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인 충남문학관 관장 / 작가

[뉴스포스트 전문가칼럼=이재인] 필자는 어렸을 때 이웃에 살던 무명의 한학자(漢學者)로부터 천자문, 소학, 명심보감을 배웠다. 그분은 가르치는 대가로 월사금을 받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시간은 아침 날이 훤히 밝아 올 무렵이니 이른 아침이었다.
뱃속이 비어 있어 머리는 개운했다. 아침 공부가 끝나면 반드시 암기를 테스트하기 위해 들판이나 산비탈로 학동들을 내몰았다.

그런 곳 중 논두렁 비탈 밭으로 기억하는데 어김없이 풀이 무성한 밭이거나 물이 마른 논이 가뭄에 타들어 가는 농지가 있었다. 학동인 우리 손에는 호미나 낫이 들려져 있었다.
“어서들 한 시간씩 땀 흘려 논에 난 풀을 맨다. 내일 아침에는 묵정밭에서 밭을 맬 테니 호미를 지참해야 된다. 모두들 알았지?”

선생님이 지시한 땅은 당신의 소유가 아니었다. 6.25전쟁에 나가 전사한 미망인의 소유였거나 일제 때 징병 갔다가 행방불명이 된 사람의 논밭이었다.
지금 표현으로 ‘국가 유공자’의 것이거나 아니면 전몰 유족, 내지는 징용 유족 소유의 경작지 봉사였다. 정부에서 지시하거나 협조 공문도 없었던 시대였다. 그러니까 한문을 가르치던 선생님의 스스로의 봉사 훈련이었다.

이들 논밭은 일손이 딸려 논밭에 풀이 무성했다. 과장해서 말한다면 호랑이가 새끼 칠 만큼 무성한 논밭이었다. 이 농지에 선생님께서는 학동들에게 매일 수업 후 한 시간씩 노력 봉사를 하도록 내몰았다.
이는 선생님의 소리 없는 인애(仁愛)의 실천이었고 가르침이 되었다. 선생님은 이렇게 마을 학동을 가르침에 있어 글만이 아니라 몸소 노동력 훈련이라는 봉사의 길로 우리를 가르치는데 앞장섰다.

옛날 시골에서는 마을마다 훈장이나 유식한 한학자가 더러 계셨다. 일종의 씨앗처럼 우리한테 소중한 인물들이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배움의 길에 들어선 학동들한테 노동의 헌신을 통하여 애국, 애족, 고마움을 일깨우게 해주는 훈련이었다.
그런데 요즘 초·중등학교에 이런 자발적 봉사교육의 커리큘럼이 존재하는지 궁금하다. 방과 후 독거노인의 논밭에서 펼치는 일정량의 봉사활동은 자라나는 청소년들의 근력도 길러주고 사회성의 말없는 교육으로 권장해 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한다.

학부형에게 자기 자녀의 노동력의 훈련을 주지시켜 이를 실천하여 본다면 좋은 봉사교육이 아닐까 한다. 이런 교육은 사람 사는 세상의 최상의 가치이기 때문에 학교마다 자율봉사 시간의 마련도 생각해 봄직하다.
필자를 가르쳤던 한학자 신용우 선생은 훈장이나 표창 같은 것을 받은 사실이 없다. 그분은 그런 것에 전혀 연연하지 않았다. 단순히 힘없고 안타까운 사연을 간직한 이웃에 대한 박애정신의 발로였다고 느껴진다.

세월은 흐르고 세대는 바뀌지만 이웃을 생각하고 나라를 사랑하는 교육이 옛날 글방교육에서 시작되고 있었다. 오늘을 사는 교육자들이 이 옛이야기를 한 번쯤 되새겨 볼 일이다. 나라가 있어야 나도 있고 이웃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떠올리면서 필자에게 가르침을 주신 스승을 이 가뭄에 다시 되새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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