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HD현대삼호 영암조선소 이주노동자 퇴근길 밀착 취재
거제·울산 잇는 대규모 조선 산업단지…협력사 포함 수만명 근무
자전거로 기숙사까지 출퇴근…사외식당 앞에서 설문조사 실시
난민 불인정에 행정소송 어려움…명의 도용해 대포차 구매까지
지원센터 방문 어렵고 예산 축소…"거점 운용 아닌 지역별 개소 필요"

우리나라도 이주노동자 150만명 시대를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의 노동환경과 삶은 40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참혹합니다. 회사 사용자인 사업주가 때리고 폭언해도 피해의 당사자인 이주노동자들은 현재 고용허가제의 악습으로 인해 사업장 변경 자체가 안되는 것이 지금의 현실입니다. 본지 뉴스포스트는 이주노동자들이 한국에 들어와서 겪고 있는 업종별 차별 실태와 사회 곳곳에 뿌리 깊이 만연한 고용허가제의 문제점과 어떤 불법적인 요소가 도사리고 있는지 짚어보고자 합니다. 더 나아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에 대해 제시하고자 합니다. <편집자주>

HD현대삼호 영암조선소 전경. (사진=HD현대삼호)
HD현대삼호 영암조선소 전경. (사진=HD현대삼호)

[뉴스포스트=최종원 기자] "우리나라에서 난민 인정받는 건 하늘의 별따기에요. 10%도 안됩니다. G-1 비자를 받아 난민 자격 불인정에도 거주할 순 있지만, 한계가 있습니다. 이들은 범죄에도 취약한데, 이주노동자 명의로 대포차나 대포폰을 개통해 범죄에 악용하는 경우도 존재합니다."    

4일 오후에는 전남 영암군 소재 삼호 일반 산업단지(이하 산단)를 둘러봤다. 이곳 산단에는 HD현대삼호 조선소가 위치해 있다. HD현대삼호는 호남에 본사를 둔 기업 가운데 최대 규모다. 거제에 위치한 삼성중공업·한화오션과 울산에 있는 HD현대중공업 대비 규모는 작지만 HD현대삼호의 수주잔량은 올해 1월 기준 글로벌 6위에 달해 역시 세계적인 규모를 자랑한다.

HD현대삼호 조선소에는 본사 정규직 4000여 명과 80여개에 달하는 협력업체 직원을 포함해 공식적으로 약 1만5000여명이 일하고 있다. 하지만 사외공장과 물량팀 등 사외 협력사, 그리고 협력사 내 미등록 외국인을 포함하면 훨씬 더 많은 인원이 근무 중인 것으로 파악된다.

정기선 HD현대 수석부회장이 4일 전남 영암군에 위치한 HD현대삼호 조선소를 찾아 주요 생산 설비와 고위험 작업 현장을 직접 둘러보고 있다. (사진=HD현대)
정기선 HD현대 수석부회장이 4일 전남 영암군에 위치한 HD현대삼호 조선소를 찾아 주요 생산 설비와 고위험 작업 현장을 직접 둘러보고 있다. (사진=HD현대)

조선소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들은 대개 E-7-3(일반기능인력), E-7-4(숙련기능인력), E-9(고용허가제) 비자를 받아 입국한다. 소수는 난민 자격을 인정 받아 거주(F-2) 비자로 한국에 정착하거나, 난민 자격 취득을 위한 체류 목적으로 G-1 비자를 받아 정착한다.

올해 E-9 인원은 총 13만명으로 이중 조선업은 2500여명의 쿼터를 받았지만, 예상치 못한 상황 변화에 탄력 대응을 위한 '탄력배정분'이 3만2000명에 달하는데 이중 상당수가 인력난을 호소하는 조선소에 유입될 수 있다. 무엇보다 주력은 기능인력으로, 올해 E-7-4 상한은 3만5000명에 달하고 E-7-3은 시범 도입 단계라 상한이 따로 정해져 있지 않다.

