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인 충남문학관 관장 / 작가

[뉴스포스트 전문가칼럼=이재인] 문인들이 여기로 그린 그림이 최근에는 꽤 인기가 있다는 입소문이 난지가 오래다. 유명세 따라 그 액수도 제법 비싼 가격에 인사동 골목에서 거래가 된다고 한다. 그것이 좋은 일인지 아닌지는 아직 속단하기 어렵다.

그러나 필자의 사견을 덧붙인다면 좋은 현상이라고 하겠다. 문인들이 열에 여덟쯤은 재정 형편이 그다지 좋지 못하다. 그러니 자손에게 물려 줄 재산도 없다. 자녀교육도 남들처럼 외국에 보내어 유학을 시킨 경우도 드물다.

그런 그들한테 부모로서 여기로 그렸거나 쓴 서예 작품을 남겨 그것이 재화가 된다는 것은 크나큰 횡재가 된다고 하겠다. 그러나 그것도 인기가 대중에게 알려진 몇 사람에게만 해당되니 아쉽기 그지없다. 그나마 그렇다는 사실이 가뭄에 단비처럼 반가운 소식이라 하겠다.

우리 문단에서 그림으로 세간에 알려진 문인이 어효선 선생이다. 그의 그림에 필적할 만큼 글씨가 독특하게 인기가 높던 분으로 김구용 선생이 계셨다. 이분들 위에 소설가 월탄 선생이 대가급에 속한다.

그런가하면 위당 정인보, 시종 김동리, 초정 김상옥 선생의 서예 솜씨가 만만치가 않다. 편운 조병화 선생, 거기에다 상남 성춘복 시인의 그림과 글씨가 대가급에 속한다. 이에 덧붙여 아동문학가 이진호 선생, 윤후명 소설가의 그림 솜씨도 만만치가 않다.

우리 문인 1세대들이 서화에 능한 것은 한문이 필수였기에 문인화 쯤이야 당연시한 영향이 크다고 하겠다. 그러나 2세대 문인들 가운데 시인 김영태, 이제하 소설가는 그들이 그림을 본업으로 전공했으니 그들은 프로급에 속한다고 하겠다.

우리 문단에서 그림으로 손꼽히는 분으로는 문학평론가 김우종 교수가 계시다. 그분은 일요 화가회 회원으로 여러 차례 전시회를 연 경력의 소유자이다. 이제 이분들의 영향으로 제4세대 문인들도 더러 문예지의 요구에 따라 그림을 선뵈고 있다.

문인들의 문인화는 숙달된 세련미보다도 형상화시키려는 노력만으도 그 가치를 인정해줄 만하다. 여기에다 싯귀에 가까운 화제를 달아 써내려간 그림은 더욱 멋져 보인다. 어효선 아동문학가는 주로 문방사우를 동양화로 그리고 <운산구락> <문도만리> <부기청필> 같은 사자 촌필은 인기가 자자하다.

이름에 비하여 글씨가 뛰어난 의사 수필가인 김사달 선생이 또한 남에게 질세라 내세울만하다. 시조시인 이상범 시인의 운필도 초정 김상옥선생에 버금간다 하겠다. 그림으로 치자면 월북화가 근원 김용준 선생이 으뜸이지만 본업이 화가였으니 여기에서는 예외로 한다.

예술인이 자기 전공외에 그림이나 글씨를 열심히 하면 자기연수도 되고 후세에게 큰 재산을 남겨 줄 것 같다. 서양의 괴테나 실러의 서투른 그림과 글씨가 몇십 억에 팔린다니 이게 우리를 배아프게만 생각할 일은 아니다.

옛 선비 문인들은 그림과 글씨로 멋스런 여가생활을 했다. 그게 선비문화요, 자기 수련의 확장이 아닌가 싶다. 이렇게 더운 날 김동리의 휘갈겨 쓴 글씨를 보고 있노라면 용이 하늘을 나르는 것 같아 시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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