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의선 시대’는 2018년 12월 12일 정몽구 사단 퇴진 기점
- 정의선 수석부회장 1년만에 현대차그룹 체질 바꾸는 묘목 심어
- 엘리엇 등 벌처펀드 경영권 도전과 순환출자구조 해소 숙제

국내 자동차 업체뿐만 아니라, 내연기관차 중심의 글로벌 자동차 업체도 판매량 감소와 실적하락으로 생존을 고민하고 있다. 소유 개념에서 공유 개념으로 바뀌고 있는 모빌리티 산업의 패러다임 변화도 글로벌 자동차 업계가 맞닥뜨린 새로운 위기다. 이에 연간 400만 대 이상을 글로벌 시장에 판매하는 판매량 기준 국내 1위 자동차 업체이자, 글로벌 6위 자동차 업체인 현대자동차그룹의 위기와 생존전략에 대해 5회에 걸쳐 짚어보고자 한다. [편집자주]

[현대차 대해부] ① 文정부 ‘수소경제’ 발맞춰 수소차 드라이브
[현대차 대해부] ② ‘미래 모빌리티’ 판도라 상자 열었다
[현대차 대해부] ③ 고강도 체질개선 숙제 푼다...정의선의 승부수
[현대차 대해부] ④ 김필수 “현대차그룹, 제 몸 태우는 촛불 되지 말아야”
[현대차 대해부] ⑤ “정의선 리더십이 엘리엇 쫓아내...우버·현대차는 윈윈”

[뉴스포스트=이상진 기자] 지난 2018년 9월 취임한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수석부회장이 본격적으로 경영 일선으로 나온 시기는 같은 해 12월 12일을 기점으로 볼 수 있다. 이날 현대차그룹은 주요 계열사 대표이사와 사장단을 교체하는 대규모 인사를 시행했다. 정몽구 사단의 핵심 ‘올드보이’들이 물러나고 정의선 수석부회장 네트워크가 형성되면서 정의선의 시대가 막을 올린 순간이었다.

정의선 수석부회장은 1년이 조금 넘는 짧은 기간 동안 현대차그룹을 글로벌 자동차 제조사에서 ‘혁신 모빌리티’ 기업으로 변모시키는 도전을 시작해, 미래 먹거리 창출을 위한 시동을 걸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반면 엘리엇 등 해외 벌처펀드의 경영권 도전과 순환출자구조 해소라는 문제는 여전히 해결해야 할 숙제로 남아 갈 길 바쁜 정의선 부회장의 발목을 잡고 있다. <뉴스포스트>가 정의선 현대차그룹 시대의 명암을 간략하게 정리해봤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 (사진=현대자동차그룹 제공)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 (사진=현대자동차그룹 제공)

◇ 명(明)

1. 현대차그룹을 자동차 제조사에서 미래 모빌리티 기업으로 전환하다.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수석부회장의 가장 큰 공로를 꼽자면 현대자동차그룹을 자동차 제조사에서 미래 첨단 모빌리티 기업으로 바꾸는 씨앗을 심었다는 것이다. 정의선 수석부회장은 지난 7일부터 10일까지 나흘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2020에서 도심 항공 모빌리티 중심의 비전을 제시했다.

모빌리티(Mobility)라는 개념은 차량, 탈 것, 운송수단 등 비히클(vehicle) 개념을 벗어난 이동 수단의 모든 것을 의미한다. 바퀴의 유무를 떠나 이곳에서 저곳으로 이동할 수 있게끔 해주는 수단이라면 모두 포함하는 개념이다. 최근 글로벌 자동차 시장은 이 모빌리티 개념을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 이 개념을 정의선 수석부회장이 그룹의 핵심 가치로 가져온다고 천명한 것이다.

