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미얀마인들, 고용허가제 때문에 본국 송환 될 위기
난민으로 인정될 확률 높지만 길어지는 심사가 최대 장벽
E-9 미얀마인 2만8596명 …4년 10개월 경과 시 귀국해야
불법 체류자 단속 강화로 송환될 우려…귀국 시 처벌 위험
"군부가 민주화 시위 참여하는 부평 미얀마인 SNS로 감시"

우리나라도 이주노동자 150만명 시대를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의 노동환경과 삶은 40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참혹합니다. 회사 사용자인 사업주가 때리고 폭언해도 피해의 당사자인 이주노동자들은 현재 고용허가제의 악습으로 인해 사업장 변경 자체가 안되는 것이 지금의 현실입니다. 본지 뉴스포스트는 이주노동자들이 한국에 들어와서 겪고 있는 업종별 차별 실태와 사회 곳곳에 뿌리 깊이 만연한 고용허가제의 문제점과 어떤 불법적인 요소가 도사리고 있는지 짚어보고자 합니다. 더 나아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에 대해 제시하고자 합니다. <편집자주>

문재인 대통령이 2019년 9월 3일(현지시간) 미얀마 수도 네피도에 위치한 대통령궁에서 아웅산 수치(Aung San Suu Kyi) 전 국가고문과 정상회담 전 악수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문재인 대통령이 2019년 9월 3일(현지시간) 미얀마 수도 네피도에 위치한 대통령궁에서 아웅산 수치(Aung San Suu Kyi) 전 국가고문과 정상회담 전 악수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뉴스포스트=최종원 기자] "한국전쟁 당시 미얀마가 지원한 5만 달러 규모의 쌀은 전쟁으로 고통받던 한국 국민들에게 따뜻한 마음으로 다가왔습니다. 고마운 마음을 '딴요진'(정을 뜻하는 미얀마어)으로 보답하려 합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2019년 9월 3일 동남아 3개국 순방 중 아웅산 수치 전 미얀마 국가고문과의 정상회담 자리에서 이같이 밝혔다. 6·25전쟁 당시 우리나라의 1인당 국민총소득(GNI)는 67달러에 불과했는데, 당시 미얀마가 지원한 5만달러 규모의 쌀을 현재 가치로 환산하면 약 2733만1000달러(약 380억원)에 달하는 적지 않은 금액이다. 

우리나라는 그동안 수원국에서 공여국으로 전환된 세계 최초의 국가가 됐지만, 미얀마는 군부의 탄압과 경제 실정으로 오랫동안 질곡의 시간을 보냈다. 2010년 총선 실시 이후 민주주의가 정착되는 듯 했지만, 2021년 2월 1일 군부 세력의 쿠데타로 다시 독재 국가로 회귀했다.

2021년 2월 16일 미얀마 양곤에서 군사 쿠데타 반대 시위대가 눈을 가린 채 바닥에 누워 군정 아래서의 그들의 삶은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는 것을 표현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2021년 2월 16일 미얀마 양곤에서 군사 쿠데타 반대 시위대가 눈을 가린 채 바닥에 누워 군정 아래서의 그들의 삶은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는 것을 표현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쿠데타가 발생한 지 어느덧 4년 7개월이 지난 현재, 국내 거주 미얀마인들은 언제든 본국으로 송환될 수 있다는 두려움에 처해 있다. 까다로운 난민 심사 탓에 비전문취업(E-9) 사증을 통한 고용허가제로 한국에 오는 경우가 많은데, 정주화가 허용되지 않는 데다 최대 4년 10개월의 취업활동기간이 만료되면 원칙상 귀국해서 재취업 절차를 밟아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E-9 비자 특성상 제조업·요식업·농어업 등 비숙련 노동 위주라 고용이 불안정한 데다 특히 국내에서 민주화운동에 참여한 이들은 귀국 시 위험한 처지에 놓일 수 있어 인권 문제도 우려되는 실정이다. 


부평역 5번 근처 미얀마거리, 내국인 발걸음 뜸하고 소비 여력 줄어


부평역 5번 출구 근처 미얀마거리. (사진=뉴스포스트 최종원 기자)
부평역 5번 출구 근처 미얀마거리. (사진=뉴스포스트 최종원 기자)

미얀마 이주노동자들의 실태를 확인하기 위해 지난 1일 오후 인천 부평역 5번 출구 근처 미얀마거리를 방문했다. 해당 거리는 미얀마 식당, 식료품 가게, 기숙사, 전법사원 등 미얀마인들이 거주 및 교류하는 곳으로, 2015~2018년 재정착 난민 수용 시범사업에서 미얀마 출신 난민 112명 전원이 부평 근처에 거주하면서 형성됐다.

