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인 충남문학관 관장 / 작가

[뉴스포스트=전문가칼럼 이재인] 청년시절 닮고 싶은 인물 가운데 오영수라는 분이 계셨다. 서정소설을 쓰는 분인데 모자를 쓰고 다니실 경우 항상 베레모를 비스듬히 쓰고 다니셨다. 소설도 훌륭하셨고 특히 인품이 단아해서 흠모했던 분이었다.

용기를 내어 편지를 썼는데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 이백자 원고지에 휘갈겨 쓴 만년필 글씨가 달필이었다. 신언서판(身言書判 : 풍채와 언변과 문장력과 판단력. 선비가 지녀야 할 네 가지 미덕), 모두가 균형 잡힌 분이셨다.

필자는 그 분의 머리에 얹힌 베레모, 즉 모자에 매력을 느꼈다. 그 분을 흉내 내기 위해서 나도 20대 후반부터 오선생님 모자 비슷한 유사품을 사서 쓰고 다녔다. 일종의 모방심리였다. 그런데 그때부터 지금까지 나는 사철 베레모를 착용하고 다닌다.

내가 어릴 때 보았던 외국 영화 속 주인공은 하나같이 카우보이 모자를 썼거나 미국성조기를 넣은 모자를 쓰고 등장해서 나의 관심을 끌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나의 아버지와 고모부님, 그리고 외삼촌 두형제도 영국 신사들이 쓰는 중절모를 눌러쓰고 다니셨다.

두루마기에 중절모는 한편으로 부조화였는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쓰고 다니셨다. 모자의 역사를 찾다보니 이미 4천 년 전의 기록인 중국 《회남자(淮南子)》에 기록된 글이 발견되어 옮겨본다.

“동방의 군자의 나라가 있으니 목덕이 어질고 그 나라 사람들이 모자를 쓰고 띠를 두르고 칼을 찼으며 모자를 즐겨 쓴다”.

지금도 TV 사극을 보면 조선의 양반들은 갓을 썼고 평민들은 초립을 썼다, 어린이나 아녀자들은 ‘남바위’ 모자를 쓰고 있다. 모자는 신분 계층을 드러내는 관물이지만 서양의 베레모가 등장하면서 이러한 계층구조는 파괴되고 낭만주의의 시대가 도래된 것이 아닌가 싶다.

‘사람이 모자를 쓰면 그 모자의 격에 맞는 행동을 하게 된다’는 명사(名士)의 글이 생각난다.

 

이재인
소설가
전 경기대교수
충남문학관 관장
한국문인인장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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