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 돌아갈 곳 없는 로힝야족 "세계에서 가장 박해받는 민족"
英, 식민지배 위해 버마-소수민족 분열…독립 후 군부 탄압·학살
1982년 시민권 제외돼 무국적 전락, 탄압 피해 방글라데시 이주
국적 없이 미얀마인으로 난민 신청 받아…인원 적어 규합 '난항'
E-9 자격 만료돼 복귀하면 군부 강제징집 위험…미등록 체류 우려

우리나라도 이주노동자 150만명 시대를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의 노동환경과 삶은 40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참혹합니다. 회사 사용자인 사업주가 때리고 폭언해도 피해의 당사자인 이주노동자들은 현재 고용허가제의 악습으로 인해 사업장 변경 자체가 안되는 것이 지금의 현실입니다. 본지 뉴스포스트는 이주노동자들이 한국에 들어와서 겪고 있는 업종별 차별 실태와 사회 곳곳에 뿌리 깊이 만연한 고용허가제의 문제점과 어떤 불법적인 요소가 도사리고 있는지 짚어보고자 합니다. 더 나아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에 대해 제시하고자 합니다. <편집자주>

1950년 2월 24일, UN, 뉴욕 레이크 섹서스에 있는 UN 임시 본부를 방문해 세계 인권 선언서를 보고 있는 일본 여성 단체. (사진=UN Photo)
1950년 2월 24일, UN, 뉴욕 레이크 섹서스에 있는 UN 임시 본부를 방문해 세계 인권 선언서를 보고 있는 일본 여성 단체. (사진=UN Photo)

[뉴스포스트=최종원 기자] "모든 사람은 자국을 포함하여 어떠한 나라를 떠날 권리와 또한 자국으로 돌아올 권리를 가진다" 

"모든 사람은 박해를 피하여 다른 나라에서 비호를 구하거나 비호를 받을 권리를 가진다" 

"어느 누구도 자의적으로 자신의 국적을 박탈당하지 아니하며 자신의 국적을 변경할 권리가 부인되지 아니한다" (세계인권선언 각각 13, 14, 15조)

고용허가제(E-9)의 맹점과 군부가 독재하는 미얀마 이주노동자의 본국 송환 위험(관련 기사: "미얀마 민주화 운동 참여했다고 군부 독재 국가로 돌아가라구요?" [고용허가제 논란 ④])을 취재하던 도중, 미얀마 소수민족 로힝야족에 대한 참혹한 실태가 들려왔다. 이들은 고향에 돌아가지 못한 채 가장 취약한 난민 공동체에 의지해 살아가고 있다.

로힝야족은 무슬림임에도 방글라데시, 파키스탄, 인도네시아 등 어떤 이슬람 국가에서도 법적 지위를 인정받지 못하는 무국적자다. 미얀마는 1982년 새롭게 통과된 시민법을 통해 135개의 소수민족에 국적을 부여했으나, 로힝야족은 대상에서 제외돼 현재까지도 무국적자로 남아 있다.

이들은 어떤 국가에서도 자국민 혜택을 받지 못하며, 한국에선 낮은 난민 인정률·긴 심사기간과 결부돼 난민 인정을 받기도 쉽지 않다. 특히 고용허가제(E-9) 이주노동자의 경우 4년 10개월 비자 만료 후 어떤 곳으로도 돌아갈 수 없기 때문에 미등록 체류로 인한 임금체불·부당해고 등 노동법 위반에도 취약한 실정이다.


英 식민정책 희생양…군부 탄압에 방글라데시 난민 이주


지난해 6월 17일(현지시각)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외곽 셀라양의 도매 시장 입구에서 '이드 알 아드하' 기도회가 열려 로힝야 무슬림들이 기도하고 있다. (사진=AP/뉴시스)
지난해 6월 17일(현지시각)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외곽 셀라양의 도매 시장 입구에서 '이드 알 아드하' 기도회가 열려 로힝야 무슬림들이 기도하고 있다. (사진=AP/뉴시스)

로힝야족이 무국적자로 전락한 배경에는 영국의 식민지 내 분열 정책이 자리하고 있다. 현재도 일부 미얀마인은 로힝야족을 1824년 영국(동인도 회사 인도령)과 전쟁 도중 인도에서 불법으로 국경을 넘어온 불청객으로 인식한다. 영국은 연이은 승전 이후 1885년 최종적으로 버마를 인도 제국에 편입했는데, 동시에 벵골에 사는 로힝야족을 버마로 집중 이주시켰다.

