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장] 이주노동자 급증 문제, 흑백논리 넘어 구조적 폐단 해결해야
우리나라도 이주노동자 150만명 시대를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의 노동환경과 삶은 40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참혹합니다. 회사 사용자인 사업주가 때리고 폭언해도 피해의 당사자인 이주노동자들은 현재 고용허가제의 악습으로 인해 사업장 변경 자체가 안되는 것이 지금의 현실입니다. 본지 뉴스포스트는 이주노동자들이 한국에 들어와서 겪고 있는 업종별 차별 실태와 사회 곳곳에 뿌리 깊이 만연한 고용허가제의 문제점과 어떤 불법적인 요소가 도사리고 있는지 짚어보고자 합니다. 더 나아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에 대해 제시하고자 합니다. <편집자주>
[뉴스포스트=최종원 기자] "우리나라도 WFP(유엔세계식량계획)의 식량지원을 1960년대부터 80년대까지 20년 간 받았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최초로 지원을 받는 나라에서 지원을 하는 공여국로 성장했습니다." (임형준 전 WFP 한국사무소장)
8월 중순부터 9월 하순인 지금까지 [고용허가제 논란] 관련 13편의 기사를 통해 이주노동자 급증과 관련된 여러 구조적 폐단을 지적했다. 내국인이 기피하는 고된 일자리를 이주노동자가 대체해 저임금 구조가 고착화되고, 고용허가제(E-9)의 사업자 변경 제한·재입국 조항이 이주노동자의 미등록 체류 가능성을 높인다는 게 주요 내용이었다.
성과는 있었다. 정부는 E-9 이주노동자의 출국 후 재입국 의무를 없애고 최대 9년 8개월까지 우리나라에서 일할 수 있도록 제도를 손보기로 했다. 고용노동부는 지난 9일 이같은 외국인 고용법 개정 방향을 공식 발표하며 향후 3년 단위 근로계약을 갱신해 곧바로 연장이 가능하도록 조치하겠다고 밝혔다.
제도가 잘 안착되면 사업주 입장에서도 E-9 이주노동자들의 출국 후 재입국에 따른 공백을 메울 수 있고, 이주노동자는 최대 체류 기간이 연장돼 미등록 체류 리스크를 줄일 수 있게 된다. 사업주·이주노동자 모두 윈윈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진다.
그렇다면 사업주와 이주노동자가 아닌 일반 시민들에게도 일련의 상황이 긍정적일까. 사업주들이 저임금의 이주노동자를 선호해 한국인의 설 자리가 줄어들고, 평균 임금도 낮아져 한국인 입장에선 그리 달갑지 않을 수 있다.
일부는 이주노동자들이 우리의 일자리를 빼앗고, 미개한 문화를 들여오며, 안전까지 위협하므로 한국에서 쫓아내야 한다는 항변도 이어가고 있다. 이같은 주장은 특히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연일 강도 높은 불법 이민자 추방 정책을 펼치면서 더욱 힘을 얻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 제조업 현장은 이주노동자 없이 더 이상 돌아갈 수 없다. 역사적으로 따져봤을 때 우리도 파독광부와 간호사 파견이 없었으면 '한강의 기적'을 이루기 어려웠을 것이며, 최근 미국 조지아 주 배터리 공장에선 우리 국민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
광부·간호사가 일군 '한강의 기적'…이주노동자도 그 역할 가능하다
6.25전쟁으로 전 국토가 황폐화되고, 석유 한방울 나지 않는 자원빈국이었던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유례가 없을 정도의 경제 성장을 이뤘다. 경제개발 5개년 계획과 중화학공업 육성, 정보기술(IT) 인재 양성, 최근에는 인공지능(AI) 3강 도약을 꿈꾸면서 지난해 기준 1인당 국민총소득(GNI)이 3만6745달러(약 5149만원)로 6.25 전쟁 당시인 67달러(약 9만3880원)보다 약 548배 증가했다.
주역으로 1960년대부터 독일로 건너가 외화를 벌었던 파독광부·간호사를 빠뜨릴 수 없다. 그들은 독일의 '라인강의 기적'을 대한민국의 '한강의 기적'으로 만드는 데 크게 공헌했다. 독일로부터 1억 5000만 마르크(당시 3000만 달러)의 차관을 들여오는 대신 광부, 간호 인력 등 육체노동이 필요한 기피 일자리에 한국인들이 파견됐다.
광부로 선발된 인원은 1963년부터 1977년까지 약 8000여명으로 추정된다. 통풍도 잘 안되고 어두운 지하 1000m 이하에서 중노동에 시달린 데다 언어 소통이 잘 안돼 현장에선 여러 차별도 겪었다. 그럼에도 매월 한국 공무원 월급의 7~8배에 달하는 600마르크~700마르크를 받고 대부분을 한국에 송금했다.
