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취재] 구미 국가산업단지 내 이주노동자 근로 실태 추적
구미산단 수출 증가세에 인력난…제조업 중심의 일자리 늘어
내국인들 3D 업종 기피현상 심화…E-9 인력으로 간신히 메워
산업단지 내 '이주노동자 차별' 낮아…산재 적용엔 취약한 구조
구미 일대 '농축산업종' 차별 심각…미등록체류자 '강제추방' 악용

우리나라도 이주노동자 150만명 시대를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의 노동환경과 삶은 40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참혹합니다. 회사 사용자인 사업주가 때리고 폭언해도 피해의 당사자인 이주노동자들은 현재 고용허가제의 악습으로 인해 사업장 변경 자체가 안되는 것이 지금의 현실입니다. 본지 뉴스포스트는 이주노동자들이 한국에 들어와서 겪고 있는 업종별 차별 실태와 사회 곳곳에 뿌리 깊이 만연한 고용허가제의 문제점과 어떤 불법적인 요소가 도사리고 있는지 짚어보고자 합니다. 더 나아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에 대해 제시하고자 합니다. <편집자주>

금오산 상공에서 내려다본 구미국가산업단지 전경. (사진=뉴시스)
금오산 상공에서 내려다본 구미국가산업단지 전경. (사진=뉴시스)

"이번 여름은 역대급으로 불렸을 정도로 혹독했습니다. 무더위 속에서 누구나 무사해야 하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죽을 위험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이 민낯을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지난 7월 초 경북 구미 산단 인근 건설 현장에서 23살 이주노동자가 일하다 유명을 달리한 사건입니다. 현장에서 이주노동자를 발견할 당시 낮 최고기온이 38.3도였어요. 비슷한 일들이 현장에서는 수년째 반복되고 있어요. 구미 산단 경기가 살아나고 있다지만 지금부터라도 하청의 최전선에서 위험의 이주화를 몸소 체감하는 이주노동자들을 보호할 개선책이 마련되지 않으면 머지않아 또 빠져나가고 말 겁니다" 구병화 구미 외국인 주민센터장의 일성이다.

실제로 구미 산업단지에서 근무하는 근로자 수 추이를 보면 이주노동자들이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최근 수출 증가세로 구미국가산업단지 외국인 근로자 고용 비율이 높은 내 제조업을 중심으로 일자리를 늘리면서다. 특히 내국인들은 3D 중심의 생산직 일자리를 꺼리다 보니 이 빈자리를 이주노동자들이 대신해서 메우고 있는 실정이다.


대기업 빠져나간 구미산단의 빈자리 …E-9 인력으로 대체


그동안 구미 산업단지가 정체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산업 전반의 경쟁력을 높이기보다 대기업 중심의 일감에 의존하는 하청업체의 기형적인 문제에 기인한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구미 산단을 먹여살리는 기업은 삼성과 LG라고 했을 정도로 존재감이 컸다.

구미 산업단지 안에 있는 A3공장 전경. (사진=LG전자)
구미 산업단지 안에 있는 A3공장 전경. (사진=LG전자)

그러나 구미 산단에 입주한 이들 기업마저 기술 경쟁력 확보 등 여러 이유로 인해 주요 공장을 해외나 수도권으로 이전하면서 이들 대기업에 의존하던 협력 중소기업들이 직접적인 타격을 입게 된다. 대기업 하청에 의존도가 컸던 중소 제조업은 대기업 이탈로 인해 성장 동력 약화, 인력난, 기술 역량 부족 등 구조적 한계와 어려움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구미가 2023년 7월 국가 첨단 전략산업 반도체 분야 특화 단지로 지정되면서 재도약을 위해 속도 내고 있다. 특히 지방에서는 유일하게 반도체 특화 단지로 낙점된 만큼 2028년까지 총 367억 원 규모의 국비를 확보해 반도체 산업의 재도약을 발판을 마련하고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현재 구미 산업단지의 입주업체 수는 2877개, 기업 가동률은 63.3%다. 직전 분기 2839개에서 소폭 늘었으며, 가동업체도 2275개로 안정세를 보이고 있다. 이 같은 수치들은 구미 산업단지 경제 지표가 다른 산업단지에 비해서는 탄탄하다는 점을 입증하는 지표다.


