대한 열정은 집요했다. 최 회장이 지난 2016년 3월 경기도 판교에 소재한 SK바이오팜 생명과학연구원을 찾아 직원들을 향해 내뱉은 일성은 그의 신약 뚝심을 잘 보여준다.

최태원 회장은 당시 “1993년 신약개발에 도전한 이후 실패를 경험하기도 했지만 20년 넘도록 혁신과 패기, 열정으로 지금까지 성장해 왔다”며 “글로벌 신약 개발 사업은 시작할 때부터 여러 난관을 예상했기 때문에 장기적인 안목에서 꾸준히 투자해왔으니, 이제 혁신적인 신약 개발의 꿈을 이루자”고 직원들을 격려했다.

현재 SK바이오팜은 미국 뉴저지 소재 현지 법인 SK라이프사이언스가 엑스코프리의 상업화를 추진하고 있다. SK바이오팜은 SK라이프사이언스를 통해 엑스코프리의 개발부터 마케팅, 판매까지 모든 단계를 직접 도맡아 진행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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