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상용 위원장 "이주노동자 문제는 단기·중장기적 접근이 병행돼야"
나주 벽돌 공장 사건은 이례적…국민·언론·정부 관심받는 경우 희박
사업주에 권력 쥐여주는 고용허가제 개선이 시급…교섭력이 요구돼
중소도시 위주로 행정력, 전문성·경력 받쳐줄만한 컨트롤타워 필요
"정주 개념으로 고려해야"…'동행' 대상이라는 상향 평준화 인식 구축
우리나라도 이주노동자 150만명 시대를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의 노동환경과 삶은 40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참혹합니다. 회사 사용자인 사업주가 때리고 폭언해도 피해의 당사자인 이주노동자들은 현재 고용허가제의 악습으로 인해 사업장 변경 자체가 안되는 것이 지금의 현실입니다. 본지 뉴스포스트는 이주노동자들이 한국에 들어와서 겪고 있는 업종별 차별 실태와 사회 곳곳에 뿌리 깊이 만연한 고용허가제의 문제점과 어떤 불법적인 요소가 도사리고 있는지 짚어보고자 합니다. 더 나아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에 대해 제시하고자 합니다. <편집자주>
[뉴스포스트=최문수 기자] 2010년 취업을 위해 부탄인 '방가'가 되어야 했던 영화 '방가? 방가!' 속 주인공 방태식의 고군분투는 많은 관객들에게 웃음과 함께 씁쓸한 뒷맛을 남겼다. 주연 방태식 역을 맡은 김인권 배우는 작품 속에서 이주노동자 친구들과 연대해 부당함에 맞선다.
서툰 한국말로 외치던 "사장님, 나빠요"는 단순한 유행어를 넘어 우리 사회의 부끄러운 민낯을 꼬집는다. 이 밖에도 임금체불과 여성 이주노동자를 향한 성추행 등 여러 문제를 블랙코미디로 유쾌하게 풀어냈지만, 마냥 웃을 수만은 없다.
그로부터 15년이 흐른 지금, 스크린 속 코미디는 전라남도 나주의 한 벽돌 공장에서 끔찍한 비극으로 재현됐다. 그저 월급을 떼먹는 수준이 아닌, 한 인간을 벽돌 더미에 묶은 채 지게차로 들어 올리며 깔깔거리는 영상은 모두를 놀라게 했다.
이번 일은 단순한 개인의 일탈로 치부할 수 없다. 선진국 반열에 올랐다는 자부심에도 큰 상처를 남겼다.
해당 영상이 세상에 알려지자 대국민 공분이 들끓었고, 이재명 대통령은 야만적 인권침해라고 강도 높게 비판하며 유관 부처에 이주노동자의 부당한 처우에 대한 전수 조사를 지시하기에 이르렀다. 더 이상 국가가 이 문제를 묵과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것이다.
나주 벽돌 공장 사례는 개인의 악행을 넘어 우리 사회에 만연한 이주노동자에 대한 차별과 인권 감수성 부재의 현실에 경고를 날리는 역사적 사건이다. 특히, 사업주의 허락 없이는 직장을 옮길 수 없는 고용허가제라는 제도적 족쇄는 이들이 부당한 처우, 비인류적 대우에도 저항하지 못하게 벼랑 끝으로 내몰았다.
비닐하우스와 같은 가설건축물 숙소 생활, 상습적인 임금 체불, 여성 이주노동자의 성폭행 피해, 폭행 피해로 인한 극단적인 선택, 소모품으로 여기는 뒤처진 인식 등 수면 아래 감춰져 있던 다른 문제들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로 이주노동자가 본격적으로 유입된 건 1980년대 후반이다. 40년이 넘은 현재, 하루 아침에 이들의 처우가 지금처럼 열악해졌을까.
결코 아니다. 어쩌면 우리는 지금까지 이들의 잔혹한 현실을 외면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산업별 환경이 달라서, 관련 법이 그래서, 경기가 좋지 않아서, 심지어는 우리의 일자리를 위협한다는 여러 핑계 거리를 만들면서 말이다.
