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사 이래 최초 발전자회사들에 중간배당 요구한 한전
정기배당에 중간배당까지...한수원 등 배임행위 우려도
‘LH 순살아파트’ 논란에 尹 “건설 이권 카르텔 부숴야”
‘엘피아’ 전관예우 끊는다...LH ‘막강 권한’ 조달청으로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지난 5월 2일 인천시 서구 검단신도시 아파트 주차장 붕괴사고 현장을 찾아 관계자로부터 설명을 듣고 있다. (사진=뉴시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지난 5월 2일 인천시 서구 검단신도시 아파트 주차장 붕괴사고 현장을 찾아 관계자로부터 설명을 듣고 있다. (사진=뉴시스)

[뉴스포스트=이상진 기자] 올해 국내 공기업 이슈 가운데 특기할 만한 일은 발전공기업들의 수난사와 부실시공으로 다시금 도마 위에 오른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엘피아’(LH 마피아) 논란이다. 

한국전력공사를 위시한 발전공기업들은 불어나는 부채와 적자 경영으로 몸살을 앓았다. 이에 한전은 자산매각과 함께 창사 이래 최초로 자회사에 중간배당을 요청하는 등 생존하기 위한 다방면의 방책을 내놨다. LH는 공공 아파트 시공 과정에서 철근을 빼먹은 이른바 ‘LH 순살아파트’로 대통령의 분노와 국토교통부 장관의 대국민 사과를 불렀다.


초유의 자금경색 우려 한전, 발전자회사에 중간배당 요구


김동철 한국전력공사 사장(왼쪽)과 강경성 산업통상자원부 2차관이 지난달 8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경영위기 극복을 위한 자구책과 전기요금 조정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김 사장은 이 자리에서 서민경제 부담을 고려해 주택용과 소상공인 요금은 동결하고 산업용 대용량을 오는 9일부터 10.6원㎾h 인상한다고 밝혔다. (사진=뉴시스)
김동철 한국전력공사 사장(왼쪽)과 강경성 산업통상자원부 2차관이 지난달 8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경영위기 극복을 위한 자구책과 전기요금 조정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김 사장은 이 자리에서 서민경제 부담을 고려해 주택용과 소상공인 요금은 동결하고 산업용 대용량을 오는 9일부터 10.6원㎾h 인상한다고 밝혔다. (사진=뉴시스)

지난 11일 전력산업계에 따르면, 한국전력은 창사 이래 최초로 발전자회사들에 4조 원 규모의 중간배당을 요구했다. 올해 6조 원대 영업손실로 내년 한전채 발행이 불가능한 상황까지 몰려서다. 한전채 발행이 막히면 영업손실로 유동성이 막힌 상황인 한전은 송·변전 시설 유지보수와 전력 구매 자금을 융통할 수 없는 상황을 맞게 된다.

한국전력공사법은 한전이 자본금과 적립금 합계의 5배까지 회사채를 발행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26일 기준 한전의 회사채 발행액은 79조 6000억 원 규모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한전의 자본금과 적립금 합계가 20조 9200억 원(최대 104조 6000억 원 한전채 발행)인 까닭에 올해 한전은 회사채 발행에 여유가 있었다. 

문제는 내년이다. 증권사들의 올해 한전 실적 컨센서스 전망치대로라면 올해 한전은 6조 원 규모의 영업손실을 기록하게 된다. 이에 따라 한전의 적립금과 자본금이 14조 9000억 원으로 줄어들어 회사채 발행 한도도 74조 원대로 제한된다. 현재 한전채가 79조 6000억 원인 만큼 수조 원에 달하는 초과분은 한전법에 따라 즉시 상환해야 한다.

영업손실과 회사채 한도 제한, 초과 한전채 즉시 상환 등 겹악재에 수세로 몰린 한전은 한국수력원자력과 한국중부발전, 한국남동발전, 한국남부발전, 한국동서발전, 한국서부발전 등 발전 6사에 중간배당과 이를 위한 정관 개정을 요구했다. 

한전이 발전 6사의 지분 100%를 보유한 만큼, 한전의 중간배당 요구는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상황이다. 지난주 한수원과 동서발전, 남동발전, 남부발전, 서부발전, 중부발전 등은 중간배당을 위한 정관 변경안을 이사회에서 의결했다.

발전 6사 가운데 가장 먼저 중간배당액을 확정한 곳은 한국동서발전이다. 전력업계에 따르면 지난 22일 이사회를 열고 2990억 원 규모의 중간배당액을 의결했다. 27일부터 이달 말까지 한수원 등 나머지 자회사들도 이사회를 열고 중간배당액을 확정한다. 발전 6사 이외 한전 자회사 한전KDN도 1600억 원 규모의 중간배당을 할당받았다. 중간배당금액은 당초 4조 원보다 줄어든 3조 2000억 원대가 될 전망이다. 전례 없는 한전의 요구에 자회사들이 난색을 보였다는 후문이다.