1일 오후 한산한 미얀마 식당. (사진=뉴스포스트 최종원 기자)
1일 오후 한산한 미얀마 식당. (사진=뉴스포스트 최종원 기자)

이날 거리 분위기는 다소 한산했다. 평일이라 미얀마인 상당수가 출근한 영향도 있겠지만, 내국인은 찾아볼 수 없었고 몇몇 식당은 아예 손님이 없었다. 최근 근처 남동공단·부평 국가산단 등 제조업 침체로 고용이 지속 감소한 데다 월 200만원 전후의 저임금 고착화로 소비 여력이 줄어든 것으로 파악된다.

여기에 식당에는 한국어로 된 메뉴판이 없거나, 메뉴판이 있어도 사진이나 설명이 부족한 경우가 많아 내국인 수요를 끌어내기 어려웠다. 계산 과정에서도 메뉴판에 적힌 가격보다 비싼 가격으로 결제되는 등 불투명한 점이 있었다. 심지어 식료품점에서는 카드 결제를 지원하지 않는다며 계좌이체만 가능하다는 말이 돌아왔다.

미얀마 식당 . (사진=뉴스포스트 최종원 기자)
미얀마 식당 내부 전경. (사진=뉴스포스트 최종원 기자)

가장 사람이 많은 식당을 들어간 뒤 염소고기 커리를 주문했다. 미얀마 음악도 흘러나왔고, 한쪽에는 민주화 촉구 시위 팻말이 놓여 있었다. 식당은 미얀마인 취업문의 보루 역할도 하고 있다. 올해 5월부터 E-9 비자 소지자의 업무 범위가 주방 보조에서 재료 손질, 홀 서빙 등 음식 서비스 종사자로 확대되면서 합법적인 고용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미얀마 염소고기 커리와 반찬. 사진=뉴스포스트 최종원 기자)
미얀마 염소고기 커리와 반찬. 사진=뉴스포스트 최종원 기자)

그럼에도 내국인 수요를 이끌어내지 못할 시 거리 내 10곳 이상의 식당의 고용이 불안정할 수 있다. <미얀마마을> 식당 종업원은 "쿠데타 연도와 비교해 미얀마인 유입이 줄었고, 가족들에게 송금할 돈을 제외하면 소비여력이 많지 않다"며 "커뮤니티 역할을 하는 미얀마 식당도 발길이 줄고 있다"고 말했다.


난민 인정률 높지만 장기간 심사…임시체류에 단순노동 전전 


미얀마 식료품점. (사진=뉴스포스트 최종원 기자)
미얀마 식료품점. (사진=뉴스포스트 최종원 기자)

식당·식료품을 운영하는 미얀마인들 상당수는 초기 난민 수용 시범사업을 통해 정착한 이들이다. 우리나라의 난민 인정률은 매우 낮은 편이지만, 로힝야족 박해와 쿠데타 등 정치적 혼란 영향에 미얀마인들은 인정률이 높은 편이었다. 법무부에 따르면 난민 제도가 도입된 1994년 이래 작년까지 인정률은 2.7%였는데, 미얀마는 신청자 1629명 중 474명(29%)이 난민으로 인정받아 가장 높았다.

난민으로 인정되면 거주 비자(F-2)를 발급받아 내국인과 동일하게 교육, 취업, 기초생활보장 등을 받을 수 있다. 배우자나 미성년 자녀와 정착도 가능하다. 난민 신청자나 인도적 체류자도 임시 체류 비자(G-1)를 발급받아 신청일로부터 6개월이 지나면 별도의 취업 허가를 받아 일을 할 수 있다.

미얀마 식당 앞에 미얀마인들이 서 있는 모습. (사진=뉴스포스트 최종원 기자)
미얀마 식당 앞에 미얀마인들이 서 있는 모습. (사진=뉴스포스트 최종원 기자)

다만 난민 인정을 위한 심사 1차 단계는 평균 14개월, 이의신청 심사는 17.9개월, 행정소송은 22.4개월이 걸려 총 평균 4년 이상이 소요돼 인정받기까지의 기간이 매우 길다. 서류심사, 신원조회, 현지 면접조사 등 엄격한 수용 절차를 거쳐 국내 정착과 사회 통합 가능성 등을 평가하기 때문이다.

G-1 비자도 갱신이 가능해 이론상으로는 난민 신청이 최종 기각돼도 불복해 장기 체류를 이어갈 수 있지만, 법무부가 악용을 빌미로 비자발급을 거부할 수 있다. 또 언어 문제나 취업 업종 제한 등으로 인해 단순 노무직이나 시간제 아르바이트로 일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전해진다.

식당에서 만난 미얀마인들도 대부분 한국어를 말하지 못했다. 단순 단어를 나열하거나, 그마저도 몸짓을 섞어 하는 경우가 많았다. 