결국 이렇게 이어진 외면은 악덕 사업주의 배를 불리고, 악행의 진화를 돕는 결과를 낳았다.
대통령의 전수 조사 지시는 제도 개선을 암시한다. 그러나 제도 개선에 앞서 이주노동자의 목소리에 우선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 무엇이 필요하고, 나주 벽돌 공장과 같은 사건의 본질을 파악하는 게 선행돼야 비로서 실효성 있는 정책이 탄생할 수 있으며, 그렇지 않으면 엇박자가 날 수 있다는 것이 그 이유다.
지난 7일 전라남도 광주시 북구 인근에서 <뉴스포스트>를 만난 전남이주노동자네트워크 손상용 위원장은 단기적인 차원의 행정적 지원과 더불어, 중장기적으로 제도를 수정 및 보안해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일례로, 현행법상 사업장을 찾지 못해 당장 본국으로 겨날 위기에 처한 많은 이주노동자의 체류를 한시적으로 늘려주는 행정 지원이 선행된 뒤, 각종 부당한 대우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만드는 제도적 허점을 점진적으로 개선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뉴스포스트>는 누구보다 그들의 곁을 가까이서 지켜온 손 위원장의 얘기를 좀 더 자세하게 들어봤다.
벽돌 공장 사건…'다행' 아닌 '이례적'
▶ 벽돌 공장 사건은 영상을 통해 세상에 알려져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대통령까지 직접 언급할 만큼 사회적 이슈로 떠오른 현재, 이 사건이 갖는 상징성은 무엇이라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다행이라기보다는 예외적인 사례라고 생각한다. 현장에서 폭행을 당해도 증언, 영상 등 증거가 필요한데 이주노동자 입장에서는 사실상 확보하기 어렵다. 그런데 나주 벽돌 공장 사건은 폭행을 당하는 것을 문제라고 인식해서 영상을 찍은 게 아니라, 같이 동조하면서 촬영했다. 그 이후 과정을 보면, 대국민 관심을 받고 언론에서도 사건을 많이 다뤄 정부까지 나서게 됐지만 이렇게 주목받은 경우는 매우 드물다"
"그래도 이번은 영상으로 증거가 확보됐고, 빠른 시간 내에 확산이 되면서 이주노동자 문제가 실질적으로 드러난 사례라는 점에서 시발점으로 본다. 그동안 드러나지 않았던 문제가 수면 위로 드러나게 되면서 더 이상 묵인할 수 없는 사회적 분노, 공감대, 나아가 해결책 마련 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냉정하게 말하면, 이번 사건도 외부로 공개돼서 이슈가 된 것이지 여전히 수면 아래에 남아있는 사건은 많다"
수십년이 지났지만…이주노동자 정책·현실은 제자리
▶ 이번 사건을 접하며 이주노동자의 현실을 다룬 영화 '방가? 방가!"가 떠올랐다. 영화 속에서는 임금체불, 괴롭힘, 폭행, 성추행 등 문제를 블랙코미디로 유쾌하게 풀어냈지만, 그 내면에는 쓰라린 현실이 자리하고 있다. 15년이 지난 현재 현실은 어떠한가?
"이주노동자의 정책, 현실은 크게 바뀐 게 없다. 이 영화를 언급했지만, 목포인권영화제에서 나온 섹 알 마문 감독의 '비닐하우스는 집이 아니다'도 대표적이다. 농촌 등 비닐하우스에서 거주하는 이주노동자의 현실을 다룬 내용인데 2018년 개봉했다. 꽤나 긴 시간이 흘렀지만, 안타깝게도 그대로다. 농촌의 경우 숙소 문제만 봐도 컨테이너 박스, 비닐하우스 등 간이 시설에서 생활하고 있다. 임금체불 문제, 사업장 이동 문제, 산재 문제, 보험 문제, 교육 및 통역 문제 등 전반적으로 바뀌지 않고 있으며 오히려 누적됐다"
농어촌 이주노동자, 의식주 기본도 갖춰지지 않아
▶ 현재 이주노동자는 건설, 제조 등 우리나라 산업 곳곳에 분포돼 있다. 물론 한 산업군을 뽑기 힘들겠지만, 그래도 뽑는다면 어떤 곳이 가장 열악한가?