문제는 한전이 자회사들에 영업손실분에 대한 희생 분담을 요구하면서, 자회사들의 경영에 악영향을 끼칠 우려가 있다는 점이다. 자회사들은 매년 3월 한전에 지급하는 정기배당 부담과 함께, 한 번 물꼬를 튼 한전의 중간배당 추가 요구 가능성에 노출된 상황이다. 특히 한수원 등 영업적자를 보고 있는 일부 자회사들은 이번 중간배당이 배임행위로도 해석될 여지도 있다는 설명이다.


尹대통령 분노 부른 ‘LH 순살아파트’


지난 7월 31일 윤 대통령은 LH공공주택지구 철근 누락 등 부실시공과 관련해 “아파트 지하주차장 부실 공사에 대해 전수조사하고, 즉시 안전 조치에 만전을 기하라”고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에게 지시했다.

전날인 30일 국토교통부가 ‘공공주택 긴급안전점검 회의’를 열고 LH가 발주한 무량판 구조 아파트 단지 91곳을 전수조사한 결과 15개 단지에서 전단보강근 누락이 발견됐다고 발표한 데 따른 것이다.

이한준 LH 사장이 지난 8월 11일 오전 서울 강남구 LH서울지역본부에서 열린 철근 누락 사태 긴급 기자회견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한준 LH 사장이 지난 8월 11일 오전 서울 강남구 LH서울지역본부에서 열린 철근 누락 사태 긴급 기자회견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다. (사진=뉴시스)

무량판 구조는 보 없이 기둥이 직접 슬래브를 지지하는 구조로, 기둥이 하중을 견딜 수 있도록 철근(전단보강근)을 튼튼하게 감아줘야 한다. 하지만 당시 발견된 15개 단지 중 10개 단지는 설계 미흡, 5개 단지는 시공 미흡으로 이러한 철근이 빠진 것으로 조사됐다.

원 장관은 “LH 시흥 은계지구 공공주택 수돗물에서 이물질이 나오고, 무량판구조 지하주차장에서는 철근 누락 부실시공이 발견됐다”며 “주무부처 장관으로서 국민 여러분께 죄송함과 함께 깊은 책임감을 느낀다”고 사과했다.

국토교통부는 파주 운정과 남양주 별내 등 지하주차장 철근을 빼먹은 한국토지주택공사(LH) 아파트 15개 단지를 공개했다. 이날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과 이한준 LH 사장은 정부서울청사에서 브리핑을 열고 지하주차장 철근 누락 LH 아파트 명단과 시공사, 감리사를 밝혔다.

당시 국토부에 따르면 지하주차장 철근을 빠뜨린 LH 아파트 가운데 △파주 운정(A34 임대) △남양주 별내(A25 분양) △아산 탕정(2-A14 임대) △음성 금석(A2 임대) △공주 월송(A4 임대) 등 5곳은 이미 입주를 마쳤다. 

또 △수서 역세권(A-3BL 분양) △수원 당수(A3 분양) △충남도청 이전 신도시(RH11 임대) 등 3곳은 입주 중, 오산 세교2(A6 임대)는 공사를 마치고 입주를 앞두고 있었다. 공사 중인 곳도 △파주 운정3(A23 분양) △양산 사송(A-2 분양) △양주 회천(A15 임대) △광주 선운2(A2 임대) △양산 사송(A-8BL 임대) △인천 가정2(A-1BL 임대) 등 6곳이었다.

문제는 해당 아파트 단지의 상당수가 LH 퇴직자들이 취업한 업체에서 설계와 감리를 맡았다는 점이다. 국토부와 LH에 따르면 문제가 된 15개 단지 가운데 14개 단지는 전관업체에서 설계를, 8개 단지는 전관업체가 감리를 맡았다. 

건물 붕괴 사고가 날 때면 음산하게 등장하는 ‘토목 마피아’들의 전관예우, 이른바 ‘토피아’ 논란이 이번에도 어김없이 등장했다. 특히 토피아 가운데서도 국내 건설업계 감리와 시공에서 LH 출신끼리 유착하는 ‘엘피아(LH 마피아)’의 존재도 다시금 주목받았다.

지난 8월 1일 높아지는 시민들의 불안감에 윤 대통령은 다시 한 번 “이러한 문제의 근본 원인으로 건설 산업의 이권 카르텔이 지적되고 있다”며 “국민 안전을 도외시한 이권 카르텔은 반드시 깨부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편 수개월간에 걸친 논의 끝에 정부는 지난 12일 LH 혁신안을 공개했다. LH의 설계와 시공업체 선정 권한을 타 기관으로 넘기는 방안이다. 이날 국토교통부는 ‘LH 혁신방안 및 건설 카르텔 혁파 방안’을 발표하며 민간 경쟁 시스템 도입과 철근 누락 등 안전 항목 위반 시 ‘원스트라이크 아웃’ 제도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특히 엘피아를 위시한 전관예우 적폐를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설계·시공업체 선정권은 조달청에 이관하고, 감리업체 선정권은 국토안전관리원으로 이관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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