간호사·간호조무사도 1만명 이상이 파견돼 교대 근무와 과중한 업무량으로 신체·정신적 고초를 겪었다. 역시 월 600~700마르크의 임금을 받으면서 본국에 송금했다. 광부와 간호사들이 한국으로 보내는 송금은 한때 한국 GNP의 2%까지 차지할 정도로 외화 유치와 경제 성장에 큰 힘을 보탠 것으로 전해진다.
우리나라는 그동안 수원국에서 공여국으로 전환된 세계 최초의 국가가 돼 이주노동자들을 받는 처지가 됐다. 파독광부·간호사의 처지를 생각하면, 이들 또한 본국에 '한강의 기적'을 심어줄 수 있는 소중한 인재다. 단순노무 인력이라고 막 대할 수 없는 노릇이다.
실제로 한국에 노동자를 보내는 필리핀·베트남·네팔·우즈베키스탄·카자흐스탄·인도네시아·방글라데시 등 국가는 '한강의 기적'을 벤치마킹해 성공적인 산업화를 이뤄내겠다는 의사를 밝힌 바 있다. 네팔의 경우 이주노동자들이 보내는 송금액이 GDP의 약 25~30%로 알려져 경제 성장의 주춧돌이 되고 있다.
美 조지아 파견 한국인 구금…이주노동자 없이는 현장 업무 난항
지난 4일(현지 시간) 미국 이민세관단속국(ICE)이 조지아주 현대자동차그룹-LG에너지솔루션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 배터리 공장 건설에서 일하는 한국인 300여명을 구금한 사건은 국민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 줬다.
미 당국은 단기 출장(B1)·ESTA(전자여행허가)로 미국에 입국해 취업하는 것은 불법이라고 단속 취지를 밝혔지만, 파견 기업들은 취업비자 발급에 비용과 시간이 많이 들고 심사 기준이 까다로워 신속한 공장 건설을 위해 어쩔 수 없었다는 입장이다.
특히 미국 내 숙련 인력 부족으로 미국인 채용만으로는 설비 세팅이 사실상 불가능해 미국의 이주노동자에 대한 의존도를 보여준 사례가 됐다. 이같은 문제는 우리나라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조선소를 포함한 노동집약적 산업은 더 이상 국내 인력만으로는 공장을 가동할 수 없다.
조선업의 경우 납기에 맞춰 선박을 공급해야 하는데, 현재 친환경 선박을 중심으로 대형 수주가 이어지면서 일감이 계속 쌓이고 있다. 조선사들은 납기를 맞추기 위해 용접, 도장, 전기 등 숙련기능인력(E-7-4) 이주노동자를 대거 유입시켰다. 많게는 전체 인원의 50%까지 이주노동자를 채용하고 있다.
이 일자리를 단순히 국내 인력으로 대체할 수 없는 것이 E-7-4 이주노동자들의 기준 연봉은 2600만원 가량에 불과하고, 농축산·어업의 경우 2500만원으로 더 낮은 편이다. 한국인이 기피하는 저임금 일자리이기에 이들이 없으면 일선 현장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HMGMA 공장 건설 협력업체 임금 수준도 대부분 주정부 임금 가이드라인을 밑도는 것으로 전해졌다. 상당수의 미국 내 한국 노동자들도 비슷한 처지에 놓여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우리나라 국민들도 겪고 있는 현실인 것이다.
조지아 주 한국인 인권유린…국내 이주노동자도 동병상련
구금 사태의 본질에는 미 당국의 인권 유린도 자리하고 있다. 미 당국이 미란다 원칙을 제대로 고지하지 않고 수갑과 쇠사슬을 채워 수용 시설로 강제 연행했다는 증언이 제기됐다. 또 죄수처럼 죄수복을 입고 머그샷을 찍었으며, 화장실은 일반 감옥처럼 공개된 형태였고 음식이나 식수가 매우 열악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이들은 구금된 지 일주일이 지난 11일(현지 시간) 전세기를 타고 귀국한 가운데, 외교부는 구금 당시 인권침해 사례 전수조사를 거쳐 필요하면 미국에 정식으로 문제 제기하겠다고 발표했다. 국민들도 공항에서 규탄 시위를 통해 부당함을 알렸다.
국내 현장에서도 이주노동자에 대한 인권 유린이 자행되고 있다. 스리랑카 출신의 근로자 A 씨가 올해 초 비닐로 온몸을 휘감아 결박당한 채 전남 나주 한 벽돌 공장에서 지게차로 들어올려졌다. 이재명 대통령이 페이스북에 관련 영상을 게시한 뒤 "눈을 의심했다"고 말할 정도다.
