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인 충남문학관 관장 / 작가

[뉴스포스트 전문가칼럼=이재인] 필자가 운영하는 박물관 뜨락에 스물 세 개의 맷돌이 놓여 있다. 잔디밭을 가로지르는데 발판으로 사용하기 위해서 깔아놓은 판석이다. 돌이 자연인데다가 적어도 맷돌 나이가 100년 정도 되었을 테니 추사 김정희 선생의 칠언시처럼 「유아고기독서(唯我古器讀書)」로서 안성맞춤이다.

그런데 이 맷돌을 구입한 데에는 사연이 있다. 뜨락에 구절초가 하얗게 얼굴을 내미는 늦가을이었다. 지나가던 50대 사내가 내게 말을 걸었다.
“문인인장박물관이면 문인들의 육필이 있을 것 같은데 혹시 이런 맷돌과 교환하여 잔디밭에 깔면 고태(古態)도 있고 제법 운치스러울 듯 한데요…….”
사내의 말을 듣자 나는 불현듯 잔디밭 디딤돌로 사용한다면 괜찮을 듯 싶어 사내의 말대로 문인들의 육필과 교환할까 하는 고민에 휩싸였다.

이때 이를 이성적 판단을 했어야 하는데 나는 그만 사내의 말을 철석같이 믿고 맷돌 하나에 2만3천 원씩 계산, 문인들 편지 한통씩과 맞교환하기로 구두 계약을 했다. 문화재에 조금 식견이 있었지만 사내가 그 맷돌은 강원도 지방에서 강냉이를 갈아대던 옛것이라고 추가 설명도 하다 보니 당연히 이를 믿었다.
막상 꾸며놓고 보니 색과 고태가 묻어있어 제법 정원과 어울렸다.

집을 짓고 주변에 나무와 마당에 수석 몇 점을 배치하다보니 그 맷돌이 잔디밭에 제법 어울리는 것 같아 마음이 훈훈해졌다. 요놈은 소설가 오영수선생님과 바꾼 것. 저놈은 장준하 「사상계」사장님의 것과 저것은 소설가 김동리 선생의 글씨와 바꾸고…….
나를 거쳐 가신 선배 문인들 편지글이 맷돌이 되어 주셨으니 그 맷돌을 밟을 때마다 존경하는 선생님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문인박물관에 문인 글씨와 맞바꾼 맷돌이 잔디밭과 극치에 이를 정도로 어필했다. 사치도 세상에 이런 고귀한 사치가 있을 수 없다.

나는 잔디밭에 맷돌을 깔고 나서 자부심같은 기분을 지니고 있었다. 그래서 내방객들에게 반드시 덧붙여 말했다.
“미당 서정주, 금아 피천득, 혜산 문덕수 시인, 이원섭시인, 동리, 월주, 포랑 서창남, 자하 영일, 유하 영섭 시인의 글씨와 맞바꾼 맷돌입니다. 강원도 지방에서 강냉이 갈던 옛 선조 유물입니다…….”

필자의 설명을 듣던 지인(知人)이 이를 가만히 듣고 나서 찬물을 끼얹었다.
“강원도 맷돌이라는 말은 사기입니다. 중국산인데 가짜입니다. 옛날 것처럼 색깔을 내려고 가스불로 돌을 튀겨 이렇게 만든겁니다. 제 말이 맞는지 틀린지 인사동 고완품가게에 가서 확인하세요. 100% 가짜인데 고인이 되신 문인들의 육필과 가짜 맷돌은 그 스토리텔링은 몰라도 진짜가 아닙니다…….”

사실 이런 사기극을 벌이는 고미술 취급자로 인하여 선의의 수집가들이 당한 피해는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이런 실정이다 보니 필자는 마음에 드는 고물품이 있더라도 고완품상가게 앞에서 망설이기를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가짜를 진짜로 알고 좋아했던 지난날이 부끄럽고 뒤돌아보기조차 싫다.

내 집 잔디밭에는 스물 세 개의 가짜 맷돌이 진짜로 둔갑해서 납죽 엎드려있다. 한 시대를 풍미한 문인들의 육필은 돈으로 살 수가 없을 만큼 가치가 있다. 이런 귀물과 물물 교환한 내게도 핑계는 있다.

말을 타면 종놈 부리고 싶은 게라고…….
아아! 나는 생각만 해도 목이 마르다…….

저작권자 © 뉴스포스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