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인 충남문학관 관장 / 작가

[뉴스포스트 전문가칼럼=이재인] 요즘 살기가 강팍한 탓인지 도시에 살던 사람들이 대거 귀향 귀촌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공기 좋고 인심 좋은 시골로 오는 이들은 한결같이 소박한 꿈을 갖고 있다.

말하자면 ‘저 푸른 초원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가족과 더불어 행복하게 사는 일이다. 축복하고 싶은 귀향 귀촌이다. 이를 함축적으로 줄여 말한다면 평화이다.

그런데 이 평화를 누리기 위해서 귀촌자로서의 명심해야할 몇 가지 수칙이 있다. 이 수칙이나 규범을 이행하지 못한다면 그는 다시 도시로 돌아가는 신세가 될 수도 있다.

도시라는 개념은 숱한 경쟁과 거칠고 험한 파고가 시골보다 더 심하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안다. 그러니 시골에서 견디지 못하는 이가 돌아가는 길은 낭패와 절망이 기다릴 수가 있다. 이런 고난과 고통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절대적으로 길을 안내하는 멘토가 있어야 만 제격이다.

시골은 어디를 가더라도 풀이 무성하다. 대다수 귀촌의 실패자들은 하찮은 일에서  발단이 된다. 풀을 반드시 정복하겠다는 의지로 맞서다간 본인도 스트레스 받고 풀도 고난이 된다.

농지에 풀이 무성하면 곡식과 과일도 제대로 열릴 수가 없다. 그래서 옛 어른들은 풀이 귀신보다 무섭다고 말하곤 했다. 그러니 농민이 되면 풀과 더불어 공생하겠다는 생각을 가져야 화평을 누릴 수 있다.

완전 정복하거나 박멸을 시도하다가는 게도 그릇도 놓치게 된다. 그러니 곡식이나 채소밭에  있는 잡풀만 뽑고 없애야겠다는 생각을 갖는 것이 좋다. 그러나 이를 완전하게 없애버리겠다는 야망은 초보자 농민이다.

농민으로서 풀을 적대시하고 거기에 몰두하다보면 세월이 살같이 흐른다. 풀은 애초에 인간과 더불어 공존 공생하도록 창조주가 만든 것이 틀림이 없다. 풀은 산과 들 어디든지 흙이 있고 습기가 있으면 뿌리를 내리는 습성이 있다.

풀이 있으므로 소나 말 초식동물이 살아갈 수가 있다. 풀이 있어야만 비가와도 언덕에서 토사가 흘러내리지 않는다. 그리고 풀이 있어야 광야의 열기와 더위도 막아준다. 풀은 인류가 태어난 후로 인간과 밀접한 관련을 맺으며 공존해 왔다.

오묘한 자연의 이치이다. 그러나 풀이 곡식이 심겨진 논밭에 대어들면 안 된다. 이렇게 되면 농작물의 소출도 대폭 감소하게 된다. 이런 사건이 전개되지 않으려면 반드시 논밭에서 풀씨가 발아될 무렵 한두 번 농토를 갈아엎으면 풀은 멎게된다.

그러니 농자는 근자필성이라 하였다. 농군은 부지런하면 반드시 성공한다고 명심보감에 적시 되어있다. 농민은 논밭에 심은 논밭에 풀을 적당히 다루게 되면 이는 절반의 성공이다. 풀이 성가시게 되면 제초제를 뿌린다.

제초제는 우리나라 파월 장병들에게 크나큰 고통을 안겨줬던 고엽제라는 사실이다. 제초제를 논밭에 살포하면 그 독성으로 생태계가 파괴된다. 아울러 그 제초제의 호르몬이 암을 유발시킬 수도 있다. 그러니 풀 죽이려다 먼저 인간이 오염되어 죽을지도 모른다.

필자는 월남전에 참여하여 고엽제의 피해가 얼마나 심각한가를 직접보고 느낀 바 있다. 농민은 풀과 함께 살아야 된다. 그게 창조주의 섭리이다. 그런 것을 무시하고 이를 없애버리려다  귀농을 접는 경우가 시골에서 종종 보아온 터이다.

풀은 인간에게 유익을 주고 동물에게는 좋은 사료이기도하다. 그러니 친화하면 그것은 목초지로 또는 초원으로 둔갑하여 평화와 행복의 터전도 된다. 풀은 옛부터 인간과 동물을 먹여 살리는 소채도 되고 숲과 들도 된다.

오히려 풀을 모조리 없애겠다는 생각은 농촌 귀촌자에게 두려운 존재가 될 수도 있다. 그러니 풀과 공존 공생하면 서로가 유익한 관계가 된다. 이제 장마가 다가올 무렵이다. 이로부터 풀은 인간의 욕망처럼 길길이 논밭을 점령하게 될 것이다.

귀촌을 희망하는 예비 농민이여 부디 정복은 안 된다. 그게 공생의 진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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