"농어촌이 가장 심각하다. 계절 이주노동자, 계절노동자라고 부르는 이들은 한시적으로 유입된다. 양파, 고구마, 다시마, 김 등 한창 수확할 때 8개월 정도 필요하기 때문에 빠른 수확을 위한 소모품으로 여겨진다. 고용주는 고된 노동이 잇따르기에 주거 개선, 온열질환 대응 등이 요구되지만 이 모든 것을 비용이라고 인식한다. 당연한 것이 아닌 알파 요소라고 보는 것이다. 게다가 기후라는 변수에 가장 많이 노출돼 더위나 추위에 버티지 못하고 쓰러지는 이주노동자가 태반이다"
"고용허가제는 사업주에 막강한 권력을 쥐여줬다"
▶ 현행 고용허가제(E-9) 속에서 가장 큰 구조적인 문제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그리고 이 문제들이 나주 벽돌 공장 사건에도 영향을 가해졌는지?
"고용허가제에 대한 비판은 여러가지가 있다. 약 20년 간 지적됐고, 입법까지도 검토가 됐지만 윤석열 정부 때 후퇴했다. 이주노동자는 수도권, 충청권, 전라·제주권 등 5개로 묶인 권역과 특정 업종 내에서만 사업장을 옮겨야 하는 상황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이주노동자가 본국으로 쫓겨나면 돈을 안 줘도 된다는 문제도 드러났지만, 법무부는 제자리걸음이다. 문제의식은 갖고 있지만 공무원들이 수동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고용허가제의 가장 큰 문제는 사업주에 막강한 권력을 쥐여주는 것이다. 이주노동자가 해당 사업장에서 폭행, 폭언, 괴롭힘 등 부당행위를 당해도 직접 입증하지 못하고, 사업주의 동의가 없으면 벗어날 수 없다. 그러다 보니 사업주는 당연하다는 듯이 이주노동자를 부려먹는 행태가 벌어지고 있다. 외부에서 볼 때는 외국인을 많이 고용하니 기업의 이미지가 좋아지겠지만, 내부에서는 아무도 사업주를 거스를 수 없어 상왕인 것이다"
"전 정부에서 5개 권역 내에서만 사업장 변경이 가능하도록 만들어놓은 점도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과제다. 경기가 좋을 때는 문제되지 않겠지만, 지금처럼 경제 고용에 한파가 찾아오면 특히 지방에서는 일자리를 찾기 어렵다. 제조업 기반이 넓지 않아 하늘의 별 따기 수준이다. 또한, 3개월 내에 새로운 직장을 찾이 못하면 미등록 상태가 된다. 불법체류자가 되면 무조건 본국으로 다시 돌아가야 하는 실정이다"
산재처리는 불가능 수준…女이주노동자 '性문제'도 심각
▶ 사업장 변경 3회 제한, 윤석열 정부 이후 추가된 지역 간 이동 금지, 직업 선택의 한계, 거주 이전 불가 등 이주노동자의 인권 침해로 이어지는 사례를 알려달라.
