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포스트=이별님 기자] 고(故) 조비오 신부의 사자명예훼손으로 재판 중인 전두환 씨가 1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다. 법원은 조 신부가 언급했던 5·18 당시 헬기 사격에 대해 인정했다. 하지만 관련 단체와 유족들이 바라던 전씨의 구속은 이뤄지지 않았다.
30일 광주지방법원 형사 8단독은 이날 오후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전두환 씨에 대한 선고 공판을 열고, 전씨에게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전씨는 법원으로부터 유죄를 인정받았지만, 집행유예형에 그쳐 구속은 피하게 됐다.
전씨는 같은 날 이른 오전부터 재판을 가기 위해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자택을 나섰다. 전씨에 자택에는 그를 비판하는 유튜버 등 시민들과 취재진들, 경찰들이 몰려있었다. A모 유튜버는 전씨를 향해 대국민 사과를 촉구했다. 이에 전씨는 “시끄럽다 이놈아”라고 비속어를 섞어가면서 되려 호통을 친 것으로 알려졌다.
전씨는 헬기 사격은 없었다고 자신의 혐의를 완강하게 부인해왔다. 또한 자신이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입장은 1심 선고 재판에서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재판장에 도착한 전씨는 재판을 받으면서도 졸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지난달 그에게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징역 1년 6개월의 실형을 구형했다. 헬기 사격을 증명하는 역사적 자료가 있음에도 악의적으로 조 신부를 비난했다는 게 이유다. 법원 역시 이 같은 검찰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다만 실형을 내리지 않아 전씨는 실제 법정 구속은 면하게 됐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미필적으로나마 5·18 헬기 사격이 있었다고 인식할 수 있다고 보인다”며 “자신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회고록을 출판해 비난 가능성이 크다. 혐의를 부인하면서 성찰과 단 한마디 사과가 없었다”고 유죄를 선고했다.
이어 “벌금형을 내려야 하는 게 아니냐는 이야기도 있지만, 고령이기 때문에 노역 집행이 중지될 수 있다. 거액의 추징금도 납부해야 되는 점 등을 볼 때 벌금형을 선고할 경우 실효성에 의문이 있다”며 “범행 동기 및 엄중함 등을 고려해 징역형을 선고하고, 형의 집행을 유예하면서 5·18에 대한 폄훼를 하지 못하게 하는 게 나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여전히 의혹으로 남은 헬기 사격 명령자
앞서 전씨는 2017년 4월 발간한 회고록을 통해 고 조비오 신부를 원색 비난한 바 있다. 조 신부가 생전 5·18 당시 헬기 사격을 목격했다고 말했는데, 전씨가 이에 대해 ‘파렴치한 거짓말쟁이’이라고 주장했다. 조 신부의 유족들은 전씨에 대해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재판을 걸었고, 전씨는 이듬해 5월 재판에 넘겨졌다.
1980년 5월 광주에서 일어난 헬기 사격은 이번 재판의 주요 쟁점일 뿐만 아니라 5·18 당시 군부가 저지른 범죄의 주요 혐의다. 광주 동구 전일빌딩에 남아있는 흔적과 목격자들의 진술 등 주요 증거들이 있었지만, 서슬 퍼렇던 시절에는 입 밖으로 내뱉기 어려운 주제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헬기 사격의 진실은 잊혀가는 듯했다.
헬기 사격의 진실은 시간이 흘러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비로소 실체를 드러냈다. 2018년 국방부 5·18특별조사위원회는 5·18 당시 헬기 사격이 실제로 있었다고 최종 결론을 지었고, 당시 송영무 국방부 장관이 군 수장으로서 처음으로 헬기 사격에 대해 공식 사과했다.
이번 재판을 통해 헬기 사격은 법원에서도 사실상 공식 인정됐다. 하지만 헬기 사격을 누가 명령했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밝혀지지 않았다. 세간의 시선은 전씨에게로 향해있다. 군이 민간인을 상대로 헬기 사격까지 가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당시 실권자의 허락 없이는 불가능했다는 게 중론이다.
실제로 5·18 당시 주한미군 방첩정보요원으로 활동했던 김용장 씨는 1980년 5월 21일 전씨가 보안사령관으로 재직했을 당시 헬기로 광주 공항에 도착했고, 광주 제1전투비행장에서 정호용 특전사령관 및 505보안부대 이재우 대령과 회의를 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는 같은 달 21일과 27일 헬기 사격이 두 차례 있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전씨가 여전히 헬기 사격에 대한 책임을 부정하고 있어 역사적 진실을 밝히는 데에는 난항이 예상된다. 조 신부 유족 측은 공식 입장을 통해 “역사적 사실로 5·18 당시 헬기 사격이 법원의 판결로 인정된 점에서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면서도 “피고인이 전혀 반성하고 사죄하지 않았음에도 집행유예 판결을 내린 것은 사법적 단죄 측면에서 아쉬움이 있다”고 전했다.
- 5·18 민주화운동 40주년...헬기 사격 명령자, 누구인가
- 전두환 1년 만에 광주행...묵묵부답에 법원서 졸기까지
- 임한솔, 전두환 호화 오찬 쫒다 ‘입틀막’ 당한 사연
- [기자수첩] '5·18 진상조사위 출범'에 한국당 즉각 협조해야
- 전 미군 요원 "전두환, 80년 5월 21일 헬기 타고 광주 왔다"
- 광주 도착한 전두환, MS표정분석 해보니 ‘슬픔’
- '헬기 사격' 알고 있었나...전두환 광주 재판 쟁점
- 희수(喜壽) 미국인, ‘5·18망언’ 비판 서한…“내가 광주 목격자”
- '전두환, 광주서 재판해야'...대법, 관할 이전 신청 기각
- 전두환, 5년 전부터 알츠하이머..."회고록도 썼는데?"
- 5·18민주화운동 41주기...진상조사위 성과와 숙제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