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앱티브 합작사 모셔널, 수천억 적자 지속에 내달 유상증자
앱티브 “모셔널에 추가 자본 투입 안 해...보유 지분 축소도 고려”
현대차·기아·현대모비스, 앱티브물량 소화하면 지분평가손 커질듯

지난 2021년 2월 미국 라스베이거스 일반도로에서 무인 자율주행차 시험 주행을 하고 있는 모셔널 자율주행차. (사진=현대자동차그룹)
지난 2021년 2월 미국 라스베이거스 일반도로에서 무인 자율주행차 시험 주행을 하고 있는 모셔널 자율주행차. (사진=현대자동차그룹)

[뉴스포스트=이상진 기자] 현대자동차그룹이 자율주행기술 사업의 갈림길에 섰다. 현대차그룹이 미국 앱티브와 함께 현지에 설립한 자율주행 합작사 모셔널의 유상증자 계획이 무산되면서다. 앱티브 외 글로벌 완성차 기업들도 상용화와 안전 이슈로 자율주행 사업에서 발을 빼고 있다. 자율주행 사업이 암초를 만난 상황에서 현대차그룹의 투자 추가 결정은 당장 내달로 다가왔지만 교통정리도 되지 않은 모양새다.


현대차그룹-앱티브 합작사 모셔널, 지난해 상반기 7500억 적자


현대차그룹과 美 앱티브는 지난 2020년 자율주행 합작사 모셔널(Motional)을 설립했다. 당시 현대자동차가 1조 2600억 원, 기아가 6900억 원, 현대모비스가 4900억 원 등을 투자했다. 지분은 현대자동차(26%), 기아(14%), 현대모비스(10%) 등으로 모셔널 지분의 50%를 현대차그룹이 보유하고 있다. 나머지 50% 지분은 앱티브가 보유 중이다.

2020년 모셔널 출범 당시만 해도 완성차업계에서는 자율주행차가 수년 내 도로를 달릴 것이란 시장의 확신이 있었다. 한때 거리를 점령했던 마차가 내연기관차의 등장으로 한순간에 사라졌듯, 자율주행차의 등장이 모빌리티의 새로운 분기점이 될 것이라 본 것이다.

보장된 미래 먹거리라는 확신 아래 현대차그룹과 메르세데스 벤츠, 구글, GM, 폴크스바겐, 포드, 바이두, 웨이모, 크루즈, 모빌아이 등 글로벌 완성차업계와 IT업계가 합종연횡하며 자율주행차 시장에 뛰어들었다. 지난해 8월 현대차그룹은 세계 최초로 시속 80km까지 달리는 레벨3 자율주행차 상용화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자율주행의 미래를 본 모빌리티 기업들은 자본을 쏟아부었다. GM과 구글, 웨이모 등 글로벌 기업들은 매년 수십억 달러씩 적자를 보면서도 자율주행 사업에 투자했다. 현대차그룹과 앱티브의 합작사 모셔널도 2020년 2315억 원 적자를 시작으로, 매년 적자를 기록하다 지난해 상반기 기준 7500억 원으로 적자가 불어났다. 


밑 빠진 독 물 붓기 지친 앱티브...손 들었다


문제는 꿈의 기술, 보장된 먹거리라고 생각하며 매년 수조 원대에 달하는 자본을 자율주행에 투자했던 글로벌 모빌리티 기업들이 하나둘 나가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GM은 지난달 로보택시 자회사 크루즈에 대한 자본 지출을 10억 달러 줄일 것이라고 밝혔다. 안전 이슈가 원인이었다. 

지난해 10월 캘리포니아 자동차국은 GM 자회사 크루즈의 자율주행 운행을 중단시켰다. 교차로에서 발생한 인명사고 때문이었다. GM 투자 축소로 크루즈는 전체 직원의 25% 정도를 감원하는 대규모 구조조정에 돌입한 상태다. 일찍이 폭스바겐과 포드도 기술 개발의 어려움 때문에 자율주행 합작사 아르고AI에 대한 투자를 전면 철회했다. 이후 아르고AI는 2022년 폐업했다.

지난 2017년 CES 당시 라스베이거스에서 현대차그룹 정의선 수석부회장이 아이오닉 자율주행에 탑승, 성능을 점검하고 있다. (사진=현대자동차그룹)
지난 2017년 CES 당시 라스베이거스에서 현대차그룹 정의선 수석부회장이 아이오닉 자율주행에 탑승, 성능을 점검하고 있다. (사진=현대자동차그룹)

8일 업계에 따르면 케빈 클라크 앱티브 회장은 지난달 31일(현지시각) 지난해 4분기 실적 발표회에서 “모셔널이 기술 및 상용화 측면에서 발전을 지속하고는 있지만 투자 범위를 핵심사업 분야로 축소하기로 했다”며 “모셔널에 더 이상 자본을 투입하지 않고 보유 지분을 상당히 줄이는 방향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기술 개발 측면에선 모셔널이 꾸준히 진전을 보이고 있지만 자율주행 기술을 하드웨어와 결합해 구현하는 비용을 고려하면 온디맨드 모빌리티 시장에서 채택되기 어렵다”고 진단했다.

모셔널에 대한 앱티브의 입장 표명은 모셔널의 유상증자 이슈 때문이다. 수천억 원의 적자를 기록하고 있는 모셔널은 현대차그룹과 앱티브에 유상증자를 요청했는데, 이에 앱티브가 유상증자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날 앱티브는 지난해 모셔널로 본 지분법평가손해가 3억 4000만 달러에 달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르면 나머지 50% 지분을 나눠 가진 현대차와 기아, 현대모비스의 지분 평가손도 각각 적게는 수백억 원에서, 많게는 수천억 원대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앱티브가 모셔널 유상증자에 발을 뺀 배경에는 글로벌 모빌리티 기업들의 지지부진한 자율주행 사업 추진 상황이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모셔널이 올해를 목표로 준비하는 로보택시 상용화 계획과 모셔널 소프트웨어가 타 완성차 하드웨어에 채택돼 로열티를 받을 가능성 모두를 낙관하지 않은 것으로 풀이된다.

자율주행 사업에서 글로벌 모빌리티 업계의 부진과 합작사 앱티브의 투자 철회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현대차그룹의 고심도 깊어지고 있다. 당장 내달로 다가온 모셔널의 유상증자와 관련해 현대차그룹은 각 계열사가 자체적으로 판단하기로 했다는 입장이다. 

문제는 적자를 지속하며 글로벌 모빌리티 기업들도 발을 빼는 자율주행 사업에 새로운 투자자를 끌어오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앱티브가 소화했어야 할 물량을 현대차나 기아, 현대모비스 등 현대차그룹 계열사들이 인수한다고 해도, 모셔널 지분 인수에 따른 계열사들의 지분 평가손 부담은 커진다. 또 앱티브가 공언한 대로 자사가 보유한 모셔널 지분 50%를 상당 부분 줄인다면, 해당 물량을 소화하는 방식에 대한 고민도 현대차그룹에 남은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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