"우리나라 사람들도 회사에서 일하다가 다쳤을 때 산재처리를 받는 게 쉽지 않은데, 이주노동자에게는 얼마나 어렵겠냐. 다치면 산재 적용이 된다고 생각하지만, 이들 입장에서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다친 기간 동안 임금 손실에 대한 문제까지 겹치면 고통의 시작이라고 본다"
"또 다른 사례는 여성 이주노동자의 성추행 문제가 최근 불거지고 있다. 아직 공개적으로 드러나지 않았지만 사업주가 친근하다는 이유로, 회식에서 챙겨준다는 이유로, 숙소를 관리해 주겠다는 이유로 피해가 생겨나고 있다. 그런데 사업주가 이들의 언어 소통을 문제 삼아 '내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라고 주장하면 피해 사실을 입증하기 어렵다. 이번 벽돌 공장 사건만 봐도 유관 기관의 제도가 없는 건 아니지만, 우리나라 사람조차도 알기 어렵고, 이해하기도 어려운 제도를 이주노동자가 어떻게 알겠냐"
단순 '인력' 아닌 '정주' 개념으로 접근
▶ 고용노동부, 법무부, 출입국관리사무소 등 이주노동자와 관련한 정부 부처의 행정 시스템은 현장에서 어떤 한계를 보이고 있는지 설명해달라.
"제도의 결함을 얘기하기 전에 인식의 문제부터 얘기하고 싶다. 우선, 대한민국 사회와 정부는 이주노동자에 대한 시각이 여전히 옛날에 머물고 있다. 고용허가제를 도입하고 지금까지의 과정을 보면, 3D 등 우리나라 사람들이 기피하는 업종의 노동력이 필요해 이주노동자를 유입하고 있지만, 이들의 전문성과 숙련도를 높여 중장기적으로 받아들이려는 생각보다는 소모품의 개념에 가깝다"
"제도적 부분에서 본다면 현재 고용허가제를 개선하는 것이 대두되고 있지만, 전반적으로는 이주노동자 정책, 이주민 정책, 이민 정책이 같이 바뀌어야 할 거 같다. 우리나라가 여성 이주노동자에 대해서는 정주 개념에서 고민을 한다. 한국으로 데려와 미혼 남성의 결혼을 위해 이주를 시키고, 그다음 2세를 낳게 하고, 정착을 위해 언어 및 문화 교육을 시킨다. 그런데 남성의 경우 정착 개념 없이, 3년 일하고 보내고 새로운 이주노동자를 유입하는 식이다. 그러다 보니 여성 이주노동자와 다르게 기타 교육 지원이 없다"
'사업장 이동 불가 → 미등록 상태로 이탈 → 사업주 신고' 반복
▶ 농축산업, 제조업, 건설업, 조선업 등 지역 산업구조가 이주노동자의 권익에 미치는 영향이 다른지 궁금하다. 구체적인 차이에 대해 얘기해달라.
"나주 벽돌 공장 사건과 유사한 사례를 살펴보면 고용허가제 내에서 사업장 변경이 안 되어 이탈을 하고 미등록 상태에서 수도권으로 이탈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아니면 단속을 피하다가 신체적 부상을 당하거나, 어떻게든 사업장을 찾아 들어가도 불법체류자라는 사실을 고용주가 알기에 일을 시키고 돈을 안 주는 상황으로 치닫는다. 이주노동자가 항의하면 신고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처우가 더 낙후된 다시마, 김, 염전 등의 경우, 농축산업에 종사하는 계절이주노동자는 단기간으로 일해야 하기에 고용주의 선의로만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발생한다. 폭염과 한파로 인한 강도 높은 노동이 불가피하고 열악한 주거환경에 놓이게 되고, 그러다가 벼랑 끝으로 내몰리면 그나마 갈 수 있는 현장은 건설 현장, 어업 현장, 아니면 선원이 되는 것이다"
중소도시의 행정력 문제…"이주노동자 유입에 급급"
▶ 나주, 익산, 밀양 등 지방에서는 이주노동자 문제가 어떤 특수성을 가지고 있나. 서울 및 수도권과 권익 보장 여부가 다르다고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중소도시 즉, 시·군을 담당하고 있는 공무원의 업무 전문성, 경력 등 행정력이 뒷받침되고 있느냐를 묻고 싶다. 실제로 시·군에서 이주노동자 업무를 책임지는 인력은 2~3명이 전부인데, 이들이 1000명 이상 이주노동자를 관리할 수 있냐는 것이다. 고용주를 모집하면 교육을 해야 하고, 이주노동자를 데려와야 하고, 데려와야 하는 나라에서 홍보를 해야 하고, 매칭을 해야 하고, 실태 파악도 해야 하고, 문제가 생기면 대책도 마련해야 한다. 그런데 행정력이 충분하지 않은 상태에서 인력만 유입하다 보면 물리적으로 제대로 될 수가 없다"