이날 정의선 수석부회장은 ‘UAM-PBV-Hub’로 연결되는 핵심 개념을 통해 현대차그룹의 미래 모빌리티 비전을 선보였다. 정의선 부회장의 비전은 승객이 개인용비행체를 타고 도시의 이곳에서 저곳을 날아서 가(UAM) 전기차 기반 자율주행 모빌리티를 타기 위해 지상에 착륙하고(Hub) 개인용비행체에서 내려 Hub에 정차돼 있던 맞춤 테마 모빌리티를 골라 타 지상으로 간다(PBV) 등으로 설명할 수 있다.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수석부회장(왼쪽), 우버의 다라 코스로샤히(Dara Khosrowshahi) CEO. (사진=현대자동차그룹 제공)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수석부회장(왼쪽), 우버의 다라 코스로샤히(Dara Khosrowshahi) CEO. (사진=현대자동차그룹 제공)

이를 위해 정의선 회장은 차량 공유경제의 대표 모델인 미국의 우버와 손잡고 개인용비행체(PAV) 콘셉트를 선보이기도 했다. 우버가 현대차그룹에 미래 도심 항공 모빌리티 비전의 원형을 제시하고 글로벌 자동차 제조사인 현대차그룹이 그런 우버의 비전을 참고해 상용화 가능성을 높인 것이다.

현대차그룹의 미래 모빌리티 비전은 아직까지는 관련 법제와 해결해야 할 기술적 숙제가 남아있다. 하지만 정의선 부회장은 경영 일선에 나선 지 1년여 만에 향후 그룹의 거목으로 자라날 묘목을 심는 리더십을 선보였다.
 

2. 친환경차 경쟁력을 강화하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의 또 다른 공로를 꼽자면, 현대차그룹의 친환경차 글로벌 경쟁력을 비약적으로 발전시켰다는 점이다.

수소연료전지는 20세기 중반 유인 우주선에서 유래된 기술이다. 우리나라는 지난 노무현 정부 때 수소연료전지 기술에 드라이브를 건 바 있다. 당시 현대차그룹은 수소연료전지 기술을 자동차로 가져오며 글로벌 수소연료전지차 기술을 선도했다. 하지만 이명박 정권으로 들어서면서 수소연료전지에 대한 정부 지원이 축소됐다. 이에 따라 현대차그룹의 수소연료전지차 기술도 크게 도약하지 못했다.

수소연료전지차는 지난 2017년 들어선 문재인 정부 때 다시 주목받았다. 문재인 정부의 ‘수소경제’ 드라이브의 일환으로 수소연료전지차의 역할론이 대두된 것이다. 정의선 수석부회장은 정부의 지원을 디딤돌 삼아 수소연료전지차 기술에 다시 한 번 드라이브를 걸었다.

정의선 수석부회장이 수소위원회 주관 만찬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현대자동차그룹 제공)

정의선 수석부회장은 정부가 수소경제 활성화 로드맵을 발표한 뒤 연이어 수소연료전지차 관련 계획을 발표하며 화답했다. 정 부회장은 2019년 1월 24일 수소위원회 공동회장에 취임했고, 2월 14일에는 어린이 박람회를 통해 현대차의 수소연료전지차 안전 기술력을 공개했다.

또 현대차는 같은 해 4월 11일에는 한국동서발전과 함께 국내 독자 기술 기반의 수소연료전지 발전 시범사업 MOU를 체결하기도 했다. 5월 30일에는 서울 여의도 국회에 수소충전소 착공식을 하고 넉 달 뒤인 9월 완공했다.

정의선 수석부회장은 지난해 6월 일본에서 열린 G20 에너지환경장관회 오찬에서 각국 정부와 기업 최고경영자에게 수소경제에 동참할 것을 요청하기도 했다. 현대차는 지난달 18일 스웨덴 정밀 코팅 분야 기업 ‘임팩트 코팅스’와 수소연료전지 핵심기술을 공동개발하는 MOU도 체결했다.

정 수석부회장은 또 다른 친환경차인 전기차 기술력 개발에도 앞장섰다. 그는 지난 2일 신년사를 통해 “오는 2025년까지 11개의 전기차 전용 모델을 포함해 총 44개의 전동화 차량을 운영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현대자동차그룹은 오는 2025년까지 △전기차 23종 △하이브리드 13종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6종 △수소연료전지차 2종 등 44개 차종으로 친환경차 모델을 확대한다.
 

◇ 암(暗)

벌처펀드 엘리엇 등 해외 투기자본의 도전과 순환출자구조 해소 숙제.

지난해 2월 27일과 28일 미국 행동주의 헤지펀드 엘리엇은 현대자동차와 현대모비스 주주들에게 공개서신을 보냈다. 엘리엇은 서신을 통해 주주들에게 주주배당을 높이고 이사회의 투명성을 강조하는 내용의 의안을 지지해달라고 호소했다. 이에 현대자동차도 “현대차 이사회의 투명성을 강화해 주주가치 중심의 경영을 하겠다”는 입장을 발표해 맞불을 놨다.

