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호 팀장 "신자유주의, 이주민들 '현대판 노예'로 만들어"
한국 경제 발전의 이면…이주노동자 착취로 태어난 결과물
이재명 대통령 지시에도 '이주노동자 환경' 바뀌지 않았다
근로계약 1년 단위로 맺어 '사업장 변경의 자유' 부여해야
3년 지나면 단계적 노동허가제로 바꿔 체류 기간 보장 필요
우리나라도 이주노동자 150만명 시대를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의 노동환경과 삶은 40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참혹합니다. 회사 사용자인 사업주가 때리고 폭언해도 피해의 당사자인 이주노동자들은 현재 고용허가제의 악습으로 인해 사업장 변경 자체가 안되는 것이 지금의 현실입니다. 본지 뉴스포스트는 이주노동자들이 한국에 들어와서 겪고 있는 업종별 차별 실태와 사회 곳곳에 뿌리 깊이 만연한 고용허가제의 문제점과 어떤 불법적인 요소가 도사리고 있는지 짚어보고자 합니다. 더 나아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에 대해 제시하고자 합니다. <편집자주>
"우리나라가 이주노동자 제도를 왜 도입했는지 알려면 자본주의 체계를 들여다봐야 합니다. 전 세계는 자본 축적의 시대입니다. 기업인들이 자본을 쌓고 이윤을 내려면 국가 차원에서는 신자유주의 정책을 펼칠 수밖에 없습니다. 신자유주의 체제의 핵심은 바로 민영화, 대기업 위주 경제를 앞세우는 겁니다. 대기업들은 하청에 하청을 주는 등 하도급 체제를 제도화해서 이윤을 극대화하겠다는 야심을 드러냅니다. 이 구조 속에서 이주노동자 제도가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거죠. 결국 현대판 노예의 실사판이라고 해도 무방합니다. 한국 경제가 발전을 이뤄내고 공고히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이주노동자들이 받는 최저임금과 노동 착취로 인한 것이라고 보면 됩니다." - 이주노동자 관련 노동·법률 분야 전문가로 평가받는 이기호 팀장의 일성이다.
[뉴스포스트=김주경 기자] 앞서 본지는 지난달 26일 이주노동자 유입을 위한 고용허가제의 구조적인 문제점을 종합적인 관점에서 짚은 <이주노동자 150만명 시대…그들에게 드리워진 '불법의 그림자' [고용허가제 논란 ①]> 제목의 기사를 출고한 바 있다.
해당 기사에서는 외국인 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이하 '외고법')이 제정된 이후 곧바로 시행된 고용허가제의 가장 큰 어려움이 사업장 변경 제한이라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왜 이주노동자들은 사업장 이동이 금지되는지 의문점을 가질 수밖에 없다.
정부가 이주노동자들의 사업장 이동을 제한하는 궁극적인 이유는 이주 노동자들이 사업장을 이탈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중소기업 상당수가 노동 환경이 열악하다보니 정부가 나서 중소기업이 붕괴되지 않도록 고용허가제라는 제도적 장치를 적용한 것이라고 보면 된다.
다만 사업장 이동이 원천적으로 차단된 것은 아니다. 고용허가제의 근간이 되는 외고법 25조에 따르면, 사업장 변경은 3가지 특정 사유가 인정될 경우에만 가능하다. 3가지 조건은 바로 사업주인 대표이사의 동의가 있어야 하며, 외국인 근로자의 책임이 아닌 사유, 노동부 장관이 고시한 사유가 존재해야 한다. 노동부 장관이 고시한 사유는 임금체불을 비롯해 경영상 어려움·폭행·기숙사 환경 등이다.
문제는 이 사유를 근로자가 직접 입증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주노동자가 폭행을 당해 상해를 입거나 질병으로 인해 일을 할 수 없는 상황임에도 입증할 수 있는 근거가 모호해 사업장 이동이 어렵다는 점도 이주노동자의 발목을 잡는 요인이 되고 있다.