노동자 기숙사로 활용되는 미얀마노동복지센터. (사진=뉴스포스트 최종원 기자)
노동자 기숙사로 전락한 미얀마노동복지센터. (사진=뉴스포스트 최종원 기자)

난민으로 정착해도 이들을 지원할 수 있는 복지센터나 커뮤니티도 미흡한 편이었다. 기자가 방문한 미얀마노동복지센터는 미얀마 노동자들의 기숙사로 쓰였고, 외부인의 출입도 불가능했다. 밑층에 있는 식료품점 종업원은 "지금은 커뮤니티보다는 기숙사로 쓰이고 있고, 외부인 출입은 잘 안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고용허가제에 귀국 위기…민주화 시위 참여 노동자 투옥 위험


부평역 지하 상가에 마련된 미얀마인 운영 통신 대리점. (사진=뉴스포스트 최종원 기자)
부평역 지하 상가에 마련된 미얀마인 운영 통신 대리점. (사진=뉴스포스트 최종원 기자)

더 큰 문제는 고용허가제(E-9)를 통해 체류하는 경우다. 고용허가제는 내국인을 구하지 못한 국내 사업장이 정부로부터 고용허가를 받아 비전문 외국인력을 고용하는 제도다. 외국인 근로자는 최초 입국 후 4년 10개월의 취업활동기간(3년+재고용 1년 10개월)이 부여되고, 재입국 특례 고용허가 시 1회 재입국후 다시 4년 10개월 내 취업활동이 가능하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E-9 외국인 근로자 수는 27만1925만명으로, 2023년(24만7191명) 대비 9% 이상 늘었다. 이중 미얀마인은 2만8596명으로 전년(2만4160명) 대비 15%, 2022년(2만286명) 대비로는 약 30% 이상 크게 늘고 있다.

자동차에 부착된 미얀마 군부 규탄 포스터. (사진=뉴스포스트 최종원 기자)
자동차에 부착된 미얀마 군부 규탄 포스터. (사진=뉴스포스트 최종원 기자)

그런데 2021년 2월 쿠데타 이후 E-9 비자를 통해 한국에 체류 중인 미얀마인들이 곧 본국으로 돌아가야 할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 미얀마는 지난달 1일 4년 6개월 만에 국가비상사태를 해제했지만, 군사정권이 반정부 테러를 우려해 일부 지역에 계엄령을 선포하는 등 혼란이 이어지고 있다. 부정선거를 통한 군부 독재가 현실화될 수 있고, 군부 주도의 정부군과 시민 방위군·소수민족 반군은 여전히 대치 중이다.

이런 상황에서 재취업을 위해 미얀마에 입국할 때 혼란에 휘말려 투옥되거나 자칫 목숨을 잃는 인권 유린 조치가 우려되고 있다. 특히 부평 내 미얀마인들 상당수는 민 아웅 흘라잉 미얀마 군부 최고지도자를 반역자로 지칭하며, 아웅산 수치 전 국가고문을 비롯한 민주정 내각의 석방을 요구하는 민주화 시위를 진행하고 있다.

지난해 겨울 부평역 앞에서 미얀마인들이 미얀마 민주화를 촉구하는 모습. (사진=뉴스포스트 최종원 기자)
지난해 겨울 부평역 앞에서 미얀마인들이 군부를 비판하며 민주화를 촉구하는 모습. (사진=뉴스포스트 최종원 기자)

실제로 2021년 9월 부평에 미얀마 군부에 대항하는 민주 정부측 인사와 소수민족들이 모여 주 대한민국 미얀마연방공화국 대표부(NUG)를 설립한 터라 군부가 예의주시하고 있다는 전언이다. 

미얀마 불교 전법사원 승려는 "군부가 마을을 불태우고, 인터넷 금지 및 검열로 민주화 운동가들을 잡아가고 있다"며 "조용히 살면 탄압하지 않고, 시간이 꽤 지나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지고 있어 안타깝다"고 전했다.

미얀마 불교 전법사원에 달라이 라마 티베트 최고수장의 사진이 걸려 있다. (사진=뉴스포스트 최종원 기자)
미얀마 불교 전법사원에 달라이 라마 티베트 최고수장의 사진이 걸려 있다. (사진=뉴스포스트 최종원 기자)

이때문에 비자가 만료됐음에도 본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미등록 상태로 남아 있는 미얀마인들도 상당할 것으로 파악된다. 이 상황에서 불법체류자 단속을 단행해 몇몇 이들이 추방되면 국제 사회로부터 인권을 유린했다는 비판이 쏟아질 수 있는 형국이다.

법무부에선 아직까지 E-9 미얀마인들에 대한 정주화 허용이나 난민 심사 간소화 등 조치는 계획하지 않는 것으로 전해진다. 법무부 대변인실은 "입장이 정리되면 보내드리겠다"고 밝혔지만 현재까지도 답변을 전하지 않았다.

윤용진 전국금속노동조합 광주전남지회 사무국장은 "군부에서 부평 내 민주화 시위에 참여한 미얀마인 SNS를 감시하고 있고, 귀국과 동시에 가혹한 처벌을 내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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