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우연 한국파독연합회 회장 “철근이 어깨 관통하기도...휴가엔 사과밭 알바”
- 이홍규 홍보이사 “파독 광부 봉급, 5급 공무원의 50배...봉급 70% 고국 송금”
- 복창수 이사 “파독 광부 지원 법률안 지난 5월 통과됐지만, 갈 길 멀다”
- 김경환 사무국장 “어른으로서 모범 되지 못하는 현실 부끄럽지만, 기회 잡길”

우리나라는 지난 2017년 전체 인구의 14%가 65세 이상 노인에 해당하는 ‘고령사회’에 진입했다. 통계청은 우리나라가 오는 2025년이면 전체 인구의 20%가 노인에 해당하는 ‘초고령사회’가 될 것이라 분석했다. 문제는 사회가 고령화됨에 따라 청년 세대와 노년 세대 사이의 갈등이 심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청년 세대는 ‘틀딱충’, ‘할매미’, ‘연금충’ 등 원색적인 노인혐오 표현을 일삼고 있다. 일부 노인들의 잘못된 행태를 전체 노인으로 확대하는 노인혐오 문제는 이제 우리 사회의 고질병이 됐다.

<뉴스포스트>는 일방적으로 비난받는 노인의 젊은 날을 조명한다. 우리 금수강산에 뿌리 뻗고 자신의 삶을 당당히 살아낸 노년 세대를 만나 한때 청년이었던 이들의 삶을 소개한다. 젊어 봤던 노년 세대의 청년 시절을 소개함으로써, 세대 간 간극을 좁히고 서로를 이해하는 장을 마련한다. - 편집자주

[뉴스포스트=이상진 기자] “철로 수리 작업 중에 오른쪽 어깨 바로 밑을 철근이 관통했어요. 죽을 뻔했죠. 지금도 흉터가 크게 남았어요. 지금 다시 돌아가도 독일 갈 겁니다. 당시 파독은 제가 살고 제 가족이 살고, 우리나라가 사는 유일한 길이었어요.”

왼쪽부터 이홍규 홍보이사, 김경환 사무국장, 복창수 이사, 이우연 회장. (사진=뉴스포스트 이상진 기자)
왼쪽부터 이홍규 홍보이사, 김경환 사무국장, 복창수 이사, 이우연 회장. (사진=뉴스포스트 이상진 기자)

이우연 한국파독광부간호사간호조무사연합회(이하 한파연) 회장은 자신의 흉터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파독 광부로 간 것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뉴스포스트> 취재진이 12일 서울시 서초구 양재동 소재 한파연 사무실에서 파독 광부들을 만난 자리에서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지난 1963년 12월 21일 1차 파독 광부 123명을 파견했다. 정부는 이를 시작으로 1977년까지 광부 7,936명, 간호사와 간호조무사 11,057명을 독일로 보냈다. 경제발전을 위한 외화 획득과 심각한 실업난 해소가 목적이었다. 

이날 <뉴스포스트>는 이우연 회장(76)과 복창수 이사(79), 이홍규 홍보이사(74), 김경환 사무국장(71)을 만났다. 이들 모두 파독 광부로 ‘한강의 기적’으로 불리는 굵직한 대한민국 현대사에 참여한 바 있다. 본지는 수십 년 전 파독 광부 청년이었던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청년 세대 대부분은 영화 ‘국제시장’으로 파독 광부를 접했을 텐데요.

영화 내용과 실제 생활이 비슷했나요?


“파독 광부, 파독 간호사 다룬 영화 ‘국제시장’...실제 생활은 더 혹독”

1400만 관객이 본 윤제균 감독의 영화 국제시장 스틸컷. 극중 덕수(황정민 분)와 명자(김윤진 분)가 파독 광부와 간호사로 일한다.  (출처=네이버 영화)
1400만 관객이 본 윤제균 감독의 영화 국제시장 스틸컷. 극중 덕수(황정민 분)와 명자(김윤진 분)가 파독 광부와 간호사로 일한다. (출처=네이버 영화)

이우연 회장: 아마 많은 청년 세대가 ‘국제시장’이란 영화로 파독 광부나 간호사 이야기를 접했을 거예요. 영화가 일부는 맞지만, 전체적인 내용은 반영이 안 됐어요. 실제 파독 광부과 간호사, 간호조무사들의 삶은 더 혹독했지요. 작업 중에 다치는 일은 다반사였어요. 저도 철로 수리 작업 중에 오른쪽 어깨 밑을 철근이 관통했죠. 현장에서 정신을 잃었는데, 깨어나 보니 병원인 거예요. 지금도 흉터가 크게 남았어요.