본지는 지난달 28일 서울 종각역 인근에서 이기호 팀장을 만나 이주노동자들이 현실 속에서 겪고 있는 차별 행위와 고용허가제가 지닌 구조적인 문제점 및 제도적 개선 방안이 무엇인지 들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다음은 이기호 서울노동권익센터 법률지원팀장(사회학 박사)과의 일문일답.
▶ 이재명 대통령이 최근 이주노동자 인권실태 조사를 지시했다. 실무기관에서는 변화를 느꼈나?
"아직 이주노동자센터 등 일선 기관에 지침이 내려온 것은 없다. 지난 20년간 이주노동자를 상대로 법률 상담을 해왔지만, 스리랑카 지게차 사건과 같은 괴롭힘 사례는 비일비재하다. 이 사건도 엄밀히 말하면 대통령이 전수조사하라고 지시하면서 주목받게 된 것이다. 이주노동자들 다수는 기본적으로 사업주와 상급자로부터 욕설을 들으면서 일을 배운다. 폭행으로 팔·다리 또는 꼬리뼈가 부러지거나, 운동화나 구두에 짓밟혀 얼굴에 피멍이 시퍼렇게 들어 병원 치료도 못 받고 센터를 방문해 상담받는 경우도 많다. 수년간 이주노동자센터 종사자들이나 시민사회 활동가들이 고용허가제에 대한 구조적 제도 개편을 외쳤지만, 아직 체감하는 것은 없다."
▶ 상담 과정에서 겪었던 기억에 남는 황당한 사례는.
"10년 전에 겪었던 사건임에도 기억에 남는 사례가 있다. 충남에 사는 한 노동자가 이주노동자NGO센터에 가서 한국어 교육을 받은 적이 있다. 해당 노동자는 일하면서 월급을 제대로 받지 못해 수개월 째 임금이 밀려있다고 토로했고, 센터 측이 중재해서 다행히 밀린 체불임금을 받게 됐다. 그 노동자가 센터장한테 고맙다고 저녁 사주면서 '많이 먹어. XXX아'라고 말했다는 웃픈 일화가 있다. 사업장에서 일하면서 하루 종일 들었던 얘기가 욕설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들은 XXX라는 표현이 욕설인지도 모르고 세뇌당한 것이다."
▶ 가장 심한 차별이 이뤄지는 직종은 어느 분야인지 궁금하다.
"농업이 가장 심한 차별을 받고 있다. 건설업을 포함해 관광업·제조업·조선업 할 것 없이 차별받고 있지만, 농업 분야 종사자들이 유독 법의 사각지대에 고스란히 노출되고 있다. 근로기준법 63조에 따르면, 농업 사업장은 근로시간·휴게·휴일에 적용받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쉽게 말하면, 이들은 일주일에 50시간 60시간을 일해도 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대부분 농장은 한 달에 두 번밖에 쉬지 않는다. 농업 분야가 근로기준법 적용을 받지 않은 이유는 1970년대 초창기 노동법이 만들어졌을 당시 기준에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농업도 현대화가 됐음에도 이 변화를 법 제도에 담아내지 못하는 실정이다."
▶ 취업자격이 주어지는 비자 종류도 다양하다. 이주노동자에 불리한 취업비자는?
"이주노동자에게 불리한 취업비자를 하나로 특정하긴 어렵다. 다만 이주노동자 발목잡는 대표적인 비자는 E-9다. 해당 비자의 경우 취업에 따른 관리 감독은 고용노동부가 하되, 체류는 출입국이 관리하는 구조다. 사업장 변경에 제한을 두고 있어, 직장을 옮기려면 이주노동자가 이동 사유를 직접 입증해야 한다. 또 다른 문제는 사업주에 한정해서 이주노동자에 대한 재고용 및 재취업을 신청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는 점이다. 이주노동자들이 한국에 와서 다시 일하려면 직전 고용자였던 사업주가 직접 같이 일하겠다고 요청해야 한다. 이들의 입장에서는 사업주에게 종속된 삶을 살지 않으면 한국에서 일할 기회가 사라진다. 현대판 노예제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최근 만들어진 E7-4(숙련기능인력) 역시 사업장 변경을 과도하게 막고 있다. E7-4은 출입국에서 관리하다 보니 변경의 사유에 대한 재량은 출입국 몫이다. 출입국의 사례를 보면 철저한 사업주의 편이다. 따라서 사업장 변경이 더 어렵다."
