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인 충남문학관 관장 / 작가

[뉴스포스트 전문가칼럼=이재인] 장마가 가고 이제 풀 세상이다. 선조의 묘를 산에 마련한 후손들이 묘지 제초작업을 하는 계절이 들이닥쳤다. 하지만 서투른 예초기 사용으로 숱한 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말벌에 쏘여 생명을 잃는 경우도 해마다 반복된다.
이는 대체로 도시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겪는 불행이다. 그러므로 예초기 사용법은 물론, 제초지역을 살펴 말벌이 있는지 없는지 정밀 조사도 필요하다. 이런 사전조사와 주의 없이 예초기를 어깨에 멘다는 것은 실수를 연발 할 수밖에 없다. 준비와 훈련이 없는 병사가 전사하는 것과 같은 당연한 결과이다.

사실 오랫동안 설왕설래하는 장묘문화를 건설적으로 지금쯤에 다시 한 번 재고해 봄직한 일이다. 시골 산에 묘지를 조성하게 되면 반드시 일 년에 여러 차례 묘를 돌보기 위해 방문을 하게 된다. 따라서 도시에 사는 후손들의 수고와 에너지 소비는 당연한 일이다.
이보다도 더 큰 문제는 온 국토가 묘지로 뒤덮일 수 있다는 통계학자들의 의미 있는 예단이다. 지금 진행되고 있는 수목장을 비롯하여 장묘 문화가 점차 바뀌어 가는 과정에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많이 알려져 있지도 않아 이를 정부차원에서 홍보가 필요한 것 같다.

이와 같은 장묘문화는 우리의 효문화가 뿌리 깊은데 연유한 점도 있지만 미래 국토의 효율성 측면에서 다시 한 번 되돌아보는 것도 중요하다. 경주나 부여, 개성에 있는 왕릉을 보노라면 역사성과 긍지도 갖지만 이는 현 시점에서 다시 한 번 되돌아봐야 하는 문제이다.
나무를 베고 언덕을 파내고 장묘를 쓴 들 국가적으로 무슨 득이 될 수 있겠는가? 혹여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 순리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이론도 들음직하나 현 시점에서 장묘문화를 혁신하기 위해서는 제법 높다는 직위(?)를 가진 사람들부터 솔선하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미국인들의 묘지는 마을마다 묘비군락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영국은 사원이나 교회당에 묘를 설치했다. 일본은 울안에 신당을 마련했다. 태국인들은 집안 한구석에 신위를 안치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좁은 국토를 거대한 공동묘지로 만들고 있지 아니한가.
아무튼 우리도 이제 우리 고유의 장묘문화를 차분하게 연구하고 효율성 있는 묘안을 마련해야  할 일이다. 18세기에 이런 주장을 했다면 나는 이미 유림의 지탄의 대상이 되었으리라…….

내가 살고 있는 시골에도 권력 있고 돈 많은 이들이 호화묘지로 산야를 차지하고 있는 경우가 왕왕 눈에 띈다. 죽어서까지 묘지로 자기들 선조를 부각시키는 일을 지금은 효문화로 높이 받드는 시대가 아니다.
살아서 무슨 일로 인류와 이웃을 위하여 어떻게 살았는가를 우리는 냉정하게 평가해야 한다. 정치가라고 국립묘지로 가고, 인류평화를 위하여 평생을 헌신한 아름다운 생을 살다간 넋은 공동묘지로 가는 슬픔을 우리는 종종 보게 된다.

무엇이 우리를 슬프게 하는지 한 번 되짚어 보는 계가기 되었으면 한다. 이산, 저산의 예초기 소리가 풍년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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