복창수 이사: 앞이 진짜 먼지 때문에 보이지 않을 정도였죠. 요즘 코로나19 때문에 KF94 마스크 많이들 쓰잖아요? 그것도 답답한데, 광산에선 그보다 더 두꺼운 마스크를 하루에 4~5개 정도 교체해서 써야 해요. 땀은 말할 것도 없죠. 지열이 40도 가까이 되는 곳도 많았어요. 부상을 막기 위해서 두꺼운 작업복과 작업화를 신는데, 하루에 물을 5~6리터 마셨죠. 30도 이상인 광산은 7시간, 30도 미만은 8시간 일했는데, 막장에나 들어가서 무릎 꿇은 채로 탄 캐면 진짜 못 견디겠더라고요.

이홍규 홍보이사: 독일인들이 기본적으로 외국인이라고, 아시아인이라고 차별하거나 그런 건 없어요. 그런데 같이 일하다 보면 독일어를 몰라 답답할 때가 있으니까, 무시하는 말을 할 때가 있죠. 말귀를 못 알아들으면 슈바이너(돼지라는 뜻)라고 하는데 이거는 양반이고요. 욕은 한국이나 독일이나 똑같더라고요. 부모 욕하고. 성적인 비하로 욕하고. 그때는 그게 참 서러웠죠. (웃음) 독일인은 그러지 않는데, 가끔 터키인 반장들이 있어요. 얘네들은 진짜 거칠었죠. 폭력을 쓰기도 하고 그랬죠.

김경환 사무국장: 광부가 몸이 힘들었다면 간호사, 간호조무사들은 몸도 몸이지만 마음도 고달팠죠. 양로원에서 근무하는 간호사, 간호조무사들은 정말 힘들었죠. 양로원서 죽어 나오는 시체 닦고 궂은일 하는데 말은 안 통하지. 그때 간 간호사들이 22살, 23살이랬어요. 꽃다운 청춘이었고, 한국에서 고등학교 교육 정도 받으면 중등교육 받은 인재인데, 외국에 가니 무시 받고 서럽고 우울증이 오는 거죠. 저희가 파악하기로, 1970년부터 1980년대까지 우울증과 자살로 죽은 간호사가 147명이에요. 같은 기간에 지반 사고로 죽은 광부들은 서른 명 정도였고요. 꽃 같은 청춘들이 타지에서 스러진 겁니다.
 


현재도 직업병으로 고생하는 분들이 상당히 많이 계실 것 같습니다.


“폐·호흡기·청각 장애 등 직업병으로 고생하는 광부들 부지기수...정부 외면 아쉬워”

이우연 회장(왼쪽)과 이홍규 홍보이사. 지난 5월 파독 광부와 간호사, 간호조무사를 지원하는 법률안이 통과해 내년 5월 시행을 앞두고 있다. 한파연은 파독 박물관과 기념비 등을 계획 중이다. (사진=뉴스포스트 이상진 기자)
이우연 회장(왼쪽)과 이홍규 홍보이사. 지난 5월 파독 광부와 간호사, 간호조무사를 지원하는 법률안이 통과해 내년 5월 시행을 앞두고 있다. 한파연은 파독 박물관과 기념비 등을 계획 중이다. (사진=뉴스포스트 이상진 기자)

이우연 회장: 파독 광부들 가운데 국내 산재보험 혜택을 못 받는 사람들이 많아요. 파독 광부들 고질병인 규폐증(규산 있는 먼지를 오랫동안 마셔서 폐에 규산이 쌓여 생기는 만성질환. 석탄 광산에서 일한 광부의 직업병) 환자라든지, 호흡기 환자, 청각 환자 등이요. 국가 경제 발전을 위해 독일에 가 고생한 이들을 외면하는 것 같아 안타깝죠. 몇 명이나 직업병으로 고통받고 있는지 정확한 통계도 없는 상황입니다.

김경환 사무국장: 대한석탄공사에서 규폐증 걸린 사람 중에 파독 광부들은 인정을 안 해줬어요. 한국에서 광부하다가 독일 간 사람이나 한국 광부들만 규폐증을 직업병으로 인정해주고 치료비 등 지원해줬죠. 경북 문경 가면 문경제일병원이라고 규폐증 전문 병원이 있는데, 거기서 최근에 파독 광부 2명이 규폐증으로 죽었어요. 독일에서 한 명이 죽었고요. 이쯤되니까 이제 정부에서 조금 완화해주려고 하는 모양인데, 부족한 형편이죠.