▶ 고용노동부도 '사업장 변경제도'를 손보겠다고 하는데 현실적인 개선 방안은 무엇인가.
"정부가 사업장 변경과 관련해 손볼 의지가 있다면 근로계약을 1년 단위로 체결하는 것을 제안하고 싶다. 이주노동자들의 체류 안정화를 위해서라도 고용허가제 첫 2년간은 근로계약을 1년 단위로 체결해서 일하게 하는 것이 더 낫다. 이후 한국에서 범죄 사실이 없고, 성실하게 일했다는 점이 인정될 경우, 3년 차부터는 단계적 노동허가제를 적용하는 방법도 선택지가 될 수 있다. 이들에겐 사업장 변경을 제한하지 말고, 자유성을 주자는 의미다. 또 다른 대안은 3년을 추가 부여하는 특별고용허가제를 도입해 가족 초청 등이 가능하도록 단계적으로 확대하는 방식도 고민해 볼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이주노동자들이 좀 더 건강한 환경에서 일할 수 있게 된다. 더 나아가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불공정 구조가 점진적으로 해소될 것으로 본다. 사업장 변경의 자유화는 외국인 노동자뿐 아니라 한국 노동자에게도 중요한 문제다."
▶ 감독 권한도 부처별로 달라 법망을 빠져나갈 여지가 있다. 문제 해결 방법은?
"비전문인력을 비롯해 E7-4·E8·E9 등 이주노동자 관련 모든 취업비자에 대한 관리 감독 업무를 고용노동부에게 일임했으면 좋겠다. 이주노동자 체류 업무는 출입국이 맡는 게 맞지만, 이러한 부분들을 체계화한 다음 노동과 관련해서는 고용노동부가 관할하도록 이주노동자 정책 기준을 재정립해야 한다. 부처 간 협력이 원활하지 않다는 점도 문제다. 이민처나 이민청 등 컨트롤 타워가 출범해 관련 업무를 정확하게 분배할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져야 한다."
▶고용허가제와 노동허가제의 차이가 궁금하다. 단계적 노동허가제로 전환하면 이주노동자는 어떤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나.
"고용허가제는 사업주가 직접 나서 이주노동자를 고용하겠다고 국가에게 허락받는 제도인 반면 노동허가제는 이주노동자가 한국 정부에 일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청하는 형태다. 제도 설계에 따라 장단점이 달라진다. 다만 단계적 노동허가제를 도입하면 ILO와 UN 등 글로벌 기준에 준하는 가족 재결합 요건에 부합한다. 국제 이주노동자 권리 협약에 따르면, 가족을 포함시키고 있다. 그 이유는 노동자는 가족과 함께 살아야 하는 존재라는 의미다. 노동허가제로 전환되면 이주노동자들이 심리적으로 안정되고, 생산효과 증대도 기대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체류 기간도 연장할 수 있고, 배우자 근무도 가능해지는 만큼 전향적인 관점에서 단계적 노동허가제를 검토할 시기라고 본다."
▶ 마지막으로 이주노동자 분야 전문가로서 정부에게 강조하고 싶은 메시지는.
"이주노동자를 수단적 관점으로 보는 것이 아닌 사회적 시민으로 인정하고, 열린 시각에서 제도를 개편해주길 바란다. 특히 우리나라는 저출산, 고령화가 심각한 관계로 더는 이주노동자를 외면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영세기업들은 이들이 없으면 사업장 운영이 어렵다. 이들의 인권 보장은 더이상 외면하면 안 된다. 거시적으로는 이주노동자 노동조건을 개선해야 우리나라 국민들도 함께 잘 살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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