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 석유화학·어항단지 이주노동자 실태 추적 [고용허가제 논란 ⑤]
이주노동자, 고학력자여도 숙련공 아니라 석유·화학 업종 취업 불가
'하청의 하청' 열악한 근무 구조…사업주 '임금 줄이고 쉬운 해고' 반복
여수 근로자 상당수 농·어업 근로…근로기준법 미적용·최저임금 차별
인권 착취 심각…18시간 이상 근무·신분증 압류·손해배상 요구
시민사회 "정부가 강제 노동 근절해 가해자 처벌·피해자 보호해야"
우리나라도 이주노동자 150만명 시대를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의 노동환경과 삶은 40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참혹합니다. 회사 사용자인 사업주가 때리고 폭언해도 피해의 당사자인 이주노동자들은 현재 고용허가제의 악습으로 인해 사업장 변경 자체가 안되는 것이 지금의 현실입니다. 본지 뉴스포스트는 이주노동자들이 한국에 들어와서 겪고 있는 업종별 차별 실태와 사회 곳곳에 뿌리 깊이 만연한 고용허가제의 문제점과 어떤 불법적인 요소가 도사리고 있는지 짚어보고자 합니다. 더 나아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에 대해 제시하고자 합니다. <편집자주>
[뉴스포스트=최종원 기자] "강제 또는 의무 노동의 불법적인 강요는 형사 범죄로 처벌되며, 법에 따라 부과되는 형벌이 실제로 적절하고 엄격하게 집행되도록 하는 것이 이 협약을 비준하는 회원국의 의무이다" <국제노동기구(ILO) 협약 29호>
3일 오후 전라남도 여수시 평여동 내 위치한 여천NCC(나프타분해설비) 1공장. 내부에는 지게차와 LPG 운반트럭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여천NCC는 한화그룹과 DL그룹이 합작해 설립된 국내 3위 규모 에틸렌 생산 업체로, 총 면적 축구장 222개에 달하는 160만평의 거대한 규모를 자랑한다.
여천NCC는 올해 상반기 1566억원, 최근 3년간은 8000억원의 적자가 누적되면서 최근 3공장 가동을 중단했다. 중국이 러시아산 원유를 헐값에 매입해 완제품 가격은 낮추면서 생산성은 향상시켜 공급을 크게 늘리면서다.
정부는 석유화학업계에 나프타 생산량의 최대 25% 감축 등을 요구하면서 동시에 지역 경제에 가해지는 영향 최소화 및 고용 인원 유지를 주문했다. 여수산단의 입주업체는 290곳인데, 가동률은 지난해 3분기 89.4%, 4분기 86.1%에 이어 올해 1분기 81.5%로 떨어졌다. 업계는 여기서 더 가동률을 줄이면 감원은 불가피하다는 게 중론이다.
이 과정에서 하청의 하청에서 근무하는 이주노동자들은 감원에 더 취약할 수 있다. 하청 일감이 줄어들면 2차 하청 업체까지 구조조정 도미노가 이어지는 데다, 노사 간 협약에 따라 고용이 유지되는 본사 직고용 인원과 달리 해고에 취약하기 때문이다. 정부의 '고용 유지' 주문도 어디까지나 권고인지라 하청 업체일수록 준수 부담이 덜하다.
그런가 하면 현재 대기업 석유화학 단지에선 이주노동자를 전혀 채용하지 않고 있다. 고학력, 기술을 가진 이주노동자여도 채용을 막고 있다는 후문이다. 이에 이주노동자들은 전문직 비자를 받고 와도 2차 하청 업체나 심지어 농·어업에 종사하고 있는 실정이다.
농·어업 이주노동자는 강제노동과 인권유린 등 문제에 노출돼 있다. 우리나라는 ILO 협약 29호에 따라 강제노동을 금지하고 있지만 이들은 근로기준법을 적용받지 않고, 최저임금은 한국인의 25% 수준에 불과했다. 비닐하우스나 컨테이너 등 열악한 곳에서 잠을 자는데, 숙소제공 명목으로 임금에서 수십만원을 공제하는 사례도 비일비재했다.
고임금 본사 근무는 못하고, 2차 하청 업체에만 소수 근무
11일 복수의 관계자에 따르면 여수국가산단 내 한화솔루션·DL케미칼 등 대기업 직고용 인원 중 이주노동자는 없는 것으로 전해진다.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동조합 광주전남지부장은 "여수국가산단 노조에 이주노동자가 없다"며 "하청에도 이주노동자는 없다"고 말했다. 산단 입주업체 관계자도 "외국인 고용인원은 따로 없다"고 전했다.
여수지역의 석유화학산업은 지역 내 제조업 비중의 96%를 차지할 정도로 의존도가 높다. 이렇게 지역경제를 지탱하는 석유화학산업단지에 이주노동자가 한명도 없다는 사실은 의문이다. 여수시의 외국인 수는 7237명으로 전라남도 내에서 영암군(1만443명) 다음 가는 적지 않은 규모다.
그런데 본사 직고용은 없더라도, 하청의 하청 회사에선이주노동자가 근무하고 있다. 지미자 여수시가족센터장은 "LG나 NCC 등 대기업 쪽 공장은 외국인 근로자를 채용하지 않고, 하청의 하청 회사에서 근무를 하는 경우는 있는데 박사급 고학력자들이 많다"고 말했다.
고학력자 이주노동자임에도 2차 이상 하청에서 근무하는 배경은 뭘까. 먼저 언어·기술적 문제와 자격증이 없다는 점이 꼽힌다. 센터장은 "언어·기술적 문제가 크고, 하청이라도 석유화학과 연관된 사업장은 전문 자격증을 원하는데 지게차 등 자격증이 없어 현장에 투입될 수 없다"고 말했다.