엘리엇은 지난 2017년 말부터 현대자동차와 현대모비스 주식을 전략적으로 사들였다. 2017년은 현대차가 △중국 사드보복 여파 △미국 보호무역주의 강화 △내수부진 등의 삼중고를 겪은 시기였다. 더불어 당시는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해다. 문 정부가 현대자동차그룹 계열사의 순환출자 해소에 대한 본격적인 압박을 시작한 때였다.

대기업의 순환출자구조를 해소하는 것은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이었다. 새 정부가 출범하고 그해 5월 취임한 김상조 전 공정거래위원장은 취임 일성으로 “현재 순환출자가 문제인 곳은 현대차그룹 하나뿐”이라며 현대차그룹을 콕 집어 지적했다.

현대자동차그룹은 정부의 기조에 맞춰 지난 2018년 3월 현대모비스와 현대글로비스의 분할합병을 골자로 하는 지배구조개편안을 내놓고 의욕적으로 추진했지만, 엘리엇 등 외국계 투자자들의 반대에 직면해 결국 같은 해 5월 개편안을 포기해야 했다.

이에 헤지펀드 엘리엇이 2017년부터 경영상의 어려움과 정부의 압박을 동시에 받던 현대자동차그룹을 표적으로 삼아 공격을 이어오던 차였다.

2019년 3월 22일 현대자동차 제51기 주주총회에서 투표와 개표가 진행되고 있다. (사진=뉴스포스트DB)
2019년 3월 22일 현대자동차 제51기 주주총회에서 투표와 개표가 진행되고 있다. (사진=뉴스포스트DB)

현대자동차는 지난 2019년 3월 22일 서울 서초구 헌릉로 현대자동차 본사 서관 2층 대강당에서 제51기 정기주주총회를 개최했다. 현대차그룹과 엘리엇의 명운이 달린 주주총회였다.

엘리엇은 주총을 통해 현대자동차에는 △보통주 1주당 21,967원 △우선주 1주당 22,017원 등을 배당할 것을 요구했고, 현대모비스에는 △보통주 1주당 26,399원 △우선주 1주당 26,449원 등을 배당할 것을 요구했다. 보통주로만 따져도 현대차는 4조 6,000억 원, 현대모비스는 2조 6,000억 원 규모였다.

이는 연결재무제표 기준으로 현대자동차와 현대모비스의 영업이익과 당기순이익을 훨씬 웃돌았다. 2018년 현대자동차는 영업이익 2조 4,221억 원, 당기순이익 1조 6,450억 원을 기록했고, 현대모비스는 영업이익 2조 249억 원, 당기순이익 1조8,888억 원 수준이었다.

이 밖에 엘리엇은 △14조 3,000억 원에 달하는 현대자동차의 초과자본금 환원 △7조 4,000억 원에 달하는 현대모비스의 초과자본금 환원 △현대자동차·현대모비스의 보수위원회 및 투명경영위원회 신설을 통한 기업경영구조혁신 등을 추가로 요구했다.

이날 현대차 이사회는 51기 주주총회에서 주요안건을 둘러싼 엘리엇과의 표 대결에서 완승했지만, 엘리엇 등 헤지펀드의 위협이라는 불씨는 남은 상태다. 현대차그룹이 아직 순환출자구조를 해소하지 못한 까닭이다.

순환출자구조에 대한 정부의 압박은 여전하다. 업계는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이 경영권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면서 순환출자구조를 해소하기 위해선 4~6조 원까지 자금이 필요할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순환출자구조를 해소하기 위한 그룹 내 자금 출혈과 구조조정 과정에서 다시금 엘리엇 등 벌처펀드의 목표가 될 여지가 남아있는 셈이다.

김필수 대림대학교 자동차과 교수는 16일 <뉴스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엘리엇 등 해외 헤지펀드가 현대차그룹의 순환출자구조를 노린 것”이라며 “현대차그룹은 순환출자구조 해소를 위한 그림을 다시 그려야 하는데, 그 시기는 올해 하반기나 내년 초쯤으로 예상된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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