법무부는 조선업 E-7 비자 쿼터 비중을 업체당 20%에서 30%로 올리며 힘을 실어줬고, 다른 비자와 합쳐 계산되던 것을 각 비자별로 산정하도록 하면서 더 많이 고용할 수 있도록 했다. 이들과 주로 사외에서 근무하는 미등록 외국인 근로자들을 모두 포함하면 단지 내 최소 수천명, 많게는 1만명 이상의 이주노동자가 일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수천명 자전거 퇴근 행렬…설문조사 참여에 적극적


영암조선소 이주노동자들의 퇴근길. (영상=뉴스포스트 최종원 기자)
영암조선소 이주노동자들의 퇴근길. (영상=뉴스포스트 최종원 기자)

이주노동자 규모와 실태 확인을 위해 삼호 산단을 직접 찾았다. 1차 퇴근 시각인 오후 5시를 갓 넘기자 퇴근하는 이주노동자들의 자전거 행렬로 도로가 북새통을 이뤘다. 이들은 산단 주변에 위치한 삼호아파트 기숙사에 주로 거주하는데, 접근성과 비용을 고려해 자동차보단 자전거를 훨씬 많이 이용했다.

사외 기숙사식당과 아파트 기숙사로 향하는 이주노동자들. (영상=뉴스포스트 최종원 기자)
사외 기숙사식당과 아파트 기숙사로 향하는 이주노동자들. (영상=뉴스포스트 최종원 기자)

이날은 아파트 입구에 위치한 사외 기숙사식당 앞에서 금속노조 주도로 이주노동자 설문 조사를 진행했다. 이주노동자의 다양한 국적을 고려해 베트남어, 스리랑카어, 인도네시아어, 캄보디아어, 타갈로그어, 우즈베키스탄어, 러시아어, 태국어, 네팔어, 영어를 지원했고 해당 언어들의 안내책자도 같이 배부했다.

처음에는 설문에 참여하는 이주노동자들이 많지 않았으나, 조합원들이 식당에 들어가는 이주노동자들에게 "웨어 아 유 프롬" "베트남? 아 최고 최고"라며 친근하게 말을 붙이자 조금씩 참여하기 시작했다. 조합원들은 개개인에게 국적을 물어보고, 참여하면 파우치 및 필수 의약품이 들어 있는 구급키트와 팔 토시를 선물로 준다며 참여를 독려했다.

조합원들이 이주노동자들의 설문 참여를 독려하고 있다. (사진=뉴스포스트 최종원 기자)
조합원들이 이주노동자들의 설문 참여를 독려하고 있다. (사진=뉴스포스트 최종원 기자)

이주노동자들은 편의점 앞 테이블이나 계단, 혹은 땅바닥에 앉아 설문조사지를 작성했다. 이들을 보고 다른 이주노동들도 따라서 참여하기 시작했고, 선물까지 준다는 말에 식당 앞에 더 많은 사람들이 몰렸다. 18시 본격적인 퇴근 시간이 다가오자 더욱 북새통을 이뤘고, 18시 반에 1000명 이상의 표본을 확보하며 설문조사를 마쳤다.

설문 조사에 참여하고 있는 이주노동자들. (사진=뉴스포스트 최종원 기자)
설문 조사에 참여하고 있는 이주노동자들. (사진=뉴스포스트 최종원 기자)

이주노동자들은 설문을 마치고 계단을 내려가 기숙사 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다. 급식은 현대백화점그룹의 위탁급식 회사 현대그린푸드가 운영하며, 식권을 태그하면 이용할 수 있다. 한식과 선택식으로 나눠 식사를 제공했고, 셀프라면 코너도 따로 배치해 다양성을 높였다. 고된 일을 하고 온 터라 상당수는 밥과 반찬을 정량보다 많이 담았다.

사외 기숙사 식당에서 음식을 담고 있는 이주노동자들. (사진=뉴스포스트 최종원 기자)
사외 기숙사 식당에서 음식을 담고 있는 이주노동자들. (사진=뉴스포스트 최종원 기자)

네팔 출신의 이주노동자 프라카스 씨(23)는 "힘든 일을 하고 밥을 먹으면 뭐든지 다 맛있고, 기숙사에 가서 편히 쉬면 몸이 그나마 괜찮다"며 "일은 고되지만, 돈을 착실히 모아 고향에 돌아가 살 생각을 하면 괜찮다"고 밝혔다.


난민 불인정·명의 도용당해 대포차 비용 청구…저임금 이주노동자가 처한 현실


바닥에 앉아 설문조사에  답하고 있는 이주노동자들. (사진=뉴스포스트 최종원 기자)
바닥에 앉아 설문조사에  답하고 있는 이주노동자들. (사진=뉴스포스트 최종원 기자)

이날 취업과 정착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는 이주노동자들을 위한 즉석 상담도 진행했다. 한 노동자는 내전 중인 예멘에서 왔는데, 난민 인정을 받기 위해 G-1 비자를 받아 영암에서 정착해 살고 있었다. 마침 이날이 조선소 입사일이라 근무복은 따로 입지 않았지만, 영어로 된 설문조사에 적극 참여했다.

