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인 충남문학관 관장 / 작가

[뉴스포스트 전문가칼럼=이재인] 지난 6월 25일 저녁때였다. 어미 닭이 난데없이 알을 품으려고 둥지에 두문불출하고 앉아 있었다. ‘어머나, 이를 어쩐담?’. 더위에 토종닭 두 마리가 알을 낳다가 중단한지 오래였다.
닭들도 해가 일찍 뜨고 늦게 지면 수면이 모자라서 알을 낳지 못한다. 그런 터에 모아 둔 달걀도 없었다. 아내에게 나 모르게 달걀 모아둔 게 없느냐고 물었다.
“있긴 있는데 냉장고에 다섯 개가…….”

냉장고 야채 서랍 안에 비닐 봉투로 둘러싸여 있는 달걀 다섯 개를 꺼냈다. 병아리로 부화되면 다행이고 만약 실패해도 두 개의 알이 둥지에 있었기에 그것으로 만족했다. 우리 부부는 야밤에 12킬로나 떨어진 박물관 산자락에 설치된 닭장으로 달려갔다.
닭장 안에 있는 수탉 한 마리, 암놈 닭 두 마리를 붙잡아 예비로 마련한 임시 닭장으로 옮겨다 넣었다. 나의 손에 잡힌 이 세 마리는 공포에 떨면서 꿱꿱 소리를 질렀다. 날갯죽지가 잡힌 채 임시 닭장으로 옮겨졌다. 수선스런 소리 속에 밤도 깊었다.

드디어 7월 15일 아침에 닭장 앞에 선 채 둥지를 바라보니 어미 날개 속에 있던 병아리가 고개를 내밀고 낯선 세상 호기롭게 구경을 하고 있었다. 어허, 나는 탄성을 지르면서 일곱 개의 달걀이 시차를 두고 깨어난 것이라고 짐작했다.
냉장된 달걀이 부화된 경우가 없다는 촌로들이 말이 빗나갔다. 비닐봉지로 쌓아 야채 상자 속에 넣은 달걀이 생명으로 태어난 게 신기하고 고마웠다. 나는 닭을 몇 년간 키웠다. 산짐승이나 개한테 닭이 물려갈 사건은 있었지만 병이 들어 문제가 된 경우는 없었다.

닭도 닭장 속에서 다량으로 사육하면 돌림병이 찾아오고 건강이 악화되지만 풀어놓고 몇 마리 키우는 경우에는 병이 생기지 않는다. 그러니까 창조주께서는 닭도 적당한 운동과 알맞은 땅속의 미생물을 주워 먹는 경우 병을 이길 수 있게 만들었다.
일종의 면역력을 자연 속에서 습득하는 것이다. 사실 어디 짐승만이 그렇겠나? 인간도 닭장 같은 도시나 대처에서 어떻게 무엇으로 면역력을 되찾을 수 있을까 생각해 보아야 한다.

닭장 속의 닭은 갇혀 있으므로 자유를 잃고 말았다. 그런데 자유를 만끽하면서 신선한 풀, 깨끗한 물과 모이를 먹은 달걀은 우리 인간에게는 소중한 식자재이다. 우리의 식자재에 청결과 정성이 깃들일 때 인간의 삶이 윤택해진다.
나는 닭도, 개도 기른다. 모두가 풀어놓고 산다. 외딴 시골인지라 짐승들도 자유에 자유를 누리면서 산다.

하찮은 달걀을 비닐봉투 속에 정성스레 넣어둔 손길의 덕택으로 우리집 정원에는 일곱 마리 병아리가 평화롭게 모이를 줍고 있다. 그렇다. 우리는 세상의 모든 것을 사랑할 때 그것들도 인간에게 사랑으로 보답해 오는 게 바로 자연의 법칙이다.
속살거리는 병아리들의 화음과 어미닭의 꼭꼭거리는 모습이 오십 년 전 내 어릴 때의 모습이 재연된 것 같다. 병아리를 키우면서 새삼 사랑의 힘과 보존의 정성을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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