이외에도 올해 2월 고용허가제로 돼지농장에서 일하던 네팔 노동자가 사업주와 관리자에 의한 지속적인 괴롭힘으로 인해 자살했고, 지난 7월에는 경북 구미 건설현장에서 20대 베트남 노동자가 혹서기 단축 근무를 적용받지 못하고 일하다가 폭염 속에서 목숨을 잃은 채 발견됐다. 이런 끔찍한 사건들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이주노동자 '노동력' 넘어 '우리의 이웃'으로 인식해야
문제 해결을 위해선 이주노동자의 인권 보장도 중요하지만, 본질은 이주노동자들 값싼 노동력으로만 인식해 고용주 이익을 대변하는 폐해를 개선해야 한다. 고용노동부는 E-9의 재입국 의무를 없애기로 했지만 사업장·지역 이동을 제한하고, 가족 동반과 정주화를 허용하지 않는 문제는 아직 해결하지 못했다.
이용우 국회의원은 <뉴스포스트>와의 통화에서 "근로허가제는 노동허가제의 방향으로 외국인·이주노동자 정책을 전환시킬 필요성이 있고 이 과정에서 사업장 변경 요건을 완화하고, 인권침해나 산업안전법령을 미준수한 사용자의 이주노동자 고용을 엄격히 제한하며, 이주노동자 안전보건교육 강화 및 외국어 지원, 한국어 교육, 주거 요건 강화 등 특화적 지원 및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측은 단순 저임금 일자리를 이주노동자로 대체할 것이 아니라 깎인 임금을 정상화하고, 한국인 채용도 늘리는 상생에 동참해야 한다. 조선소 현장에선 기능인력 이주노동자의 업무 역량이 떨어지고 의사소통이 어려워 조선업 경쟁력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를 쏟아내고 있다. 정부도 조선업 발전을 위해 한국인 채용 시 세액공제 등 혜택을 검토해야 한다.
인구절벽 문제 해소를 위해 이주노동자의 안정적인 국내 정착도 필요하다. 하지만 이들이 사는 곳은 기피지역으로 인식돼 교육·주거·의료 등 복지를 제대로 누리지 못한다. 더 큰 문제는 이들의 자녀가 한국어 교육을 잘 받고 좋은 대학을 나와도 대기업 사원이나 주재원으로 취업하기 훨씬 어려운 구조적 폐단이 자리하고 있다는 점이다.
구조적 문제 해결을 위해선 제도 개선은 물론, 인식 개선도 필요하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12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진행된 주한외교단 만찬에서 "거창한 구호보다 바로 우리 옆에 살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에 대해 차가운 시선을 거두고 편견을 없애는 것이 우리 대한민국의 국격을 높이는 길이라 생각한다"며 "차별이나 폭력, 인권침해 행위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대응해 나갈 것을 약속드린다"고 강조한 바 있다.
이주노동자들의 첫 인상은 언어가 잘 통하지 않아 무뚝뚝해 보이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먼저 말을 걸고 모국 언어로 인사하면 웃음으로 화답하는 이들도 많았다. 어떤 이들은 조금 서투르지만 진심 어린 감사 인사를 보냈다. 인류애를 기반으로 그들을 우리의 이웃으로 인식한다면 그들이 겪는 문제에도 공감할 수 있지 않을까.
- 고려인 이주노동자 '우리 동포'라는데…국내 정착 어려운 이유 [고용허가제 논란 ⑫]
- "무너져가는 제조업 살려놨더니"…이주노동자를 대하는 구미 산업단지의 이중성 [고용허가제 논란 ⑪]
- 건설업계, 미등록체류자 때문에 고심…안전·시공·일자리까지 위협 [고용허가제 논란 ⑩]
- '무국적자' 로힝야족을 위한 나라는 없다 [고용허가제 논란 ⑨]
- 지역특화형 비자로 이주노동자 늘리면 지역 경기 살아날까? [고용허가제 논란⑧]
- "명의 도용으로 대포차까지 떠안아"…난민 거부 당한 이주노동자의 힘겨운 퇴근길 [고용허가제 논란 ⑦]
- 조선업 인력난이라는데…한국인 안뽑고 이주노동자 유입하는 속내 [고용허가제 논란 ⑥]
- [단독] 여수 석화단지 이주노동자 '제로'…2차 하청·어업 강제노동에 몰렸다
- "미얀마 민주화 운동 참여했다고 군부 독재 국가로 돌아가라구요?" [고용허가제 논란 ④]
- 생존 위한 이주노동자의 외침…이제는 행정·제도로 응답해야 [고용허가제 논란 ③]
- 신자유주의가 짓밟은 '이주노동자' 인권…"단계적 노동허가제로 바꿔야" [고용허가제 논란 ②]
- 이주노동자 150만명 시대…그들에게 드리워진 '불법의 그림자' [고용허가제 논란 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