금속노조에 따르면 예멘 외에도 튀르키예, 이집트, 러시아 등 정치적 탄압이 심한 국가에서 난민 신청이 줄을 잇는다. 이날 만난 러시아 국적의 노동자 우추쿤 씨도 G-1 비자를 받아 법원에 난민 자격을 신청했지만, 난민 불인정 결정을 받아 90일 이내 행정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는 통지서를 받아들었다.

(사진=뉴스포스트 최종원 기자)
(사진=뉴스포스트 최종원 기자)

우추쿤 씨는 G-1 비자연장을 위해라도 행정소송을 해야 하지만, 절차가 복잡하고 한국어 소통에도 어려움을 겪어 금속노조에 도움을 요청했다. 이에 금속노조에서 공익변호사를 소개해주기로 했다. 

앞선 언급대로 우리나라의 난민 인정률은 매우 낮은 편이다. 법무부에 따르면 난민 제도가 도입된 1994년 이래 작년까지 난민 인정률은 2.7%에 불과했다. 심사 1차 단계는 평균 14개월, 이의신청 심사는 17.9개월, 행정소송은 22.4개월이 걸려 총 평균 4년 이상이 소요돼 인정받기까지의 기간도 매우 길다.

난민 신청 기각과 명의 도용 사실을 토로하는 러시아 국적의 우추쿤 씨(가운데). (사진=뉴스포스트 최종원 기자)
난민 신청 기각과 명의 도용 사실을 토로하는 러시아 국적의 우추쿤 씨(가운데). (사진=뉴스포스트 최종원 기자)

더 큰 문제는 따로 있었다. 우추쿤 씨는 자신의 신분증을 도용해 누군가 차를 샀다는 사실을 토로했다. 구인 공고에 적힌 전화번호로 연락해 신분증을 찍어 보냈는데, 이를 도용해 자신의 명의로 대포차를 구매했다는 것이다.  

대포차 10대가 등록돼 지난달 거주지로 수백만원의 통지서를 받아 근처 경찰서에 수사를 의뢰했지만, 경찰서에서도 "기다려보라"는 말만 할 뿐 범인 파악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식당 앞 줄 서 있는 이주노동자들. (사진=뉴스포스트 최종원 기자)
식당 앞 줄 서 있는 이주노동자들. (사진=뉴스포스트 최종원 기자)

명의를 도용 당한 이주노동자들이 경찰에 신고를 해도 수사나 처벌이 이뤄지긴 쉽지 않다. 경찰서에서 다양한 외국어에 맞는 통역을 구사하지 않아 피해 사실을 진술하기도 어려워, 지역 내 이주노동자 인권센터나 이주민 지원센터를 찾아 통역사와 동행해야 한다.

자신의 명의가 도용당했음에도 경찰이 현재 해줄 수 있는 게 없다는 사실은 이주노동자가 범죄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음을 보여준다. 우추쿤 씨는 "어떻게 잡야야 할지도 모르고 한국 사람이 신고하면 다 잡는데, 외국 사람이 신고하면 안 잡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사외 기숙사 식당에서 밥을 먹고 있는 이주노동자들. (사진=뉴스포스트 최종원 기자)
사외 기숙사 식당에서 밥을 먹고 있는 이주노동자들. (사진=뉴스포스트 최종원 기자)

이주노동자는 또 연장근무까지 6일을 일하는 경우가 많아 시간 내서 신고하기가 어렵고, 특히 농·어업에 근무하는 교외 지역의 이주노동자는 자신의 지역에 지원센터가 없어 여수·영암 등 지원센터가 갖춰진 곳으로 멀리 이동해야 한다. 지원센터도 정부 지원 축소로 이들에 대한 노동권 보호에 어려움을 겪는 실정이다.

지미자 여수시가족센터장은 "사업장에 문제가 있고, 임금체불 건이 있으면 이주노동자들은 언어가 잘 안되니깐 고용노동부에 같이 가서 서류를 준비해 주는 경우가 많다"며 "취약한 이주노동자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선 거점별 지원센터 운영이 아닌 각 지역별 맞춤 지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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