복창수 이사: 파독 광부와 간호사, 간호조무사 지원과 기념사업 지원 법률안이 지난 5월 통과됐어요. 내년 5년 시행됩니다. 지금 사무실은 월세를 내고 있어요. 저희 것이 아니고요. 한파연 운영도 정부 지원 없이 회비로만 운영되고 있는데, 지원 법안이 통과됨에 따라 사정이 조금 나아지길 기대하고 있습니다. 서울시에 부지를 받아 5층 건물 박물관과 기념관을 지을 계획이고, 기념비도 세울 예정입니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멀죠. 저희가 활동한 지 57년 만에 법이 겨우 통과됐는데, 실제 부지 확보와 예산 배정까지 얼마나 걸릴지 알 수가 없는 실정입니다.
 


파독 광부 월급 수준이 상당히 높았다고 알고 있는데요.

파독 광부 선발 경쟁률은 어느 정도나 됐나요?


“파독 광부 월급 1000마르크...74년도 5급 공무원 봉급 50배”

1963년 12월 21일 파독 광부 123명이 탑승한 최초의 비행기. (사진=한국파독광부간호사간호조무사연합회 제공)
1963년 12월 21일 파독 광부 123명이 탑승한 최초의 비행기. (사진=한국파독광부간호사간호조무사연합회 제공)

이우연 회장: 그런데도 파독 광부로 간 이유요? 가족들 먹여 살리려고 갔죠. 먹고 살기가 힘드니까. 1968년에 무작정 돈 4만 5,000원 가지고 인천으로 갔어요. 거기서 건빵, 라면, 빵 이런 거 떼다가 팔았어요. 성공했죠. 집도 사고 창고도 크게 짓고요. 그런데 장사가 부도가 나버렸어요. 물건 떼다 팔아야 하는데, 가보니까 공장이 망해서 떼다 팔 물건이 없는 거예요. 사업이 망하니 사람들 차갑데요. 제가 미리 깔아줬던 라면들, 건빵들 대부분 원금 회수도 못 했죠. 지급보증한 거는 추심이 막 들어오고요. 망한 거죠. 기아차 타이탄 트럭 하나 겨우 사서 이삿짐부터 목재를 나르기 시작했는데 몸이 감당을 못했어요. 급성간염으로 병원에 입원했는데, 그때 파독 광부라는 게 있다는 걸 알았죠.

이홍규 홍보이사: 74년 기준으로 5급 공무원 1호봉 월급이 1만 7,500원 수준이었어요. 그런데 파독 광부는 한 달에 1,000마르크 정도 벌었죠. 당시에 1마르크에 480원~500원 정도 할 때니까 50만 원 정도 된 거죠. 5급 공무원 50배 정도인데, 엄청 큰돈이었죠. 생활비 300마르크 정도 제외하고는 70% 이상 한국 가족들에게 보냈어요. 아마 파독 광부들 대부분이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복창수 이사: 처음에 가면 기숙사 생활을 하는데, 독일 쪽방촌에 나가 살면 돈을 아낄 수 있었죠. 그래서 나가서 사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기숙사는 한 달에 300마르크 정도 생활비가 들어가면 쪽방촌은 100마르크 정도면 먹고 살았거든요. 또 토요일, 일요일, 공휴일, 야간에 일하면 시간당 1마르크 10페니 정도 수당이 붙었어요. 8시간이면 8마르크 정도 붙는 건데, 이게 한국 돈으로 4,000원이었거든요. 수당만 해도 당시 우리나라 웬만한 월급쟁이 정도 받은 거죠.

김경환 사무국장: 급여가 상당했기 때문에 경쟁률도 높았죠. 1963년 1차 파독 광부는 수백 명 모집하는데 수만 명이 모이기도 했어요. 90:1 정도 경쟁률이었죠. 저는 신촌 연세대 앞 해외개발공사에서 시험을 봤는데, 당시 경쟁률도 30:1 정도 됐던 거 같습니다. 줄이 끝이 보이질 않았어요. 60킬로그램 무게 모래가마니를 들어야 했죠. 정말 무겁습니다. (웃음) 이거를 통과하면 언어교육 과정과 신체검사, 신원조회 등을 거쳐 최종 선발되는데, 신원조회가 당시에 정말 까다로웠죠. 떨어지는 사람도 많았어요.
 


사선을 넘나드는 파독 광부 생활이었다고 말씀해주셨는데요.

그래도 행복했던 순간을 꼽아주신다면.