구미 이주노동자 7000여명 육박…8만명 중 약 10% 

이 가운데 구미 산업단지에는 7000명이 넘는 이주노동자가 일하고 있으며, 최근 들어 그 숫자가 꾸준히 늘고 있다. 최근 구미시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구미 산업단지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 수는 현재 7033명(2025년 6월 기준)이다. 지난해 같은 기간 6015명에서 16.9% 늘었으며, 2021년 6월 기준 4660명과 비교하면 3년 만에 무려 51% 증가했다. 구미 지역 이주노동자는 전체 근로자 8만여 명 가운데 약 9%로 비중이 적지 않다.

국적별로는 2021년 6월 601명이던 중국인이 지난달 말 1011명, 인도네시아는 350명에서 482명, 캄보디아 330명에서 407명으로 늘어나는 등 외국인 근로자가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앞으로도 외국인 근로자 유입은 계속 될 것으로 보인다. 구미 산업단지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들은 주로 베트남, 필리핀, 태국, 캄보디아, 인도네시아 등 고용허가제 협약을 맺은 아시아 국가 출신이며, 중국·우즈베키스탄 등의 국가 출신도 다수 포진되어 있다.

경북 한 아파트 공사장에 이주노동자들을 위해 다른 국가 언어로 설치되어 있는 ‘체감온도 경보' 안내문. (사진=김주경 기자)
경북 한 아파트 공사장에 이주노동자들을 위해 다른 국가 언어로 설치되어 있는 '체감온도 경보' 안내문. (사진=김주경 기자)

구미에 등록된 이주노동자들이 가진 취업비자의 형태를 보면 국가산업단지의 특성상 주로 E-9(비전문 인력) 비자로 들어온 이주노동자가 80%로 가장 많다. H-2(방문취업)과 E-7(전문 인력) 자격으로 들어온 이들은 각각 10%, 5% 비중을 차지한다. 이 두 비자는 근로자의 노동 환경에 따라 극명히 갈린다.


E-9 인력 가장 많아…H-2·E-7 출신도 일부 포진


구미에 등록된 이주노동자들이 가진 취업 비자는 국가산업단지의 특성상 주로 E-9(비전문취업) 비자와 H-2(방문취업), E-7(특정활동) 관련 비자다. 이 두 비자는 근로자의 근무 환경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다.

E-9(비전문취업) 비자는 산단에서 기계를 만지면서 제조업종 내에 단순 직무에 종사하는 이주노동자 위주로 발급되며, 구미 산업단지에서는 베트남과 필리핀‧인도네시아‧캄보디아‧스리랑카 등 동남아시아 출신 근로자들이 주로 일하고 있다.

다만 E-9로 한국에 들어온 이주노동자들은 원칙적으로 사업장 변경이 허용되지 않는다. 사업주와 체결한 근로계약 기간 동안 사업장 변경은 사업주 폐업, 폭행, 폭언, 임금체불 등 예외적인 경우에만 허용된다. 이 제한은 사업주에게 막강한 권한을 부여하여 이주노동자들의 인권 침해에 악용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E-9에 적용되는 고용허가제는 고용주가 노동부를 통해 인력을 신청하는 구조인 만큼, 근로자는 고용주에게 얽매인 관계가 될 수밖에 없다. 체류 기간은 최초 3년이며, 추가적으로 1년 10개월에 한 해 연장이 가능해 총 4년 10개월간 일할 수 있다.

구미 산업단지에서 E-9 취업비자를 받아 일하는 이주노동자들이 대구 고용노동청 앞에서 사업장 변경의 자유를 촉구하는 집회가 열리고 있다. (사진=마하이주민지원단체협의회)
구미 산업단지에서 E-9 취업비자를 받아 일하는 이주노동자들이 대구 고용노동청 앞에서 사업장 변경의 자유를 촉구하는 집회가 열리고 있다. (사진=마하이주민지원단체협의회)

H-2(방문취업)는 구미의 경우 중국, 우즈베키스탄 출신의 재외동포 이주노동자들 대상으로 주로 발급받을 수 있는 비자다. 이들은 주로 우리나라에 연고가 있는 만큼 제조업‧건설업 등 다양한 분야를 넘나들며 일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요소로 작용한다. H-2 비자를 지닌 소지자는 E-9 비자와 달리 자유로운 사업장 이동이 가능하다. 이로 인해 이들은 고용주에게 덜 종속적이며, 부당한 대우를 당했을 때 다른 사업장으로 이동할 권한을 가지고 있어 일자리 역시 본인이 직접 선택할 수 있다. H-2 비자 소지자는 스스로 비자를 발급받고, 입국 후 구직활동을 통해 직장을 찾을 수 있다는 점에서 E-9 비자와 대비된다. 체류 기간은 3년이며, 1회에 한해 연장이 가능하다.

