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인 충남문학관 관장 / 작가

[뉴스포스트 전문가칼럼=이재인] 사람 사는 세상의 가치관은 윤리적 측면에서 크게 달라진 게 없다. 다행이다. 어버이를 존중하고 자녀를 사랑하고 이웃을 소중하게 대하는 이른바 공동체를 사는 우리의 규범은 그대로 이어져 전해지고 있다. 이른바 이런 행위를 우리는 미풍양속이라 부른다. 이는 자연의 법칙이란 생각이 든다.

얼마 전에 감자를 캤다. 금년은 필자가 평생 처음 보는 가뭄이다. 비가 언제 내렸는지 기억도 가물가물하다. 이런 가뭄에 감자를 캐다가 깜짝 놀란 사건이 하나 있다. 가뭄에 감자 뿌리까지 말라 비틀어져 줄기가 처참할 정도로 말라 죽은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런데도 이 감자 줄기는 새끼 감자의 수분을 빨아올릴 수도 있겠지만 그것을 애당초 포기한채 메말라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에 나는 놀랐다. 줄기는 말라 비틀어져 죽어가지만 새끼감자의 수분을 그대로 남겨두는 사물의 종의 보존에 자연의 위대함을 느낀다.

반면 우리 인간은 진정 후손을 위하여 산림을 얼마만큼 보존하였던가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한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구상에는 쓰레기가 넘쳐나고 있다. 그런데 이 쓰레기를 어디로 가져가고 어떻게 처리하는가 심각하게 짚어 보아야한다. 현재 살아 있는 우리가 약간은 불편하더라도 이 강산을 푸르고 맑게 해야 후대들이 누릴수가 있다.

인간이 사는 이 땅은 심은 대로 거두는게 진리이다. 우리가 불편하고 다소 어렵더라도 인내하면서 후손을 위한 고통분담을 하는 결연한 의지가 필요한 때이다. 이 가뭄 속에서 물도 아껴 써야지만도 종이 한 장, 연탄 한 삽이라도 절약하는 습관이 몸에 배이게 하는 훈련이 필요할 것 같다. 그게 가뭄을 이겨내고 극복하는 지혜가 아닌가싶다.

어제는 사운고택을 다녀왔다 국가지정 민속 문화재로써 땅도 넓고 집도 우람하고 청결한데 집 주인은 가랑비 속에서 빈 땅에 여기저기에 콩씨를 넣어 그 거둔 씨앗으로 불우 이웃을 돕는 아름다운 사례를 보면서 지독한 가뭄 속에서도 물기 즉, 수분을 가져가지 않는 감자 줄기를 생각하게 했다.

사람이 죽어도 씨오쟁이를 베고 죽는다는 속담은 우리를 소생케하는 금언이 아닌가싶다. 위기가 기회인 것 같다. 월남 전쟁터에서 한 모금 물을 남겨두고 죽어간 친구의 삶의 여백을 새삼  새기고 있다.

장마전선이 한반도를 뒤덮고 있다. 모처럼 반가운 단비가 대지를 적신다. 있을 때 우리는 그 고마움을 잊고 산다. 장마가 지나고 나면 또 다시 뜨거운 뙤약볕이 작렬할 것이다. 얼마나 많은 비가 내릴지 모르지만 지금은 잠시나마 그 고마움을 음미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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