무슬림 위주 로힝야족은 불교 중심 버마족과 달리 의복, 음식, 주거 공간 등 의식주 생활이 판이하다. 로힝야족 여성들만 해도 히잡을 쓰고 다녀서 구별이 어렵지 않다. 로힝야족은 미얀마 내 100만명을 넘지 않는 규모로 정체성을 유지해왔는데, 영국은 식민지배 과정에서 버마족 대신 소수민족에게 토지를 넘겨주는 분열 정책을 펼치며 민족주의를 억눌렀다.

로힝야족은 1942년 일본 제국이 버마를 점령한 이후 일본군의 총알받이로 전락했지만, 군부는 로힝야족이 영국·일본 등에 부역했다는 오명을 씌워 학살과 탄압을 자행했다. 1962년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군사령관 네윈은 소수민족에 대한 버마족의 증오심을 이용해 열렬한 지지를 얻었다.

지난해 10월 22일(현지시각) 인도네시아 아체주 라부한 하즈 해안 인근에 정박한 선박에서 로힝야 난민 어린이들이 음식을 먹고 있다. (사진=AP/뉴시스)

네윈의 독재 이후에도 로힝야족에 대한 탄압은 이어졌다. 국적을 박탈한 뒤 로힝야족 거주지를 강제 철거하거나 토지를 몰수했고, 2010년대에는 불교도 라카인족과 로힝야족 간 대규모 유혈사태 발발로 인종청소까지 자행했다. 이에 100만명 이상의 로힝야족은 방글라데시 국경을 넘어 난민캠프로 몰려들었다.

현재도 로힝야족 난민은 인구밀도가 극심한 캠프에서 인도적 지원에 의지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들은 강제로 추방된 미얀마 국적인이지만, 실상은 미얀마도 방글라데시 국적도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어디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이들은 살기 위해 여러 국가로 뿔뿔히 흩어지기도 하며 정처없이 떠돌고 있다.


난민 인정률 낮고 인원 적어…블랙리스트 위험까지 


지난달 25일(현지 시간) 방글라데시 콕스바자르 쿠투팔롱 난민캠프에서 로힝야 난민들이 미얀마 라카인주로의 안전한 귀환을 요구하며 피켓을 들고 시위하고 있다. 미얀마 서부 라카인주에 거주하던 이슬람 소수민족인 로힝야족은 2017년 8월 25일 미얀마군의 박해를 피해 방글라데시로 탈출하기 시작했으며 지금까지 70~75만 명이 탈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AP/뉴시스)
지난달 25일(현지 시간) 방글라데시 콕스바자르 쿠투팔롱 난민캠프에서 로힝야 난민들이 미얀마 라카인주로의 안전한 귀환을 요구하며 피켓을 들고 시위하고 있다. 미얀마 서부 라카인주에 거주하던 이슬람 소수민족인 로힝야족은 2017년 8월 25일 미얀마군의 박해를 피해 방글라데시로 탈출하기 시작했으며 지금까지 70~75만 명이 탈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AP/뉴시스)

국내에 정착한 로힝야족 규모는 얼마나 될까. 순수 로힝야족으로 추산되는 인원은 몇명 밖에 채 되지 않는다. 로힝야족은 인구 수가 많지 잃은 데다 자신이 로힝야족임을 잘 밝히지 않고, 그나마도 미얀마 난민으로 인정 받는 경우가 많아 추산이 쉽지 않다.

이동화 아시아인권평화디딤돌(아디) 활동가는 "한국 정부가 로힝야족이라고 해서 난민으로 인정한 사례는 없고, 그나마 미얀마 난민으로 인정받은 경우가 제가 알기론 두 명으로 알고 있다"며 "한 분은 국내에서 미얀마 민주화 시위에도 적극 참여하고 있다"고 밝혔다.

우리나라의 난민 인정률은 매우 낮은 편이지만, 쿠데타 등 정치적 혼란 영향에 미얀마인들은 인정률이 높은 편이다. 법무부에 따르면 난민 제도가 도입된 1994년 이래 작년까지 인정률은 2.7%였는데, 미얀마는 신청자 1629명 중 474명(29%)이 난민으로 인정됐다.

