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미국 눈치보느라 경제주권 상실”
송기호 변호사 “이창양 장관, 책임회피...한미FTA 제소가 맞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 “美 반대세력 이용해 판 바꿔야”
23일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美 출장...IRA 대응 나설듯

[뉴스포스트=이상진 기자] 현대차그룹을 때린 美 조 바이든 행정부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미국이 우방국인 한국의 뒤통수를 쳤다”며 “WTO 제소 등을 검토한다는 한국 정부의 대응도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 5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오른쪽)이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과 환담 후 기자 스피치를 하고 있다. (사진=현대자동차그룹 제공)
지난 5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오른쪽)이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과 환담 후 기자 스피치를 하고 있다. (사진=현대자동차그룹 제공)

바이든 행정부는 지난 16일(현지 시간) 북미 지역에서 생산하고 조립한 전기차에만 세액공제를 제공하는 IRA를 통과시켰다. 이에 따라 현대차그룹이 미국에서 판매하는 △현대차 아이오닉5 △기아 EV6 등 전기차 5종과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차량 5종까지 세제 혜택 대상에서 제외됐다. 미국 현지에서 현대차그룹의 친환경차를 구입하려는 소비자는 대당 7500달러(한화 1005만 6000원) 수준의 추가 비용을 들여야 하는 것이다.

IRA 발효 소식에 우리나라 정부는 세계무역기구(WTO) 제소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지난 22일 IRA와 관련해 WTO 제소 여부를 적극적으로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미국이 IRA를 발표하면서 한국에 신의를 저버렸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그러면서 WTO 제소 방침을 밝힌 정부 대응이 “보여주기식”이라고 지적했다. 반면 향후 대응 방안에 대해선 의견이 나뉘었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24일 뉴스포스트와의 통화에서 “한국 정부가 미국 눈치를 보면서 WTO 제소라는 허울뿐인 제스처를 취하고 있다”며 “한미FTA 위반이라는 게 명백함에도 불구하고, 경제주권을 포기한 상황”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정부는 기만적인 내국용 대응 대신, 한미FTA 제소를 통해 IRA에 대응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송기호 법무법인 수륜아시아 대표변호사는 “이번 미국의 IRA 발효는 한미FTA의 ‘내국민 대우 위반’이 명백하다”며 “전기차가 조립된 나라가 어디인지에 따라 차별적인 조세를 부과하는 건 수입품과 국산품을 차별하는 한미FTA 위반사항”이라고 했다. 이어 “WTO 절차는 트럼프 행정부 이후 미국의 방해로 항소기구도 구성하지 못하는 무기력한 상황”이라며 “한국 정부가 한미FTA 성공 논리에 갇혀 미국의 위반행위에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김필수 대림대학교 자동차학과 교수도 “이창양 장관의 WTO 제소 검토 발언은 보여주기식 대응”이라며 “WTO 자체가 미국 중심으로 구성되기 때문에, 항소를 해봐야 시간도 오래 걸리고 결과도 기대하기 어렵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바이든 대통령이 불과 3개월 전에 방한해 정의선 회장의 100억 달러 투자약속을 받고 갔는데, 뒤통수를 때린 격”이라며 “현대차는 보조금 1000만 원 손실로 판매가 거의 중단된 것이나 다름없다”고 했다. 이어 “IRA 통과 당시 미국 상원의 찬성과 반대표가 거의 50:50으로 나뉘었다”며 “WTO나 FTA 제소로 양국의 이해관계를 충돌하게 하는 것보다는 미국 내 IRA 반대세력을 이용해 실용적으로 상황을 해결해 나가야 한다”고 제언했다.

한편, 24일 업계에 따르면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전날인 23일 김포국제공항을 통해 미국으로 향했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정 회장이 미국 출장길에 오른 건 맞다”며 “구체적인 일정 등은 확인해줄 수 없다”고 말했다. 업계는 정 회장이 현지에서 IRA 관련 현안을 논의할 것으로 보고 있다. 정 회장과 함께 국내외 대관 업무를 총괄하는 공영운 현대자동차 사장도 미국으로 향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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