“행복한 추억은 유럽 여행...차범근 선수 경기 직접 본 것 기억에 남아”

비행기에 몸을 싣는 파독 광부들. (사진=한국파독광부간호사간호조무사연합회 제공)
비행기에 몸을 싣는 파독 광부들. (사진=한국파독광부간호사간호조무사연합회 제공)

이우연 회장: 광부 시절 휴가가 나이에 따라 30~40일 정도 돼요. 저는 나이가 많아서 40일 받았죠. 휴가 땐 보통 사과밭에서 아르바이트하면서 돈을 벌었는데요. 3년째 휴가는 다른 파독 광부 30명과 유럽 7개국 단체 여행을 갔어요. 폴란드 바다낚시에서 양동이 가득 물고기를 잡았을 때의 손맛은 지금도 생생합니다.

이홍규 홍보이사: 저도 프랑스 세느강이나 영국 대영박물관, 바티칸시국, 스위스 몽블랑 등등 갔던 게 기억에 남아요. 당시 차범근 선수가 분데스리가에서 뛸 때인데 직접 가서 봤어요. 차범근 선수가 패스 한 번 하면 경기장에 한글로 ‘차붐’ ‘차붐’ 글자가 번쩍번쩍했어요. 자랑스럽더라고요.

김경환 사무국장: 저는 75명이 모여서 여행을 갔어요. 광부들이랑 간호사들이랑 간호조무사들 같이요. 2층 버스를 타고 갔는데, 그 가운데 남자가 10명뿐이었죠. 총각은 저 포함해서 5명이었고. 우리 총각들은 금값이었죠. (웃음) 그때만큼은 파독 광부나 간호사가 아니었죠.
 


파독 세대는 지금 우리나라 현실을 어떻게 보시는지 궁금합니다.

또 청년 세대에게 해주실 말씀이 있다면 해주세요.


“우리 정치가 새싹처럼 움트는 청년 뭉개...자녀 세대에게 부끄럽다”

왼쪽부터 김경환 사무국장, 복창수 이사, 이홍규 홍보이사, 이우연 회장. (사진=이상진 기자)​
왼쪽부터 김경환 사무국장, 복창수 이사, 이홍규 홍보이사, 이우연 회장. (사진=뉴스포스트 이상진 기자)​

이우연 회장: 어지러운 세상이에요. 청년들이 정말 코피 쏟아가며 공부해서, 좋은 대학 들어가고 졸업해 직장 잡으려고 하는데 어려워요. 다 알음알음, 누구 아들이니 딸이니, 연결된 사람들이 직장 잡고 좋은 데 가니까. 청년들이 공부해서 뭐하냐? 공부할 필요가 없지 않냐? 이렇게 묻는 세상. 진짜 박탈감 느끼고 허무하니까 지금 나라를, 정치를 좋게 평가할 수가 없죠.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해야 하는데, 특정 세력을 위한 정치를 해서야 되겠습니까. 청년들에게 꿈과 희망을 줘야지. 그래도 노년 세대를 ‘틀딱’이니 ‘할매미’니 이렇게 폄하하는 건 서운하죠. 기성세대가 가족을 위해, 나라를 위해 나름대로 열심히 살았다는 그런 생각을 해주길 바랍니다.

김경환 사무국장: 정말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습니다. 뭐 이런 놈의 세상이 있나 싶어요. 어른들로서 자라나는 세대에게 모범이 돼야 하는데, 모범이 될 게 하나도 없어요. 부끄러워서 자녀들이랑도 정치 얘기 못 합니다. 그나마 청년 세대가 우리처럼 고생 안 하고 사는 건 자랑스럽습니다. 1963년 당시에 대통령이 독일 가는데 비행기가 없었어요. 전용기가 없어서 독일 국적기를 타고 알래스카 지나서 24시간 만에 독일 갔죠. 당시만 해도 국회의원이고 국민이고 꿈이 비행기 한 번 타보는 거였어요. 요즘 젊은이들은 앉아서 전 세계를 다 볼 수 있잖아요. 미국 어디에 맛집이 있고, 맛있는 커피는 어디 팔고. 이런 사소한 것들도요. 청년 세대도 우리 세대처럼 주어진 환경 속에서 기회를 잡기를 바랍니다.

이홍규 홍보이사: 환경이 변하고 사회가 변했기 때문에 청년들이 힘들다는 것을 이해합니다. 요즘은 노력이 빛을 보기가 어려운 시대니까요. 그래도 우리나라를 이끌어갈 동량지재를 위해 조언하자면, 우리 청년 시절처럼 근면 성실하게, 도전정신과 개척정신을 갖춰주길 기대합니다. 자기 자신을 지키고 남에게 의지하지 않고 홀로 설 수 있는 어른이 됐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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