이 활동가는 "로힝야족 이주노동자는 두 가족 밖에 모르는데 한 가족은 난민 인정을 받아 가족결합을 해서 남편은 무역업을 하고 있고 아내 분은 모스크 근처에서 청소를 하고 지내고 있다"면서도 "한국에 있는 로힝야 난민은 오래 전에 정착했고 안정적이라 로힝야 노동자들을 대표한다고 볼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로힝야 여성과 인터뷰하고 있는 이동화 아디 활동가(우측). (사진=이동화 활동가 제공)
로힝야 여성과 인터뷰하고 있는 이동화 아디 활동가(우측). (사진=이동화 활동가 제공)

고용허가제로 입국한 이들은 민주화 시위에 참여해 미얀마인과 섞이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이 활동가는 "고용허가제로 온 다수는 비자 갱신이나 서류를 발급할 때 미얀마 대사관에 가야 해서 블랙리스트에 오를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며 "작년부터 미얀마 군부에서 징집법을 통과시켜서 18~32세까지 무작위로 군대로 끌고 가는 등 통제가 강화돼 민주화 시위는 활동가나 미얀마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사람만 주로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국내에 로힝야족을 규합할 수 있는 커뮤니티나 지원센터는 전무하다. 이 활동가는 "로힝야족은 미얀마 마을이 있는 부평보다는 이슬람 사원이 있는 이태원 쪽에 사는 경우가 많고, 커뮤니티가 발달돼 있지도 않다"며 "미얀마 라카인 주와 방글라데시·인도네시아에는 로힝야족이 많지만 우리나라는 숫자가 적어 모이기가 쉽지 않은 현실"이라고 전했다.


귀국시 군부에 강제징집 우려…"세계에서 가장 박해받는 민족"


부평역 미얀마마을 자동차에 부착된 미얀마 군부 규탄 포스터. (사진=뉴스포스트 최종원 기자)
부평역 미얀마마을 자동차에 부착된 미얀마 군부 규탄 포스터. (사진=뉴스포스트 최종원 기자)

로힝야족의 무국적 문제는 고용허가제의 폐해와도 맞닿아 있다. 고용허가제 이주노동자는 최초 입국 후 4년 10개월의 취업활동기간(3년+재고용 1년 10개월)이 부여되고, 재입국 특례 고용허가 시 1회 재입국후 다시 4년 10개월 내 취업활동이 가능하다. 하지만 한국에 온 로힝야족 이주노동자들은 무국적자라 돌아갈 곳이 없다.

미얀마 국적을 인정 받더라도 미얀마에서 혼란에 휘말려 투옥되거나 자칫 목숨을 잃는 인권 유린이 우려되는 실정이다. 특히 군부가 미얀마 반군과 전투를 위해 로힝야 청년들을 강제 징집해 전선으로 내몰며 공동체 간 불신과 증오를 조장하고 있는 데다, 방글라데시에 도착한 이들조차 기본적 권리를 보장받지 못한 채 생존을 위협받고 있다. 

이때문에 비자가 만료돼도 미등록 상태로 남아 있는 로힝야족의 숫자도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이 활동가는 "로힝야족은 어떤 국가의 시민권이 없기 때문에 적법한 고용허가제 대상이 아니"라며 "무국적이고 무슬림이라 세계에서 가장 박해 받는 민족으로 꼽히는 배경"이라고 덧붙였다.

로힝야 학살 8주기 미얀마 군부 규탄 기자회견에 참석한 시민단체 일동. (사진=참여연대)
로힝야 학살 8주기 미얀마 군부 규탄 기자회견에 참석한 시민단체 일동. (사진=참여연대)

앞서 아디와 국제민주연대, 참여연대는 지난달 22일 로힝야 학살 8주기를 맞아 주한 미얀마대사관 앞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이들 단체는 "수만 명의 로힝야가 목숨을 잃었고, 수십만 명이 삶의 터전을 잃었는데 8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누구 하나 처벌받지 않고, 로힝야는 여전히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방글라데시 콕스바자르 난민캠프는 국제사회 지원이 줄면서 식량 배급 감소로 영양실조와 질병이 확산되고 있고, 장마철이면 산사태와 홍수로 거처가 무너지고, 불안정한 치안 속에서 여성과 아동은 늘 폭력에 노출돼 있다"며 "로힝야 난민들은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큰 캠프에 갇힌 채, 귀환도 재정착도 보장되지 않는 채 잊혀 가고 있다"고 말했다.

단체는 마지막으로 "국제사회는 로힝야 집단학살을 더 이상 외면해서는 안 되며, 방글라데시 난민캠프와 라카인 지역 로힝야 공동체에 대한 인도적 지원을 즉시 확대해야 한다"며 "정부는 군부와 연계된 경제활동을 철저히 차단하고, 로힝야 난민 지원을 확대함으로써 책임 있는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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