"이렇게 공무원들이 업무 과중에 내몰리게 되니, 수동적으로 바뀌게 됐다. 직접 다른 나라에 가서 현지 상황을 파악하고 홍보를 실시하는 등 객관적이고 투명성 있게 진행해야 하지만, 현실적으로 불가하기 때문에 속도전으로 민간에 맡겨버린다. 매년 계절 이주노동자를 시기에 맞춰 데리고 와야 하는데, 그 업무만 하는 게 아니다 보니 악순환이 생겨나는 것이다"
"다른 문제는 계절이주노동자 데리고 오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브로커다. 각국에서 이주노동자를 데려오기 위해 홍보를 해야 하는데, 부족한 시·군 공무원이 직접 갈 수가 없어 현지 우리나라 네트워크를 이용하게 된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 공짜로 홍보를 하겠냐. 당연히 돈을 요구하게 되고, 점차 부패하게 된다. 대표적으로 각국에 있는 여행사 직원, 어학원 등이 이 브로커를 자처한다"
권익 보호 하려면 '컨트롤타워 시스템' 받쳐줘야
▶ 이주노동자가 각자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마련된 신고 및 구제 시스템이 실효성 있게 작동하고 있다고 보는지?
"없는 건 아니지만 실효성은 떨어진다. 첫 번째가 통역 문제다. 두 번째는 익명 보장성이다. 컨트롤타워가 관리하는 통합적 시스템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113을 눌렀으면 전화를 받는 사람이 이름, 국적, 비자, 문의 사항, 익명 요구 여부 등 종합적으로 판단한 뒤 각 관할 부서에 업무를 이관하는 방식이 유용하다고 본다. 우리도 114에 전화해 관련 업무를 편하게 물어보는 것과 같은 개념이다. 시·군 단위에서 불가하면 광역자치단체가 한 곳으로 통합하는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으면 좋겠다"
이주노동자는 '동행'의 대상…상향평준화 접근 필요
▶ 우리나라는 저출산을 시작으로 인구 절벽이 예견돼 있다. 이러한 이유로 이주노동자는 동행해야 할 존재라는 의견이 나온다. 이에 대해 시민단체는 어떻게 바라보는지, 그리고 나아가 우리나라 산업 전반의 지속성에 문제가 없다고 보나.
"전라도나 경상북도는 인구 절벽이 이미 시작됐다. 인구가 감소하는 상황에서 생산력을 유지할 노동력이 필요한 건 부정할 수 없다. 이러한 측면에서 중장기적으로 이주노동자에 대해서 앞으로 정착과 정주가 가능하게끔 전문성, 숙련도를 높이고, 교육문화 지원 등 거시적인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현재 취업난도 이어지고 있는데, 일각에서 '이주노동자 때문에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다'라는 지적도 있다. 그런데 이건 하향 평준화라고 본다. 조선업은 호황이라고 하는데 한국 노동자의 비율은 낮고 이주노동자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다. 그 말은 고강도, 적정한 급여 수준, 안전 문화 등이 열악해 우리나라 노동자가 기피하는 것인데, 이주노동자도 이 사실을 모르지 않는다. 어쩌면 그 공백을 메우고 있는 이들의 이탈을 막기 위해 안전하고 건강한 환경, 적절한 대우 등 상향 평준화를 통해 현실적인 부분을 개선하고 제도를 성장시켜야 한다"
단기·중장기 접근법도 병행돼야
▶ 제도, 행정 운영, 지역사회 인식, 산업구조 등 거시적인 측면에서 개선이 가장 시급한 부분은 무엇인가. 노동허가제 전환, 사업장 이동 자유화 보장 등 향후 이주노동자 정책이 나아가야 할 방향은?
