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인 충남문학관 관장 / 작가

[뉴스포스트 전문가칼럼=이재인] 충남 홍성문학관에 가면 100년쯤 되는 명물 항아리가 있는데 이 항아리가 문학관을 찾는 이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이 항아리는 본인이 직접 말하기에는 민망하지만 필자의 집안에 대대로 내려오던 것을 홍성문학관에 영구 기증한 귀물이다. 그냥 평범한 질그릇이기 때문에 값어치를 따진다면 얼마 되지 않을지 몰라도 이 항아리야말로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표본이라할까?

필자의 할아버지께서는 일제강점기때 예산의 대지주 마름을 보셨다. 그러니 전답에서 나오는 생산물인 벼나 보리를 한섬들이 독에 가득히 넣어두고 어려운 이웃들이 거리낌 없이 퍼 날라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무인 곳간으로 사용하였던 것이다.

이를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아 필자가 50여 년간 보관하다가 최근 문학관 개관식에 때맞춰 헌정한 귀물이다. 필자가 이것을 찾아오는 관객에게 자랑하거나 설명하는데 부담스럽게 느껴져서 형제들과 논의 끝에 시집보낸 것으로 깊이가 1미터 넘는 항아리이다.

그러니까 필자의 조상들은 나와 내 사촌들한테 항아리에 구휼미를 담아 놓고 불우한 이웃에게 무언의 나눔을 가르치신 쌀독인 것이다.

옛날 어른들은 대문밖에 쌀독이나 항아리를 놓아두고 보이지 않는 선행으로 이웃을 돌보는 데 소홀히 하지 않았다. 오늘처럼 나만 잘 먹고 잘 사는 게 ‘자유’라는 착각으로 살아서는 안된다는 교훈이다.

가난한 이들을 위한 나눔의 독으로 끌어안고 찾아오는 관객에게 내 집안의 자랑 같아 껍껍하다가 시집을 보내고 보니 어쩐지 나조차 자유로와진 느낌이다. 문화재도 이렇게 서로 나눔으로 스스로가 보람이 된다는 것을 이제야 느끼고 있다.

이재인
소설가
전 경기대교수
충남문학관 관장
한국문인인장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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