E-7(전문인력) 비자를 지닌 이주노동자들도 꽤 있다. 구미 산업단지 내에 첨단 제조업체에서는 전문 인력도 필요로 하다 보니, 전문 기술을 보유한 E-7 비자를 가진 이주노동자들을 채용하는 사례도 있다. 이들은 특수 분야의 기술, 기능 또는 능력을 갖춘 만큼 주로 엔지니어, 기술자로 일하고 있다. E-7 취업자격으로 들어온 이들은 사업장 변경이 유연하고, 더 나은 처우를 받는다.


구미 산단 내부 '이주노동자 차별' 낮은 편


다만 제조업은 고용허가제를 통한 합법적으로 고용하는 경우가 많아 근로계약서, 임금명세서 등 노동조건이 명확하게 기재된 경우가 많다. 또한, 사업장 규모가 크고, 구미 산단과 같이 규모가 클 경우에는 금속노조나 민주노총 산하의 노동조합이 만들어져 있다 보니 노동환경이 비교적 투명한 편이다. 법적으로 보호받기에도 수월하다. 제조업 근로자 상당수는 합법적인 신분인 만큼 임금체불이나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노동청에 진정하는 등 법적 절차를 밟기가 상대적으로 용이하다는 것이 구미산단 노조 측의 설명이다.

제조업 내 이주노동자에 대한 채용이 비교적 투명하다고 해서 이들에 대한 차별이 아예 없다고 볼 수는 없다.

경북외국인이주상담센터와 구미외국인주민센터에 따르면 구미 이주노동자들 다수는 산단에서 크게 다쳤음에도 불구하고 산재 처리를 해주지 않아 어려움을 겪는 사례가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E-8(계절 근로자) 자격으로 입국한 A 씨는 지난 2022년 구미산업단지 내 한 기계 공장에서 일하다가 손을 다쳤다. A 씨가 근무 시간에 작업 중 기계에 손이 끼어 큰 부상을 당했음에도 사업주는 산재 처리를 해주지 않은 것이다. 사업주는 A 씨에게 병원비를 직접 내게 하고, "산재 신청하면 신고해서 추방시키겠다"라는 협박까지 서슴지 않았다. A씨가 처한 상황을 전해들은 구미 외국인센터는 피해자에게 즉시 근로복지공단에 산재 신청을 진행하도록 도움을 준 결과, 사업주가 산재를 은폐하고 협박한 사실이 인정돼 A씨는 치료비와 휴업급여를 보상받았으며. 사업주는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및 협박 혐의로 처벌을 받았다.

또 다른 사례를 보면 캄보디아 출신의 E-9 비자로 입국한 근로자 B씨는 산업단지 내에 공장을 짓는 현장에서 뼈대를 세우는 골조 작업 중에 추락해서 다리가 골절되는 중상을 입었다. 그러나 원청에서는 산재 처리를 하지 않고 '개인 실수'로 처리하려 한 것. 대구고용노동청이 조사를 진행한 결과, 원청 현장소장은 B씨에게 "신고하면 비자가 취소된다"라고 협박하며 병원비를 직접 내게 한 사실도 드러났다.

B씨는 구미외국인지원센터와 통역사의 도움을 받아 고용노동청 진술을 통해 사 병원 진료 기록과 현장 사진을 산재 신청의 증거로 제출했다. 이후 근로복지공단은 B씨의 부상에 대해 산업재해로 인정했으며, 고용주는 노동관계법 위반으로 처벌받았으며, B씨는 치료비와 휴업급여를 모두 보상받았다.

비단 제조업에서만 이주노동자에 대한 차별이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구미시청과 구미외국인주민센터의 증언에 따르면, 구미지역 이주노동자에 대한 차별과 인권 침해는 농축산업 분야가 가장 심각하다. 이는 업종 특성과 이주노동자의 취약한 지위가 결합된 결과물이기도 하다.