"단기적, 그리고 장기적인 차원에서 바라봐야 한다. 예를 들면, 8·15 특사와 같은 혜택이 이주노동자에게도 적용됐으면 좋겠다. 불법 단속을 통해 적발된 이들을 본국으로 송환할 거냐, 그렇지 않다고 하면 지금 시점에서는 미등록 이주노동자 문제도 특사 개념처럼 도입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래야 다시 등록된 상태에서 건설이든, 어업이든 우리나라 산업을 뒷받침할 수 있게 된다"
"또 한 가지는 실태 파악이다. 그리고 고용주에 대한 노동법 교육, 이주 인권 교육 등도 포함된다. 나주 벽돌 공장 사건, 돼지 축사 사건이 벌어지는 환경이 어떤지, 이주노동자의 숙소가 왜 공장식 축사처럼 조성되는지를 확인부터 해야 권고 방안이나 해결책이 나오지 않겠냐. 나아가 가장 열악한 계절근로자부터, 조선업, 건설업, 선원 등 고용도 중요하지만 가장 인간이 기본적으로 누려야 할 의식주 부분에서 접근해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제도 개선이다. 노동자와 고용주 간 상호 평등 관계가 만들어져야 한다. 노동조합이 없어도 이들 사이의 의견, 발언 등이 동등해야지 고용주의 제안에 동의하고 일을 하게 될 것이다. 적어도 부당하다는 것을 부당하다고 말할 수 있는 권리라도 있어야 한다. 그런데 고용허가제의 사업장 변경권은 교섭력이 없다. 일방적으로 사업주가 우위를 점한다. 고용주 입장에서는 이 권한을 놓고 싶지 않을 것이다. 지금보다 더 많은 급여, 주거 개선 등 비용이 발생해서다"
"최근 미국 관세국경보호청(CBP)이 태평염전에서 생산된 천일염에 대해 수입보류명령(WRO)를 내리는 일이 발생했다. 신안 염전의 노동자 인권에 대한 문제가 불거진 것이다. 국제 기준은 더 이상 그 나라에서 생되는 물품만 보지 않고, 노동관계도 본다는 의미다. 이 흐름에 맞는 건강한 노사 관계를 구축해야 한다"
전남이주노동자네트워크, 제도 개선을 위해 목소리 높일 것
▶ 끝으로, 이주노동자네트워크가 중장기적으로 추진 중인 대응 전략과 지향점이 있다면 얘기해달라.
"대통령 말 한마디가 갖는 무게감은 상당하다. 그동안 이주노동자에 대한 인권 침해, 불합리한 점을 짚어보는 계기가 됐다. 이해 당사자의 의견을 수렴해야 과정도 필요하고, 제도 개선까지 시간이 걸린다. 그렇다면 없는 제도를 새롭게 만들기보다는 불필요한 것은 축소하고 필요한 것은 늘리는 등 결단이 필요하다. 시민단체를 비롯한 여러 기관이 정책 및 제도 개선에 의견을 내세워야 한다"
"현재 이주노동자의 건강, 특히 자살 문제와 여성 이주노동자의 성폭력 문제가 잠재돼 있는 상황이다. 지금은 드러나지 않고, 실제로 드러나기 어려운 구조다. 그래서 우리는 나주 벽돌 공장 사건처럼 이 문제를 어떻게 드러내고 사회적 관심을 높일 것이냐에 대한 고민이 시급하다. 극단적인 선택으로 이어지지 않게, 여성 이주노동자의 성 문제가 나아지게 하는 것이 전남이주노동자네트워크의 최우선적인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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