정책 상 대기업에 입사할 수 없다는 점도 자리한다. 전남동부 이민 외국인 종합지원센터장은 "대원산업, 율촌산업단지, 하이테크 같은 중소기업에는 이주노동자 많이 있는데 대기업은 근무 조건이 좋아 내국인 수요로 충당이 가능하다"며 "국가 정책 상으로 불가능한 데다 대기업은 우리나라 청년들도 취업을 못하는 실정이고 외국인까지 취업을 하게 되면 청년들이 갈 자리가 없다"고 주장했다.
센터장은 이어 "이런 조치들이 부당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데 이주노동자들은 단순 노동, 조선업, 어업 등에선 근무가 가능하다"며 "급여 30~50만원의 본국에 비하면 월 300만원의 급여를 받는 국내 이주노동자들은 결코 불행하지 않고, 외로움과 고통도 이겨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주노동자들은 본국에 비해 많은 돈을 수령할 수 있으니 괜찮은 걸까. 전문취업비자(E-7)를 받고 온 이들마저 대기업에 입사할 수 없다는 점은, 결국 내국인이 기피하는 일자리를 이주노동자로 대체하는 고용허가제의 폐해와 맞닿아 있다.
전문인력(E-7-1) 비자로 온 이들도 연 2867만원의 최저선만 맞춰 연봉을 지급하면 되고, 2년 이상 고용 유지 조건이 끝나면 해고도 자유로워 2차 하청 사업주에게유리하다. 하지만 이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농·어업 이주노동자는 훨씬 열악한 처지에 놓여 있다.
어업 인권유린 심각…해결책 손 놓은 지자체·정부
어업에 주로 근무하는 여수 내 이주노동자들의 실태 확인을 위해 국동항 근처 여수어항단지를 찾았다. 단지에는 조업 배 선착장, 경매장, 수산시장 등이 함께 있어 조업-경매-도매업까지 이곳에서 이뤄졌다. 기자가 방문한 낮 시간대에는 거의 조업을 나가지 않아 대부분 어선들이 선착장에 정착돼 있었다.
석유화학과 달리 어업계에선 이주노동자 공급이 부족해 조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밝혔다. 현장에서 만난 어업경영체 관계자는 "E-10 비자를 받아 외국인들이 선원으로 취직해도 최대 3년만 체류할 수 있고, 그 이상 체류하려면 연봉을 내국인에 맞춰야하고 한국어 능력도 중요해서 장기적으로 일하기 쉽지 않다"고 전했다.
그런데 이주노동자들은 되려 일감이 부족하며, 인권 유린이 발생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미자 센터장은 "제조업은 일이 없으면 타 지역 사업장으로 연결해주지만 농·어업은 폭염과 조업 감소로 이주노동자들이 일할 곳이 줄고 있다"며 "4대 보험 미가입 등 사각지대도 있고, 전남도 쪽은 인건비도 낮아서 정부가 나서서 해결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구철회 민주노총 미조직전략조직국장은 "농어업 사업장 상당수가 사업장등록이 없어 노동자가 건강보험 가입이 어렵고, 5인 미만 비법인 농축산사업장은 산재보험 의무가입 대상이 아니어서 임금체불에도 속수무책"이라며 "여기에 소득 파악이 어렵다는 이유로 최저 임금에 못 미치는 이주민(13만3000원)에게 지역가입자(8만2000원)보다 과중한 보험료를 부과하고 있다"고 말했다.
어업 종사 이주노동자들이 사실상 강제노동에 시달리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환경정의재단이 한국 원양어선에서 일한 인도네시아 어선원 43명을 인터뷰한 결과에 따르면 24%가 하선 없이 12개월 이상 항해했고, 74% 이상의 휴식시간은 하루 10시간 미만이었다. 선원이주노동자 인권네트워크의 2023년 설문조사에선20톤 이상 연근해 이주어선원의 하루 평균 노동시간이 18시간에 달했다.
이한숙 이주와 인권연구소 소장은 "어업 노동자들에겐 근로기준법이 적용되지 않고, 국적에 따른 최저임금 차별이 허용돼 원양 이주어선원의 최저임금은 한국인 선원의 25%에 불과하고 성과급도 받지 못한다"며 "이들을 붙잡아 두기 위해 거액의 송출수수료와 집이나 땅 문서 등 담보 요구, 신분증과 통장 압수 등이 자행되고 있고, 사업장 변경 제한도 엄격해 체류자격 박탈에도 취약하다"고 말했다.
지자체와 정부에선 문제 해결에 소극적이었다. 여수시는 이들만 따로 지원할 수 없는 데다 지자체에서 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아 고용노동부·법무부의 역할이 더 중요하다고 해명했다.
여수시 일자리정책과 관계자는 "외국인에게 취업 알선도 쉽지 않고, 비자에 따라 할 수 있는 업무도 달라서 손댈 수 있는 게 많지 않다"며 "법적으로도 많이 어려운 상황"이라고 밝혔다.
본지 <뉴스포스트>는 어업계 이주노동자 인권유린과 비자 문제와 관련해 고용노동부·법무부 측에 답변을 요청했으나 현재까지도 관련 입장을 따로 받지 못했다.
이한숙 소장은 "강제노동 대응을 위해 이주어선원의 송출입을 양 정부의 공공기관이 담당하고, 어선원 노동조건 보장을 위한 법 규정 마련, 국적에 따른 임금과 재해보상의 차별 폐지, 궁극적으로 정부 관련 기관이 신분증 압수 및 보증금 설정 등 강제노동 지표를 인식해 가해자를 처벌하고 피해자를 보호할 수 있는 법과 제도를 마련하고 정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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