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인 충남문학관 관장 / 작가

[뉴스포스트 전문가칼럼=이재인] 필자가 열아홉살 전후에 원로(元老)라는 접두사가 붙어 있는 작가들을 흠모하거나 존경을 했다. 그런데 이런 귄위 있고 명망 있는 용어가 어느날 슬며시 사라지고 지금은 그 개념만 존재하고 있다. 슬픈 일이다.

아마도 컴퓨터가 생겨나면서부터 ‘원로’라는 말은 생활 현장에서 거부되기 시작했다. 그러니 원로라는 권위 있는 실체가 사라지고 말았다. 사회가 혼란하고 무질서하게 되면 그 방면에서 제법 경륜있고 덕망이 있는 노인을 찾아가 해결책을 요청하거나 해답을 요구하는 사례가 많았다.

그런데 지금의 현실은 그렇지가 못하다는 데 아쉬움과 더불어 절망감을 느끼게 된다.

시경(詩經)에 보면 기원전 470년 이전부터 ‘원로’라는 말이 존재하고 있다. 시경에 의하면 오관(五官)의 장을 원로라고 했다 한다. 천하지노(天下之老)의 뜻이다. 한한(韓漢)사전에는 관직이 높고 나이가 많고 덕망과 함께 품격을 갖춘 사람이라 설명을 덧붙였다.

다분히 전제주의 인상이 짙은 뜻이 내포되어 있기 때문에 버려진 사어(死語)인지도 모른다. 뜻은 비민주적이라 하더라도 의미부여가 큰 원로를 버리게 되면 우리에게 어른이 없다는 말이 된다. 이렇게 되면 자기모순에 빠지게 된다.

필자는 청년시절 안병욱 부완혁 유진오 선생들의 글을 읽고 그들의 올곧은 의지에 박수 갈채를 보냈다. 그분들을 초청하고 현수막에 당당하게 「원로에게 듣는다」고 써서 게시하곤 했다. 지금 우리 사회에 민주화라는 말을 잘못 이해하여 원로라는 사람들을 무시한다.

이제부터라도 숱한 경험과 쌓인 지혜를 활용하는 것이 나와 나라와 민족에게도 보탬이 될 것이다.

원로들을 잘 활용했던 나라가 일본이다. 일본은 2차세계대전 이전까지 일본왕이 내각 총리를 임명할 때 자문을 받는 사람들을 활용, 자문을 구했다. 한때 상설기관을 두어 법률안을 검토하는 사례도 있었다.

고대 로마의 최고 입법기관도 원로원이라 했다. 그들은 모두가 계급과 경륜이 있는 사람들을 추대했다. 이제 우리나라의 정치지도자, 그리고 학문에 권위있는 원로들을 집안에서 모셔내어 이 100세 시대를 대처하는 지혜도 얻어야 할 것 같다.

나는 청년시대 원로작가들을 존경했다. 그들로부터 조언을 듣는 일을 즐겨했다. 그나마 내게 좋은 점이 밀알만큼이라도 남아 있다면 원로들의 지도 조언의 덕분이다. 낮에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고 밤에는 야학으로 가난과 빈곤을 퇴치하는 책을 권장하던 원로 선생님들의 이름이 새삼 그립다.

서정주, 오영수, 김동리, 박영준, 유치진과 같은 선생님들…….

이재인
소설가
전 경기대교수
충남문학관 관장
한국문인인장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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