 

구미 외국인 노동자를 위한 쉼터를 운영하고 있는 구병화 센터장은 "농축산업에 종사하는 이주노동자들은 비닐하우스나 컨테이너 등 기본적인 난방 및 위생 시설조차 갖추지 못한 곳에서 생활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비닐하우스는 주택법상 주거 용도로 사용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사업주들이 식대비와 숙소비 명분으로 월급의 20%를 공제하고 지급하는 사례가 빈번하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농축산업 분야의 사업주들은 자신들의 농장이 외곽에 있다는 점을 악용해 외부에 알려지지 못하도록 만드는 경우가 많다"면서 "이주노동자들은 언어소통의 어려움까지 겪고 있다보니 고용노동청에 실제로 신고하는 비율이 매우 낮다"라고 설명했다.

더 심각한 문제는 미등록 체류자 신분의 이주노동자들이다. E-9(비전문 인력) 취업 비자를 취득해 한국에서 4년 10개월간 일했음에도 비자가 만료돼 불법체류자 신세로 전락한 것이다.

우크라이나 출신의 이주노동자 경북 한 농장에서 사업주에게 폭행을 당하고 있다. (사진=SNS 캡처)
우크라이나 출신의 이주노동자 경북 한 농장에서 사업주에게 폭행을 당하고 있다. (사진=SNS 캡처)

불법 체류자를 고용해 신고하는 사례 역시 농축산업분야가 가장 빈번하다. 사업주들이 불법체류자의 특성상 노동청에 신고하면 바로 강제 추방당할 수 있다는 점을 빌미 삼아 최저임금 미만으로 임금을 지급하거나 임금조차 주지 않는 사례가 대부분이다. 미등록 체류자들이 고용노동청 신고를 꺼려 한다는 점을 악용한 것.


임금체불·폭행 빈번…불법체류자 신분 악용해 근로계약서 작성도 거부 


이밖에도 이주노동자들은 고립된 구조 속에서 일하다 보니 사업주나 관리자로부터 상습적인 폭언이나 폭행에 노출되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일례로 한국어 소통이 어려운 미등록 체류자 C씨는 지난 2023년 경북 성주군에 있는 농장에서 일하던 중 말귀를 알아듣지 못해 일일 수확량을 채우지 못했다는 이유로 임금체불도 모자라 욕설과 함께 흉기로 허벅지까지 가격당했다. 폭행당한 이후에도 "너의 신분으로는 어디에도 신고할 수 없다"라는 협박을 들어야 했다.

참다못한 C씨는 구미 외국인주민센터를 찾았다. 센터 측은 피해자에게 임시 숙소를 제공하며 법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도록 도움을 줬다. 이후 폭행 사실을 증명할 수 있는 상처 사진과 동료의 증언과 달력에 일한 시간을 체크한 내역 등을 확보한 다음 통역을 통해 경찰에 폭행죄로 고소장을 제출했다. 이후 경찰 조사에서 폭행 혐의가 인정되어 사업주는 형사처벌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고용노동청에도 임금체불 진정을 제기해 밀린 임금 1500만원도 받아낼 수 있게 된 것이다.

포브소페악 구미외국인주민센터 상담소장이 지난 24일 뉴스포스트 본지와 만나 이주노동자들이 겪은 최악의 차별 사례를 소개하고 있다. (사진=김주경 기자)
포브소페악 구미외국인주민센터 상담소장이 지난 24일 뉴스포스트 본지와 만나 이주노동자들이 겪은 최악의 차별 사례를 소개하고 있다. (사진=김주경 기자)

포브 소페악 구미외국인주민센터 상담소장은 "한국에 들어와서 15년째 외국인 근로자들의 고충을 들어보면서 한국에서 이주노동자로 사는 것은 훨씬 더 힘들고 고통스럽다는 점을 깨달았다"면서 "내국인들조차도 마다하는 3D업종에서 모진 수모 당하면서 노예 취급하는 점을 볼 때마다 마음이 많이 아팠다"라고 소회를 전했다.

그는 "특히나 지방에서는 일해도 제때 돈을 받지 못하거나 불법체류자라고 근로계약서조차 안쓰고 돈을 떼먹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자칫하면 산업재해에 쉽게 노출되는 환경에서 일하는 친구들을 볼 때마다 병원에 어떻게 가야 하는지조차 모르는 분들도 많이 있다. 국적을 떠나 다 같은 사람임인데도 이유 없이 무시당하는 이들을 볼 때 한국이 갈 길은 아직 멀다"라고 꼬집었다.

저작권자 © 뉴스포스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